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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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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Nov 24. 2022

동생이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귀촌 일기 중에서

비 오는 휴일이라 동생 집에 다녀왔다. 몇 달 전 이사를 했다는데 아직 가보지를 못했으니 이참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차피 비 오는 날은 쉬는 날이니까.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하자면 동생은 4년 전에 소도시에 있는 근무지로 자원을 했고,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지금은 여유롭게 전원생활을 하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아마도 동생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40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시골집을 찾고 있을 때, 귀촌 선배로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책 <귀촌 후에 비로소 삶이 보였다>에서 자세히 언급했듯이, 시골에서 집 지을 때 꼭 고려해야 하는 ‘집짓기 좋은 땅’과 ‘적절한 땅의 크기’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성적으로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눈이 와도 평지에 있는 우리 집은 눈을 치우지 않고도 차가 다닐 수 있다.

내 경험상 시골에서 집짓기 좋은 땅이란, 하루 종일 햇빛이 잘 들어야 하고 폭우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위보다 지대가 낮으면 안 된다. 이에 추가해서 집까지 들어가는 도로도 좋아야 한다. 도로가 좋다는 말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언제든지 집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곳도 많다.   

   

시골에서는 눈이 오면 도시처럼 재빨리 눈을 치워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고, 차를 타고 외출이라도 하려면 급한 사람이 먼저 눈을 치워야 한다. 내 집 앞에 쌓인 눈만 치우는 게 아니라 큰 도로를 만날 때까지 전부 치워야 한다.  

   

땅의 크기도 전용면적이 250~300평은 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를 했다. 집을 짓고, 차고를 만들고, 자그마한 잔디 마당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추가해서 감이나 대추처럼 재배하기 쉬운 유실수도 몇 그루 심고,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작은 텃밭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면적이 그 이상이면 풀 뽑느라 감당하기 힘들어지므로 안 된다.    

동생 집 사진. 시멘트 블록으로 만든 작은 화단들이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상세하게 말해주었건만,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내 조언을 몇 가지는 따르기도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 고집대로 했다. 

     

동생은 전원주택 단지 내의 언덕 끝에 있는 집을 구입했고, 내가 집들이를 갔을 때 자랑을 했다. "형. 저 경치 좀 봐! 멋있지 않아?" 이미 주위의 경치에 꽂혀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터였다. 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경치는 끝내주네!” 쩝쩝.

4년간 정성 들여 만든 마당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 이후 동생은 시골에서 네 번의 겨울을 보내고 나서야 내 말을 이해하게 됐다. 눈이 오면 차를 언덕 아래에 세워놓고 집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고, 행여 밤늦게 눈이라도 내리면 새벽부터 긴 언덕에 쌓인 눈을 치워야 출근할 수 있었다. 말이 쉽지 몇 백 미터나 되는 긴 도로를 따라 눈을 치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결국 동생 식구들은 눈만 오면 치를 떨었다. 

    

또 텃밭의 규모도 그렇다. 그래도 내 말을 듣고 화단(Raised-bed)을 만들기는 했는데 꼭 주말농장 규모였다. 마당의 잔디를 절반쯤은 걷어내고 텃밭을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마당 한 귀퉁이에 자그마한 화단 몇 개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도시 사람들은 전원주택을 지을 때면 잔디마당에 꼭 목숨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는 그 작은 텃밭에서 농사가 아주 잘 되었다고 땅콩이며 토마토, 비트 사진을 찍어 자랑을 한다. 그것도 겨우 몇 포기씩 심고서. 아마도 제대로 된 농사라는 것을 본 적도 없으니 비교할 대상조차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텃밭농사를 자급용이 아니라 자랑하기 위해서 짓는 것 같다.   

땅콩 알이 굵다고 자랑하는 동생. 수확한 땅콩이 바구니에 든 게 전부다.

그러던 동생이 시골 살이 4년 만에 드디어 현실을 깨달았나 보다. “형, 아무래도 이 집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어!” 어느 날 동생을 만났을 때 갑자기 말을 꺼냈다. “지금이야 직장에 다니니 상관없지만, 은퇴 후에 소일거리 하기에는 텃밭이 너무 작은 것 같아!” 지금이라도 알아차렸으니 다행이긴 한데, 그동안 애써 가꾼 마당과 유실수들은 어쩌고? 지난 4년간 쏟아부었던 정성과 수고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늘그막 해서까지 긴 도로의 눈을 치우며 살고 싶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덜컥 집이 팔려 버렸다고 한다. 집이 팔렸으니 급하게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하는데 몇 달 사이에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아 집을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미 경험을 했으니 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땅을 구입할 생각도 없었고. 다만 시골에서는 세를 놓는 집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찾더라도 집이 너무 낡아 보수공사를 하지 않으면 거주하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란 게 문제다. 당장 기거할 공간이 필요한 동생은 어렵게 2년 계약으로 월세 집을 구했다.       

우리 집에도 이런 감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pixabay)

새로 이사 간 집을 찾아가니 마을 끝자락에 붙어있는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위치한 아담한 집이었다. 남향집이라 그런지 제법 바람이 부는 쌀쌀한 날씨인데도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 쪼이고 있었다. “집은 언덕 위 말고 이런 곳에 지어야 하는 거야!” 동생에게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을 해 주었다.   

  

그 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두 그루나 있었다. “집주인이 감이 많이 열려 실컷 먹고도 남을 거라던데!” 동생은 마치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처럼 뿌듯해하며 말을 했다. 뭐, 감은 저절로 열리는 줄 아나? 말 나온 김에 엉클어져 있는 감나무 가지를 전지해 주고, 나무 주변에 거름을 뿌려 주었다. 나도 감 열리는 데 기여를 했으니 가을이면 감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언젠가 우리 집도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면 감이 열리는 따뜻한 지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주위에서 이런 비슷한 일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처음 겪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덕분에 동생네 식구는 새로 땅을 사고 집을 지을 때까지 당분간은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할 팔자가 되었다. 더구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조만간 떠날 곳이니 마음을 붙이기도 마당을 가꾸기도 어렵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쉽다.   

  

일찌감치 좋은 경험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겠지. 하루빨리 동생이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아 집을 짓고, 예쁜 마당을 가꾸며 여유롭게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끔찍이도 내 말을 듣지 않더니만!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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