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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Mar 29. 2024

 시체가 말하는 소설

오르한 파묵 작, <내 이름은 빨강>의 도입부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네 가지 점에서 놀라운 소설이다. 첫째는 이동식 시점. 기존의 틀로 굳이 분류하자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1인칭인 '나'에 해당하는 존재가 장마다 다르다. 그러니 실제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해당한다.     


둘째는 화자의 확장. 일반적으로는 살아있는 특정 인물이 1인칭 화자로 설정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시체, 색깔(예:빨강), 사물(예:우물), 동물(예:말), 개념(예:죽음)도 1인칭 화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 일반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 더 전지적이다.     


셋째는 풍부한 사료와 정교한 묘사. 오스만제국의 전성기인 16세기말이 배경이지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심리묘사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풍부하고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감과 피로감이 공존한다. 다시 말해 구성상으로는 극도로 몰입하게 되지만 문장상으로는 정도의 밀도가 높아서 읽어내기가 뻑뻑하다.     


넷째는 원근법의 역사적/문화적 의미 제시. 미술사나 영상이론에서 중시되는 원근법의 발견이 동양권에 어떤 충격을 던져주었는지 알려준다. 르네상스기 발견된 원근법은 근대의 시각문화를 창조한 위대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양의 관점일 뿐. 동양의 미술이 접한 원근법은 무엇이었는지, 서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동양의 땅 오스만 제국의 세밀화가 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2권 합해서 700쪽에 달하는 분량임을 감안해도 읽기가 더뎌서 제법 오래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쪽을 넘기며 올해부터 소설을 읽기로 결심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 이름은 빨강>은 소설 읽기의 묘미를 알게 해 준 작품이다.     



‘1. 나는 죽은 몸’이라는 장 번호/제목을 달고 있는 이 소설의 첫 단락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자는 내가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숨소리를 들어보고 맥박까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옆구리를 힘껏 걷어차더니 우물로 끌고 와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이미 돌에 맞아 깨져 있던 내 머리는 우물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났고, 얼굴과 이마, 볼도 뭉개져 형태를 분간할 수 없다. 뼈들도 부서졌고 입 안엔 피가 가득하다.]



시체가 화자로 등장해서 자신이 죽는 과정을 설명하는 설정이 놀랍다. 어떻게 시체가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독자는 이후 전개되는 살인사건과 그에 얽힌 이야기 속으로 강력하게 빨려들어가게 된다. 소설 곳곳에 사변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이 매복하고 있어서 머리를 때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는데도 끝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데에는 바로 이 강력한 도입부가 준 충격이 적잖게 작용했다.


소설의 멋진 도입부는 이를테면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과 같은 것이다. 그 강력한 추억으로 인해 독자는 "향기로운 임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임의 얼굴에 눈멀어" 그 소설을 내내 긴장과 호기심 속에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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