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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 매일 생긴다면 무얼 할래요

자유시간에 벌어진 일

by 하늘

대학 4년 동안 한 번의 휴학 없이 달렸다. 졸업 후 곧장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이 나왔다.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학과의 명성답게 여러 사립기관에서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취업의 문턱이 이렇게도 높은 줄 모르고, 나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기관들이 넘쳐나길래 취업이 마냥 쉬운 줄만 알았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 없이 나를 기다리는 곳들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쉽게 얻은 것은 역시나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무작정 임용시험에 뛰어들었다.


처음 1년은 고시생들이 가득한 노량진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갔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꿈을 위해 눈물겹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알아챘다. 역시 그냥 얻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 열정 가득한 곳에서 나도 같이 열정을 다하면 금방 여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역시 모르는 소리였다.


또 1년, 또 1년.. 1년이 이렇게 허무하고 짧은 시간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는 나를 더 알아갔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면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멘털관리를 위해 공부 외의 자투리 시간들을 모아서 글을 썼다. 집에서는 꾸준히 일기를 썼고, 밖에서는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했다. 어느 순간 메모장이 넘쳐났다. 나는 다른 공간을 찾았다. 처음엔 누구에게도 내 글을 보여주기 부끄러워 익명으로 짧은 글을 쓰는 어플리케이션에 혼자 구구절절 써 내려갔다. 모르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그에게서 위로 받으며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 오랜 시간 들어가 보지 않은 동안 계정이 바뀐 건지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 메모들이 전부 사라졌다. 이제는 온라인 공간을 넘어 책으로 엮어서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독립출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메모와 책은 달랐다. 글의 줄기가 있어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주제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생활 중에 틈만 나면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그때도 여행 후 남긴 사진과 일기를 엮어 혼자 편집한 제본을 한 부 씩 가지고 있는 취미가 있었다. 여행에세이라는 명목으로 펼쳐낸 <드로잉 썸머>에서는 여행 이야기로 가볍게 나의 일부를 공개했다. 생각보다 그림 그리며 떠나는 여행을 좋아해 주셨고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을 만났다.


당신도 매일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걸 발견할 것이다. 시간을 내서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그 일을 이제는 제대로 해보길 추천한다. 아, 제대로라는 말이 막연하려나. 나는 책을 쓰고 싶다는 막연함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그래도 글이란 걸 꾸준히 써보겠다고 첫 월급을 타자마자 노트북을 샀다. 노트북을 산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래도 전보단 글이 꾸준히 써졌다. 그러다 인쇄소로 찾아가는 행동으로 옮겼다. 그날 나의 무모함이 지금의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최고의 출발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연수 작가는 유튜브 어느 채널 인터뷰에서 '돌아보니 참 좋은 경험이었다 하는 것이 있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문방구에 가서 노트를 한 권 샀어요. 노트를 산 일이요.


자격증을 따 볼까? 무엇을 준비해 볼까? 했던 수많은 생각들은 그저 생각에 그쳤지만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은 노트를 사는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겼다고 했다. 노트를 사고 거기에 시를 쓴 일이 그를 지금의 작가의 모습으로 이끈 시작점이었다고. 당신이 고민하는 많은 선택지를 실제로 해보는 것은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이 작은 행동이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다. 모두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한 발짝을 내딛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어쩌면 그 일이 현재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출처: 유튜브 희렌최널, 최고와의 인터뷰 '최터뷰' 2화 김연수 작가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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