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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Oct 26. 2020

팝송의 팝도 모르는 아빠의 반전 센스

스모키를 모르면서 스모키를 좋아하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출근하는데 라디오에서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온다. 영국 출신 록그룹, 스모키(Smokie)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따라서 흥얼거리다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빠 생각이 났다.   


  

대학에 입학하며 혼자 독립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기본 의식주 물품 외에 작은 TV와 녹음기(요즘엔 ‘빈티지 카세트 레코더’라고 하는 구형 녹음기)도 준비하였다. 엄마는 내가 쓸 물건을 하나씩 장만하고 짐을 쌀 때마다 눈물 바람이었다. 유난히 가족 간의 정이 두터운 우리 집의 분위기도 그랬지만 양말 한 짝도 빨아보지 않은 딸이 혼자서 살 수 있을까? 무섭지는 않을까? 걱정이 더 많으셨다.  

  

입학식을 마치고 엄마·아빠가 시골로 돌아가던 날, 몇 번이나 잘 있어라, 밥 잘 먹고 다녀라, 문 잘 잠그고 자라 등을 확인하며 눈물로 헤어졌다. 혼자 덩그러니 남으니 엄마의 걱정이 실감이 났다. 조용한 적막함이 무섭기까지 했다. 조용함이 싫어 녹음기에 아빠가 준 녹음테이프를 넣었다. 그때 처음 들었던 팝송이 Living Next Door To Alice이다.    


그전까지 내가 외워서 부를 수 있는 팝송이라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께 수업시간에 배웠던 “over and over”가 다였다. 아마 그것도 선생님이 가르쳐줬으니 외운 것이지 나는 팝송을 잘 알지도 못했고 가끔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듣긴 했으나 별 관심도 없었다.    

 

1970년대, 내가 살던 시골은 신파 영화가 가끔 상영되는 극장이 하나 있을 뿐 별다른 문화시설이 없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문화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단체로 1년에 한 번씩 영화를 보았다. 문화극장의 내용은 주로 반공, 효도였으니 아무리 시골 여고생이라 하더라도 감성마저 시골스럽지는 않았었는지 나는 문화극장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아빠는 대학에 진학하는 딸의 문화생활까지 대비하였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팝송은 잘 알지도 못하는 딸이 도시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대화에 끼이지 못할까 봐 준비해주신 것이 TV와 녹음기이다. 게다가 나는 영어과에 입학하였으니 웬만한 팝송쯤은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TV와 녹음기는 외롭고 적적한 나의 자취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그때는 전원일기의 가족 간의 화목함만 보아도 집에 가고 싶고 눈물이 났다. 아빠는 녹음기를 준비하면서 카세트테이프 몇 개도 함께 준비하였다.  알뜰한 우리 아빠는 카세트테이프에 아빠가 직접 고른 노래를 녹음하였다. 거기에는 노래를 좋아하던 딸을 위해 ‘우리나라 가곡 20선’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 그리고 하나가 스모키의 노래였다.    

스모키의 감미로운 멜로디는 한국 팝 애호가들에게서 매우 높은 인기를 누렸는데 'Living Next Door to Alice' 'What Can I Do' 등이 수록된 앨범은 팝 음반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100만 장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그중 1976년 말 발표한 'Living Next Door to Alice'는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던 곡이다.    


스모키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멤버가 몇 명인지 보컬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들었다. 다행히 음악을 듣는 귀는 살아있었는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도 Living Next Door To Alice였다. 그렇게 나는 도시 친구들 사이에서 웬만큼 팝송도 흥얼거릴 줄 아는 친구가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추억의 올드팝을 들으면서 조금씩 팝송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로 뉴스만 듣는다. 유행하는 가요도 잘 모른다. 그런데 시골에서 팝송의 팝도 모르는 아빠가 어떻게 이런 유명한 록그룹을 알았을까?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곡을 선곡했을까? 참 신기해하면서도 아빠의 음악적 안목을 높이 평가했다. 비록 음치이지만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아빠의 음악적 감수성을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친구들도 유행하는 팝송을 녹음해준 아빠를 부러워했다.   

 


 아빠가 생각나면 Living Next Door to Alice를 듣는다.

그때마다 아빠의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감탄하고 감사한다. 그러다 문득 어쩌면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박 반전 아빠의 선곡.

새 카세트테이프는 비싸니 시골 동네에 있는 전파사(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따위와 같이 전자기파를 이용한 전기 기기와 그에 관계된 물품을 팔거나 수리하는 가게인데 시골에서는 카세트 테이프를 녹음해주기도 한다.)에 아빠가 녹음을 맡기러 간다.

“우리 딸이 가곡을 좋아하니 우리나라 가곡 하나, 유행가 하나, 팝송 하나 이렇게 세 개 해주시게”

“어떤 노래를 녹음할까요?”

“내가 뭘 아나. 알아서 녹음해주시게.”

전파사 아저씨의 손에 집힌 것이 스모키였다.

덕분에 나는 팝송은 모르지만 그 당시 유행하는 스모키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30년 넘도록 아빠의 작품인 줄 알았던 스모키 테이프의 원작자가 전파사 아저씨라 하더라도 그런 센스를 발휘한 우리 아빠에게 감사드린다. 스모키로 인해 외롭던 자취생활이 훈훈해지고 교과서와 학교 안에만 국한되어 있던 나의 감성들도 조금씩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리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려 했던 아빠의 마음, 그것이 나의 성장의 자랑스러운 원동력이 되었다.     


자식을 위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해주시는 아빠는 세상에 몇 분이나 될까?

역시 우리 아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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