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의 느낌.
책 제목으로 ‘여름’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 줄 몰랐다.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뽑으라고 하면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로 넘어가는 간절기를 먼저 떠올렸고 너무 덥고 추운 여름과 겨울처럼 계절이 뚜렷한 게 싫었다. 애매한 것이 나답다고 생각해서 그런 계절이 좋았다. 그런 내가 여름을 제목으로 하는 책을 썼다. 사실 책 내용에 여름이 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처음 드로잉을 떠난 계절이 여름이어서 책 제목이 되었다. 제목이 된 이후로 여름에 호기심이 생겼다. 여름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떠올려봤다. 여름이 좋은 이유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다. 초록이 싱그럽고 푸르다는 것, 그래서 여름에 우리의 움직임도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여행하기에도 좋은 계절이고.
처음에 책 제목은 무척 추상적이었다. 제목처럼 나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인쇄소에 가서 좀 더 현실적인 여러 조언들을 얻고 디자이너 친구의 다양한 도움을 받아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독학이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비전공자. 내 전공은 유아교육이다. 아이들 발달이나 교육학만 알았지, 우리 학과에서 미술이라고 하면 아동미술, 문학이라 하면 어린이 동화 정도를 배울 수 있는데, 그마저도 필수 전공과목이 아니라 선택 전공과목이다. 심지어 나는 아동문학수업도 안 들었다. 글 쓰는 일은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전공생만 쓰고 인디자인 툴은 디자인 전공자만 다뤄야 하는 줄 알았다.
전공과는 무관했지만 책,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평소 관심이 분명했고 따라 하는 건 해볼 만하다 싶었다. 독립출판에 관한 독립출판물 책을 참고하며 그 책을 모티브로 하고, 더 상세한 내용은 곁눈질로 알음알음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정보를 캐내며 눈대중으로 따라 했다. 그런데도 그럴싸한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도움의 손길은 어디서든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책방이나 기관에서 여는 독립출판 워크숍 같은 걸 신청해서 듣는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정보조차 몰랐다. 어쩌면 몰랐기에 다행이다. 누군가 알려주는 틀 대로 시작하지 않고 정말 온전한 내 느낌, 그 엉성함을 담을 수 있어서.
텀블벅을 3주간 진행하고 배송까지 모두 마쳤을 때였다. 후원자들에게 손글씨로 좋아하는 한 문장을 적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공란으로 남겨두어 놓쳤던 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 책을 받아보고 스토리에 공유해 주셨길래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캘리그래피를 깜빡해서 이메일로 받겠다고 했고 메일 주소를 받으며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책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내가 근무했던 서점에 관심을 보였다. 서점을 간단히 소개하고 관심에 대해 감사를 표현했는데 알고 보니 비공식 독립출판협회장이란다. 몰라 봬서 죄송하다고 했는데 오히려 팁을 많이 전해 줬다. 입고 문의할 책방을 추천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북페어 정보도 알려주셨다. 그리고 스토리에 책을 소개하는 건 책방 대표들에게 홍보해 주는 것이었다. 참 고마웠다. 그중에서도 내 책에 대한 느낌을 전해 주셨을 때 감동이었다.
요즘 외관상 완벽한 독립출판이 많이 나오는데 나의 책처럼 살짝 엉성? 하고 풋풋하고 "날것의 느낌"이 더 좋다는 거다. 정말 최고의 칭찬이었다. 텀블벅이란 플랫폼을 통해 영향력 있는 분께 내 책이 알려졌다는 것만으로 나에겐 든든한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날것의 느낌으로 어떻게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 동기부터, 글을 쓰고 책을 만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글로 남겨두기로 했다. 다시 책을 쓰게 될 미래의 나를 위해, 그리고 독립출판을 꿈꾸는 비전공자 당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