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를 넘어, 고향과 조우한다는 것

by 뚜벅이


마지막 연재다. 우연한 사건들과 ‘지도’ 한 장을 알아보다 여기까지 흘러왔다. 틈틈이 자료를 조사하고, 답사를 했다. 고향이라지만 거의 대부분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과 만났다.


일본인들과 조선인 사이의 갭이 얼마나 큰지, 그 갭을 식민 지배를 통해 확대 재생산했던 흔적을 살펴보면서, 일제강점기 감포에 식민이주한 일본인들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특징을 아주 조금 들여다보았다. 감포 앞바다에 일본인이 출현한 1904년 전후부터 1945년까지 식민이주어촌의 형성과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감포 조선인의 역사나 생활상에 대해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많은 자료와 연구들이 나와 있겠지만, 시간도 능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감포의 근대사에 남아있는 일본인들의 흔적을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 본 것이다. 그 시대의 감포라는 장소의 기억이 역사적 자료로 보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포는 초기 미에현 도바 해녀들이나 가가와현 어민들이 계절성 어업을 하다가 소수 어민이 정착하였고, 그 후 후쿠이현 어민들이 현정부의 어업보조금을 받아 집단으로 식민지로 이주했다. 192, 30년대에는 회유성 어종인 고등어, 정어리어업의 대활황으로 감포는 크게 번창하였으나, 1940년대 정어리어업의 쇠퇴와 함께 활력을 잃어가다 패전을 맞아 일본인들은 쫓겨서 귀환하였다.


감포에 정착한 일본인들의 인구, 직업구성, 종교, 교육 등의 생활상과 특징을 주로 192, 3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들은 1천여 명에 불과한 인구였으나, 대부분 어업과 상업에 종사하였고, 유흥가를 발달시켰다. 또한 일본인으로서 정체성과 단합, 2세들의 식민지 안착을 위해 종교, 교육 시설을 정비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감포에서 귀환한 일본인의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다. (앞으로의 과제다)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으로의 도항은 여러 미디어의 정보와 교류가 전제되어 있었다. 「대일본직업별명세도」와 같은 상업적 지도는 일본내 일본인들에게 식민지에 대한 기대와 정보를 제공했다. 마치 조선반도가 무주공산의 땅인 것처럼, 조선인들의 거주지는 미미하게 표현되고 일본인 중심의 시가지를 전경화했다. 「釜山日報」와 같은 일본어 신문들은 독자인 재조일본인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생활상을 전했다. 일본어로 된 정보들에는 식민지의 조선인은 보이지 않았다.


조선 식민화 과정에 발맞추어 시대순으로 당시 총독부 자료, 일본어 신문, 해방후 수산업, 식민지연구의 선행연구를 참고했다. 일제강점기 감포의 일본인들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조선인의 삶은 어떠했는지 다루지 못했다. ‘고향’의 특정 시대를 조망하는 것은, 역사, 경제를 다루게 되어 범위는 넓어지고, 깊이는 부족한 글이 되었다. 논문으로도 에세이로도 애매한 글이 되어버렸지만, ‘고향’이라는 장소에 대해서 쓰고 싶다는 욕망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앞으로 감포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남긴 기억과 기록의 수집, 분석, 해방후 그들이 한국, 감포에 대해 남긴 기억과 기록들을 보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과거의 정보일지도 모른다. 시대는 일본인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서, 그 흔적을 관광콘텐츠화하는 흐름으로 변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충혼비나 기념비에 새겨진 일본인 이름을 지웠던 시대에서, 일본인 거리를 보존하여 관광지화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일본인의 붕괴된 기념비들, 일본인의 이름이 지워진 흔적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분노와 해방감을 지금 여기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과거의 흔적을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지역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과 조선인이 충돌하고 교류하고 접촉한 장소가 식민의 기억이 결락된 ‘근대문화유산’이 되거나, 쇠락한 장소를 재생시키는 관광 수입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과거 일본인거주지에서 접하는 당혹스러움은 ‘반일적’ 감정이 아니라, 그 흔적의 보존과 개발에서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탈식민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장소는 우리에게 식민주의의 기억과 조우하고, 그리고 다시 탈식민적 조우가 가능케하는 장소여야 할 것이다.

감포의 시가에서 만나는 식민지의 상흔을 기억하면서, 20세기 동해안에서 벌어진 월경과 이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루트(route)가 루트(root)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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