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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Jun 24. 2020

살아온 날들의 여분 - 남아 있는 날들

가즈오 이시구로

이 소설은 집사로 오랫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스티븐슨이라는 인물의 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우연히 얻은 일주일간의 휴가 동안 과거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을 만나러 영국의 서부 지역을 여행한다. 오랜만에 아니 일생 처음으로 그는 영국의 자연을 바라보며 집사로 살아온 과거 30여년의 시간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현재는 패러데이라는 미국인을 주인을 모시고 있지만, 소설 속 기억의 대부분은 달튼 경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던 1920년대에서 1930년대 후반에 집중된다. 소설의 현재 시간은 1950년대 중반 서술자는 집사 자신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작품 초반에 등장한 ‘전문가적 실존’과 ‘사적인 실존’이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스티븐슨은 누구보다 집사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품위 있게 전문가로 일해 왔다. 그는 수많은 연회와 모임을 완벽하게 진행하여 주인과 손님을 만족시켰고, 십여 명에 이르는 수하를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사적인 것이 없었다. 중요한 모임의 시중을 드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했고, 손님을 맞느라 일생의 인연이 될 수도 있었던 여인을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다.  

     

충분한 경력을 쌓아 왔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유머 감각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대표적이다. 그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일은 아마도 능력 없는 집사라는 평가는 받는 일일 것이다. 그는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고 오랜 시간 버텨온 자신의 삶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자신의 결정적 단점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주변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려 하지 않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능력도 부족했다. 오직 주인을 섬기는 것, 임무를 완수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그러한 단점을 그는 잘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소설은 서술자인 스티븐슨의 회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독자는 그의 회상을 재미있게 듣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회상을 고통스럽게 따라가야 한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안타깝게 놓치고 있으면서도 서술자는 그 순간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사적인 실존에 의미를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할 줄 모르는 가련한 사람이다. 집사로서의 스티븐슨의 크기가 워낙 커서 개인으로서의 스티븐슨을 집어삼킨 것이다.   

   

그는 여행을 끝내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마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집사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평생 모셨던 달링턴 경이 말년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을 제일 안타깝게 생각한다. 독자들은 그의 회상을 통해 달링턴의 실수와 실착을 알게 되지만 스티븐슨이 생각하기에 달링턴 경은 좋은 사람이다. 그에게 ‘자기’는 없다. 여행 중 주인공은 주인과 자신의 위치를 혼동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스티븐의 생각과 진실과의 괴리를 알아가는 데 있다. 그것은 침착하고 신뢰할만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회상 속에서 조금씩 모순과 균열을 발견하는 재미이다. 집사인 스티븐슨은 주인이 어떤 사건을 도모하고 또 실패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들은 맥락을 통해 전간기 달링턴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서술자가 분명히 기억하는 부분보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의심하는 부분에 사건의 진실을 숨겨 놓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스티븐슨이라는 한 사람의 생애를 본다. 그리고 성실히 살았으나 무엇 하나 얻은 것 없는 그의 삶에서 안타까움을 넘어선 슬픔을 느낀다. 그의 삶이 실패한 삶이라 말하기도 성공한 삶이라 말하기도 어렵기에 그 감정의 심도는 더 깊어진다. 우리들 대부분의 삶이 그의 삶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 어긋났던 그의 순간들이 우리에게도 분명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소설 말미에서 “저녁은 하루 중에서 제일 좋은 때”라는 말로 남은 날들의 희망과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미래가 특별히 과거와 다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는 저택으로 돌아가 과거와 같은 삶을 살 것이고 자기 아버지처럼 그렇게 늙어서 쓸쓸히 숨을 거둘 것이다. 소설의 제목 ‘남아 있는 나날’은 ‘The Remains of the Day’의 번역이다. 소설에 어울리는 제목을 ‘하루의 나머지’ 혹은 ‘살아온 날들의 여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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