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은 그야말로 무궤도였다. 자라는 동안에 양친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지원을 받아왔건만, 늘 어느 한 부분에서 마음에 차질 않으면 정해진 궤도에서 조금씩 이탈하기를 반복했던 것이 훗날 평범한 삶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17살이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기억나는 것은 내가 어디까지나 외톨이였으며 고독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그 시절, 나의 모친께서는 새벽마다 “학교 가라!”며 소리치지 않으셨다. 모친께서는 아침잠이 많은 나를 배려해 조용히 출근하셨고, 내가 느지막이 일어나 방을 나오면 항상 식탁 위에는 현금과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모친께서는 매일 아침 그 메모를 통해 우리의 삶에 있어 시간이 귀중한 이유, 삶의 목적을 찾는 일, 나의 본분에 대하여 에둘러 말씀하고 계셨다.
그 시절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연인도 없었고, 죽마고우들은 모두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도 곁에 없었다. 무리한 선행학습으로 정규교과과정에 흥미를 잃어 자퇴와 검정고시를 선택했고, 남들보다 빠른 길을 가고자 했을 때 불현듯 유혹이 찾아왔다.
나의 부친께서는 앞으로 세상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며 당시 엄청난 고사양의 데스크톱 컴퓨터를 선물하셨는데, 나는 이 도구로 내 꿈을 좇기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불특정다수와 정의, 인생, 낭만 따위의 허무맹랑한 잡담이나 탐닉했다.
매일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장래의 비전도 없었다. 목적이 없으니 목표 또한 존재할 리 없었다. 대부분의 나날이 자기 안에 깊이 잠식되어 갇혀 있었다. 일주일간 거의 방에만 틀어박혀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한 생활이 일 년간 지속되었다. 더 이상 이렇게 인생을 허비할 수 없다고 느꼈고, 언젠가부터 눈 뜨면 무작정 외출을 감행했다.
또래의 친구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할 때 나는 사복을 입고 반포로 향했다. 정오 무렵 국립중앙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 후 자판기 커피를 손에 쥐고 몽마르뜨 공원 잔디에 앉아 어른들 몰래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낙으로 살았다. 글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몽상에 잠겼던 시절이다. 당시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책 좀 읽었다며 소지식인 흉내나 내보려던 어설픈 자만과 끝내 버리지 못했던 이상주의자 페르소나가 전부였다.
금융위기는 남의 집 이야긴 줄로만 알았는데, 소리도 없이 우리 집 담을 넘어 현관까지 들어와 위협하고 있었다. 하루는 외출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가했는데, 부친께서 침소에 들지 않으시고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친께서는 “요즘 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라며 끝없는 질문을 쏟아내셨다. 나는 청문회장에 앉은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려가며 매서운 질문을 받았고 무력한 대답만 반복했다. 부자의 대화는 현실과 이상이 대립하는 모순 일색이었고, 결국 부친께서는 "네 현실과 수준은 발밑에 있는데 언제까지 하늘의 별만 보며 살아갈 것이냐? 현실을 보라!"며 크게 발노하셨다.
한없이 위축된 나 자신이 마치 구멍 난 양말로 드러난 발가락처럼 부끄러웠다. 무작정 뛰쳐나가 혼탁한 거리에 서서 제법 몸부림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부친의 불호령을 뒤로한 채 조용히 방에 들어갔다. 답답해서 창문을 열었는데 문뜩 내 분수를 찾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태연하게 세월이나 낚으려던 철없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그제야 겸연쩍고 무안스러웠다. 구름에 가린 달을 보면서 어쩜 저리도 내 모습과 닮았을까 싶어 눈물이 흘렀다.
키가 자랄 때에는 무릎이 아프고, 정신이 자랄 때에는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나는 그날의 마음앓이를 통해 나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지난 일들을,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내가 앞으로 헤쳐 나아갈 모든 시간들을 끝내 수긍하기 시작했다. 이상에 젖어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며 부모의 질책이나 세간의 비난이 마음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번민하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시간들을 이제는 벗어나야겠다며, 내 삶을 보다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난 것이다.
그 후로 마음 잡고 다시 공부를 해봤는데, 결국 수능을 망치며 서울대 근처도 가지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
사진: Pecado
글: Pec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