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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Oct 27. 2020

내 인생의 교과서

엄친아를 둔 엄마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남매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엄마는 좋겠다.”이다.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학 진학이나 진로를 정하는 데 있어서 부모의 계획에 딱 맞추어 자라는 자식은 흔치 않다. 자식의 꿈을 응원하여도 그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으며 그 노력 또한 부모 맘에 흡족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로 엄마가 부럽다.    


엄마 친구들이 엄마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도 “자식 잘 키워서 좋겠다.”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사남매는 엄친아이다. 엄마 친구들은 물론 엄마를 아는 모든 사람은 엄마를 부러워한다. 나도 엄마가 부럽다.    


엄마가 자식인 우리에게, 엄마 친구들에게도 부럽다는 말을 듣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엄마 아빠의 살아온 삶이 누구든 인정할 만큼 열심히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니 인생의 교과서가 있다면 바로 우리 부모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식 교육의 키워드 1. 꿈

꿈은 넘치도록 크게 가져라, 비록 비현실적인 꿈이어도 노력하면 현실이 된다.   

 

아빠의 꿈은 자식의 학업능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가난한 아빠가 사남매를 대학공부를 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더군다나 의대는 꿈도 꾸기 어려운 형편이다. 아빠는 그래도 꿈을 꾸게 하였다. 아빠의 꿈에 가까이 갈 수 있을 만큼 학업능력은 갖추었다. 교대는 다행히 등록금이 비싸지 않았고 장학생이 되기도 수월했지만 의대는 입학도 어려우며 거기서 장학생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도 우리의 장한 남동생은 입학을 했고 열심히 공부하여 장학생이 되었다. 가끔 조금씩 누나도 보태고 과외 알바를 하며 자신의 용돈 및 등록금을 마련하였다.  

우리마저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꿈이 이루어졌다.  


자식 교육의 키워드 2. 믿음

어느 상황에서도 자식을 믿어라. 자식은 부모님의 믿음을 지켜주려 더 노력한다.    


대학을 가서 친구들과 늦게까지 놀 때가 있었다.

혼자 자취를 하고 있으니 부모님의 걱정을 직접적으로 듣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어둑어둑해지면 조바심이 나서 일찍 들어갔다. 엄마가, 아빠가 나를 믿고 계실 텐데 내가 늦게 다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성적이 조금 떨어졌을 때도 혼을 내거나 다음번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치지 않으셨다. 자식을 믿으니 방향을 제시한 후에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부모님의 간섭도 없었다. 그저 믿고 기다려주셨다.

부모님의 믿음을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자식 교육의 키워드 3. 사랑

자식을 예뻐하고 예뻐하라. 사랑을 받은 자식은 부모님의 사랑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 아빠의 자식 사랑은 동시대 부모님들에 비해 유별났다.

우리가 하는 말 중 하나가 ‘엄마 아빠는 가난해도 우리는 가난하지 않았다."이다. 부모님은 아끼고 또 아끼며 사셨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으셨다. 지금 부모들처럼 사랑한다. 예쁘다고 말은 안 했지만 우리를 정말 예뻐하고 사랑함을 느끼며 살았다. 엄마에게 잔소리를 가끔 들을 때를 제외하곤 열심히 공부하는 자식들이 예쁘고 기특하여 따뜻한 눈빛, 다정한 말투로 우리를 대하셨다.

친구들은 가끔 부모님에게 호되게 혼이 나거나 심한 말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아빠가 철공소를 말했을 때를 빼곤 그런 기억이 없다.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노력했다.  

  


꿈, 믿음, 사랑, 흔한 말이다. 

가장 보통사람으로 살아온 부모님의 삶 자체가 우리 인생의 교과서가 되었다.    


아빠는 늘 신문이 닳도록 신문을 읽고 세상을 비판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정하시며 당신이 정한 기준 그대로 살아오셨다. 아빠는 술도 드시지 않았으니 늘 바른생활맨이었다. 주위 어른들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늘 같이 다니며 다정하였다. 자식 앞에서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없다. 우리 몰래 싸웠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시댁 식구들에게 엄마 몰래 돈이 새 나가는 걸로 엄마가 잔소리를 했던 적이 몇 번 있을 뿐이다. 그때도 아빠는 잘못을 했으니 대꾸도 없이 조용히 있거나 그럼 어떡하나 정도의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주위 어른들이 잉꼬부부라고 했다.   

 

엄마는 파란 쓰레빠, 아빠는 난닝구로 여름을 지내셨다. 자식들 눈에도 알뜰함을 넘어선 안쓰러움이 비쳤다. 변변한 신발이나 옷 하나 없이 지내도, 지금을 지나면 자식이 빛날 미래가 보여서 기꺼이 젊은 날을 희생하셨다. 주위 어른들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인생을 칭찬하였다.   

 

엄마와 아빠는 지혜로웠다.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였다. EBS 교육방송을 시작할 때 아빠는 제일 먼저 방송이 송출되는 TV를 사셨다. 대학을 입학할 때는 어느 입시전문가 못지않게 며칠 동안 신문을 분석하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주위 어른들이 아빠를 참 똑똑한 사람이라 칭했다.    


제일 중요한 것, 엄마와 아빠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었다.

가난하지만 서로 힘을 모아 가정을 일구고, 유난스러운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위하며 사는 부모님을 보며 우리는 남매간의 흔한 싸움 한 번 없이 자랐다.  

  

우리 사남매와 엄마는 “저런 시동생과 시부모 밑에서 어떻게 아빠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며 아빠의 바른 인성을, 아빠의 다정함을, 아빠의 똑똑함을 칭찬하며 아쉬워한다.    


가난을 모르고 자란 똘똘하고 예뻤던 엄마는 결혼을 하면서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는 걱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낡은 목도리 하나로 추위를 견디며 자식들의 따뜻함을 지켜주던 엄마는 우리에게 아픔이었다. 난 워킹맘으로 살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나의 힘듦을 공치사하며 온갖 유세를 다 부리는데, 그 시절을 아빠와 함께 화목하게 이겨낸 우리 엄마도 참 대단하다.    


그냥 간단히 “엄마는 좋겠다.”라고 할 말이 아니다.

수많은 인내와 고생이 있었음을,

바르게 살아온 삶이 뒷받침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런 엄마 아빠의 삶은 우리의 인생의 교과서로 충분하다.

역시 우리 엄마, 우리 아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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