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문화에 포섭된 반소비문화
※ 이 글은 수정·보완되어 2025년 11월25일 출간된《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루아크 펴냄)에 수록되었음.
1.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는 웰빙의 광풍이 불었다. 당시 웰빙의 뜨거운 열기는 주부들에게 유기농 음식을 차리게 했고, 직장인들에게 술자리 대신 헬스클럽이나 요가센터로 몰리게 했으며, 미혼여성들에게 패스트푸드나 육식류 대신 다이어트 식품에 귀 기울이게 했다. 그들은 향긋한 스파 마사지나 발마사지를 즐겼고, 술 담배를 끊고 아침 일찍 조깅을 하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주말에는 다양한 레포츠를 즐기고 주말여행을 떠났다. 집에서 아로마 테라피와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기도 했다.
광고업계와 마케팅업계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04년에 나온 『웰빙 마케팅』에 따르면, 탄산이나 카페인 대신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여 박카스의 아성을 무너뜨린 ‘비타 500’, 디지털 웰빙의 콘셉트 하에 개성을 추구하는 웰빙족의 심리를 꿰뚫은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자연주의 화장품의 대중화라는 기치를 내건 ‘더페이스샵’이 웰빙의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에 친환경(에콜로지) 개념을 결합한 몇몇 아파트 브랜드 등도 그 목록에 추가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랴. 당시 거의 모든 기업과 제품이 웰빙의 콘셉트를 도입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폴 제인 필저는 정보화 사회 다음 단계로 ‘웰빙 혁명’의 물결이 밀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 전망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웰빙이 지속적인 흐름으로 이어진 것은 사실이나 정보화시대와 견줄 만한 혁명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린이나 친환경 개념을 넘어서 정신적 여유와 마음의 평화까지 추구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인다는 웰빙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긍정적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들불처럼 번지던 웰빙의 광풍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우선 개념의 유래와 형성과정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웰빙의 기원과 당시의 사용 사이에 큰 틈이 벌어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나름대로 그 진실을 확인해 보았다.
2.
웰빙이란 말은 원래 ‘히피’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한다. 히피는 자유를 중시하고 기존의 사회제도를 부정했던 19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인간성이 상실된 전쟁과 물질문명에 분노한다. 히피문화는 1960년대 중반 태평양 연안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샌프란시스코는 뉴욕과 함께 반전평화운동, 인권운동 등의 사회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되었던 곳으로, 진보적인 시인, 화가,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듦으로써 히피들의 온상이 되었다.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로도 불린 히피들은 기득권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를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와 공동체적 삶’을 이상으로 하면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다. 히피족은 1950년대 미국에서 매카시즘에 대응하여 결집된 비트족의 맥을 잇고 있다. 비트족의 정신은 서구문명에 대한 반발과 동양문명에 대한 경도, 엄숙한 금기에 대한 거부와 자유로운 쾌락의 추구에 있었다. 요컨대 히피문화의 지향점인 웰빙이란 원래 반자본주의, 반소비문화, 기성세대와 문명에 대한 거부, 자연 예찬의 삶 등인 것이다.
3.
그런데 그 당시 웰빙은 소비문화의 반대편에 있기는커녕 소비의 가장 강력한 준거로 작동하고 있었다. 반소비문화의 핵심 개념이 소비문화의 유토피아로 자리 잡은 이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소비자로서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멋진 신세계’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0년 전 아니 5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편리와 쾌적, 품격, 행복이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를 손짓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쉽게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PC도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이 살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A.I. 가 인류의 삶에 얼마나 혁명적인 편익을 가져올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시점에 있다.
그런데 아직도 대다수 인류는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쏟고 있으며, 일이 아닌 삶을 위해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주 5일 근무와 워라밸의 확산을 말하려 하겠지만, 그렇게 생긴 여가시간은 또 다른 의미의 노동 즉 소비의 노동을 위해 바쳐진다. 1930년대 케인즈는, 앞으로 100년 후 영국은 경제적으로 여덟 배나 잘 살게 될 것이며 따라서 원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15시간 정도만 일하면 될 것이라는 희망의 예언을 했었다. 그가 정한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요원한 일이다.
4.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소비문화는 만발하게 피었는데 왜 우리는 점점 더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미국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부유한 노예』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쉽게 바꿀 수 있게 되면 될수록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모든 고객을 유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더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더욱더 필사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그는 ‘우리’는 대부분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래서 이처럼 소비자에게 값싸고 좋은 상품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려면, 생산자의 높은 노동 강도가 전제되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인을 지칭하지만 한국인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은 소비자로서 다양한 웰빙 제품과 브랜드, 그리고 그것들이 제공할 쾌적과 여유, 편리와 행복의 삶을 떠올리며 우리는 단꿈에 젖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대다수 사람들은 생산자로서, 자신의 소비자에게 경쟁자보다 더 쾌적하고 더 값싸고 유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일해야 한다. 이것이 라이시가 지적한 현대인의 모순적 삶이다.
5.
미국 워싱턴 근교에 인디언 수콰미쉬 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백인들에게 밀려 어쩔 수 없이 땅을 팔고 자신들의 거주지를 떠나게 되는데, 그 직전 추장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다음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실려 있는 당시 연설문 중 일부이다.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백인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다는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우리로부터 사들이겠단 말인가.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의 소유물이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6.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지난 30여 년간 시장과 시장가치가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에까지 스며들었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적인 미덕이나 좋은 가치를 상품화하면 변질되거나 저평가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그는 “우리는 정당하게 행동함으로써 정당해지고, 절제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하게 행동함으로써 용감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소개하면서, 이타주의·관용·연대·시민정신과 같은 미덕은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고 비유한다. 그런 이유로 시장지향 사회의 문제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도록 방치하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바뀌고 있다. 히피들이 문명과 소비의 대척점에 놓고 간절히 갈구하던 웰빙의 삶도 교환가치로 변하였다. 이제 가치화의 그늘에서 비껴선 영역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물, 공기, 바람, 햇살... 이렇게 자연적인 것뿐만 아니라 공동체, 이웃, 만남, 정, 사랑, 여가, 휴식... 이런 미덕과 가치들도 교환의 대상으로 화폐로 환산하는 세상이 곧 펼쳐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