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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그런 거 없는데요.

좋아하는 일이 없는 당신과 나

by 하늘

어찌어찌 책을 냈고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났다. 근황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나의 첫 여행 에세이 얘기가 나왔고, 다들 책 낸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고 대단하다며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부럽다.”라고 했다.


좋아하는 일, 맞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 그 외에도 그림을 그리며 하는 여행. 사진 찍기, 캘리그래피처럼 손으로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책방에 가는 것, 공원이나 해변 산책로를 따라 아침 산책하기. 내가 이것들을 일명 '좋아하는 일'의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었던 건, 단순하다. 경험했을 때 꽤나 만족과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꾸준함.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왜 좋아하는 일은 번쩍 떠오르지 않는 걸까. 아마도 무난하게 좋아서 그런 걸 거다. 어쩌면 그 기준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가 되려면 그것을 마니아처럼 수집하고 기록하고 삼일에 한 번은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중요한 사실은 좋아하는 일은 상황에 따라 매 순간 바뀐다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질문할 때 요즘 좋은 것을 말한다. 좋아하는 일은 계절이 바뀌듯 바뀐다. 오래 좋아할 수도 있고 잠시 좋을 수도 있고. 지속성의 차이. 그러니 우리가 부담스럽게 느끼는 좋아하는 일의 기준을 아주 많이 낮춰도 괜찮다.


게다가 우리는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5점 척도의 설문조사를 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중간을 나타내는 3점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한 문장을 읽더라도 깊게 생각하는 것을 꺼려하고 기피한다. 귀찮음이 보다 정확하겠다. 우리의 이런 보편적인 성향을 봤을 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너무나도 귀찮다. 당장 먹고살기 바쁘고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좋아하는 일은 여유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는 건 편견이다. 좋아하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그저 먹고살기 바쁜 시간에 쫓겨 달리기만 했던 당신도 지치고 피로가 쌓여 잠시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그 작은 틈에 해보자는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아하는 일이라는 당신. 아무것도 안 하는 쉼도 당연히 필요하다. 12시간 이상 잠도 자야 하고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려도 좋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충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끝에 오는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다들 있을 거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오늘 하루가 지나가버렸다는 허무함.

사실 우리는 쉼을 좋아하지만 의미 있는 쉼을 했을 때 더 뿌듯해한다. 바로 자아실현이라는 메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과 연관된다. 기본적인 욕구가 다 채워졌을 때 사람은 누구가 자아실현을 향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기 마련이다. 충분한 쉼을 했고 나에게 아주 작은 틈이 생겼다는 가정 하에 누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보면서 자꾸만 부럽다면 우리의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준비가 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도 당신의 성향이고 일부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고 난 평범한 보통의 현대인이구나 생각하면된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방향성이 무궁무진한 사람이고 누구와도 어디서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방향으로 적성을 찾아서 개발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내 재능을 뒤늦게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남은 삶이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부러움에 약간의 투자를 해볼 만하지 않은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면 우선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하라고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면 만들어라. 어떤 수고로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코 낭비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경험을 쌓고, 나를 알아가는 투자라고 생각하자.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서 유튜브나 인터넷만 조금 검색해도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경로도 있어서 생각보다 저렴하게 전문가에게 배워볼 수 있다. 혼자서 찾기 어렵다면 나를 꾸준히 지켜본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예로 초등학교 생활 통지표를 찾아보길 추천한다. 생활 통지표에는 담임선생님께서 한 학기 동안 나와 지내오면서 지켜본 나의 장점, 특기 같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한 문장으로 또는 조금 더 길게 작성해 주셨을 거다. 그것이 매년 쌓여서 나의 기록부가 되었고 한 회를 거듭하며 다른 담임선생님을 거쳤을 때도 비슷한 조언을 해주셨다면 그 공통된 말들을 주의 깊게 참고해 볼만하다.


나는 대학생 때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통째로 반납하여 야근과 주말근무를 포함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음날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 울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물집으로 퉁퉁 불어버린 두 손바닥에 밴드를 붙이고 또다시 출근을 했다. 다들 공장에 왜 들어왔냐고 물었을 때 해맑게 "유럽여행 가려고요."라고 대답하던 나였다. 왜 그렇게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대학생 때 한 번쯤은 한 달 동안 머나먼 유럽에 가보고 싶었다. 알게 모르게 내가 접했던 책이나 SNS에서 보였던 선후배들의 삶이 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달 반이라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누구의 도움 없이 500만원이라는 나름의 큰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이듬해 방학에 한 달간의 유럽여행 경비로 전부 사용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돈을 벌어서 여행에 한 번에 쓰는 것이 아깝지 않냐고들 물었다. 정말로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전혀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생에 가장 현명하게 소비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고생해서 값지게 번 돈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의미있게 사용한다는 기쁨을 그들이 알려나. 그때의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드로잉이라는 것에 빠졌고, 그때의 기록들이 쌓여 나의 첫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결론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대부분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지만 나는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라 일단 해본다. 그리고 해본 경험들은 대부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위에서 꾸준함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꾸준히 하려면 목표가 있어야 한다. 운동도 그냥 하는것과 근육량, 몸무게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처음엔 힘들겠지만 어느 순간 저절로 꾸준히 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아마도 과정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칭찬과 격려, 그럴싸한 결과물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내고 돈을 투자하고 자꾸만 하고 싶은 것. 즉, 그렇게 내 몸이 스스로 반응할만한 것이 된다. 좋아하는 건 어딘가 존재한다.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찾지 못한 것뿐이지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대학생 때가 잊을 수 없이 좋은데 대학생이라는 특권 안에서 하고 싶었던 대외활동을 대부분 경험했고(어학연수, 근로장학생, 자원봉사, 해외봉사, 여행, 아르바이트 등)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금은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부터 글 쓰는 게 좋아, 책이 좋아!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해서 친근했고 한 번, 두 번 반복해도 즐거워서 꾸준히 이어갈 만큼의 애정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는 건 없다. 나도 글 쓰는 일이 엄청난 재주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일이라 해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을 때도 있을 거고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건 사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해보는 것이 지금은 더 좋다. 일단은 해봐야 안다. 머리로만 좋았는지 정말 부딪혔을 때도 좋은지. 단순한 호기심도 괜찮다. 많은 경험들의 교집합을 찾아서 점점 나라는 사람을 선명하게 알아가는 것이다. 모두 그런 과정을 통해 발견하고 성장해 간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깊어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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