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부러운 상황이다..
어찌 됐든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있다는 것 아닌가.
나에겐 둘 중 어느 한 가지 명확하게 찾는 것도 어렵다.
잘하는 것은 예전부터 스스로 무엇을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 그냥 적당히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왜 반마다 그런 친구 있지 않은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뭐든 다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 아이.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나의 생각은 달랐다.
그 무엇 하나 특출한 것 없었다.
그냥 달리기가 빨라서 운동을 적당히 잘했던 것이고
학창 시절 공부야 벼락치기로 과목마다 문제집 몇 권씩 풀면 가능한 것이었다.
또래보다 조금씩 잘하지만 딱 그 정도, 그것이 한계인 것을 내 스스로는 너무 잘 알았다.
난 지금까지 어느것도 그것을 업으로 삼을 만큼 잘한 적 없다.
그냥 나는 습득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 초반에 배우는 게 빠른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는 그런 능력조차 사라진 듯하다.
이와 반대로 학창 시절 좋아하는 것은 뚜렷했다.
한 가지에 빠지면 그것에만 심취해 몇 년이고 맹목적인 사랑을 했었다.
중학교 때는 3년 내내 노래 부르는 것이 좋아
매일같이 하루에 서너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노래만 부르곤 했다.
몇 년 뒤엔 야자 끝나고 집에 와서
새벽에 영화 두세 편을 보면서 밤을 새우고 다시 등교하는 고등학교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음악이 좋지만 오디션을 본 적 없고, 앨범을 내자는 친구의 말도 실력미달이라며 거절했다.
영화가 좋지만 찍어본 적 없고, 비평을 투고해본 적 없다
문학이 좋고, 글 쓰는 것이 좋지만 공모전에 투고한 적도 없다.
전부 거리를 두고 좋아하다보니
시간이 지나자 다 고만고만하게 적당히 좋아졌다.
어느 것 하나 목숨 바쳐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무엇 하나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까지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내가 인간관계에서 갖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어쩌면 여기에도 적용된 것일지 모른다.
거리를 두는 것. 정을 두지 않는 것.
적당한 관계에서의 적당한 거리는 나쁠 것 없다.
하지만 거리를 두는 습관, 나의 생존 전략은
매우 친밀해야 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심지어 가족마저, 반려견마저, 연인마저, 십년지기 친구들마저.
그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않는다.
항상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며 그들 곁을 공전할 뿐이다.
가끔씩 어머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 그래서 사람들이랑 밖에서는 잘 지내니?'
하고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럼 나는 '그냥 뭐 이런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고 답하고 넘기지만
나도 의문이긴 하다.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태도가 사람을 대할 때만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좋아했던 것들에도 어김없이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더 가까워지지 못했다.
난 지금껏 자기 부상 열차가 되어 철로 위를 떠돌며 한없이 부유할 뿐이었다.
뭐 그럴싸한 이유를 대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변명일 뿐이다.
그냥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애초에 이러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은 말했듯이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그 무엇이 무엇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모두와 적당히 두루두루 친해지다 보면
진짜 친한 사람은 없는 그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각각의 이유로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다.
'좋아하는 것이냐, 잘하는 것이냐'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부럽다.
질투가 나의 힘이라면
언젠가 둘 중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까요
기형도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