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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Oct 22. 2020

할아버지의 교육열이 손주에게 미치는 영향.

아들의 간헐적 일탈을 대하는 아빠의 한 방.

그날, 나는 우리 집 앞 창고에 숨었고 동생은 멀리멀리 도망갔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동생과 나를 혼내려고 했었다. 잡히면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할 것이 뻔하므로 동생과 나는 필사적으로 숨고 도망을 쳤다. 해가 져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의 화는 수그러들었고 우리는 평온한 밤을 지냈다.   

 

기억 속에 남은 혼남의 에피소드는 그게 다이다.

자라면서 우리 사남매는 부모님께 특별히 혼이 난 적이 없다. 공부는 알아서 했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혼이 날 사건이 없었다.    


철없이 부모님에게 무엇을 사달라거나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필요성, 합리성, 경제성을 생각하였고 특히 무엇을 얻고자 함이 부모님께 버거움이 되거나 그런 것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었다. 없어도 되는 것,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러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예쁜 옷, 좋은 신발은 아니었다.

참고서를 과목별로 사는 친구들, 각종 연필과 색깔별 볼펜, 심이 얇은 샤프펜슬, 이쁜 보조 가방, 표지가 예쁜 공책이나 수첩 등 주로 학용품에 대해서 조금 그랬던 것 같다.    


아마 우리가 과목별 참고서를 사달라고 했으면 사주셨을 것이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식의 교육적 지원은 충분히 해주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요즘의 학습방법의 대세인 자기 주도적 학습을 어느새 터득하고 실행하고 있었던 때라 교과서만으로도 공부할 수 있었다. 참고서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없어도 무방하니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고 부러움이 기죽음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사남매와 부모님의 프라이드였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대단한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식이라 우리 집은 시끄러울 일이 없었다.    


그런 우리 집이 시끄러워졌다.  

  

아빠가 화가 났다.

남동생이 혼났다. 딸 셋은 가끔 엄마에게 지청구를 듣긴 했어도 아빠에게 한 번도 혼난 적이 없다. 아빠는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 분이시기에 혼난다는 것은 엄청난 잘못을 했다는 것이다.  

   

아빠는 참 똑똑한 사람이다.

비록 중졸이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다. 가정 형편상 공부를 더 하지 못했던 아빠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었고, 배움이 짧은 아빠로선 배워야 출세하고 배워야 대접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이 힘들었다.   

  

그런 세상에서 내 자식은 그런 힘듦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식이 가난으로 인해 공부하지 못하는 억울함은 물려주기 싫었다.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의사로 키우겠다고 계획한 모범생 아들의 간헐적 일탈이 아빠 눈에 거슬렸다.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공부인데, 돈을 벌어야 해서 어린 나이에 거친 사회로 등 떠밀려 나가는 것도 아니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아빠로선 답답할 때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은 우리 사 남매 중 아빠의 가장 큰 그림이었기에 더 욕심이 나고 조바심이 났다.

시골에서 의대를 진학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데 아들이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으니 벼르고 벼르다 아빠가 폭발했다. 아빠로서는 큰 한 방이다.    


“공부한다고 폼으로 가방만 들고 다닐 거면 학교 때려치우고 책가방은 불에 태워버려.

교과서도 버리고. 괜히 쌔빠지게 고생하지 말고 일찌감치 공장에나 다녀 돈 벌어라.

멀리 갈 것도 없이 집 앞에 있는 철공소 가면 되겠네.

학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철공소에서 돈 버는 애들도 있는데 공부가 뭐 어렵다고…….”

(철공소에 대한 비하가 절대 아닙니다. 집 앞에 있는 공장이 철공소라 제일 쉽게 갈 수 있는 공장이었습니다.)    


아빠의 폭발은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몽둥이나 큰소리도 없다.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평소보다 내용은 다소 과격하나 철공소 운운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착한 아들은 아빠에게 대꾸 한마디 없이 돌아온 탕아처럼 회개하고 제 자리로 곧 돌아왔다.    

 

철공소 직원이 될 뻔했던 남동생은 지금은 자신의 자식 교육에 열심이다.

조카는 남동생을 닮아 머리도 좋고 올케가 교육을 전담하며 교육적 환경을 최상으로 만들어주고 공을 들이고 있어 공부도 꽤 잘하고 있다. 조카 스스로 열심히 하여 남동생의 뒤를 이어 의대를 진학하고자 한다.  

   

학교와 학원에 치여 공부만 하는 조카가 안쓰러워하면서도 우리처럼 공부에 목숨 걸지 않는다며 아쉬워한다. 남동생이 의대를 가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더 어려우니 걱정이 더 많은가 보다. 잘하고 있어도 자식 교육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지 남동생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공부하는 자식이 상전이 되어버린 요즘에 교과서를 버려라, 철공소를 가라는 말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조카는 간헐적 일탈도 없으니 무심한 듯 허허 웃으며 힘내라 응원할 뿐이다. 그래도 아빠처럼 간혹 나름의 한 방은 있을 것이다.    


자상한 아빠, 여간해서 화를 내지 않는 아빠, 그래도 화가 나면 한 방이 있는 우리 아빠였다.

거기에 남동생은 부족함 없이 지원해주는 아빠까지 더해졌다.


요즘의 자식 교육의 3대 조건,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우리 아빠는 할아버지의 관심으로 아빠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을 만들어주셨다.

조카로선 더할 수 없이 좋은 교육 환경이다.   

 

유난히 아이들을 이뻐하셨었는데 당신의 손주가 대견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아빠는 당신의 아들뿐 아니라 얼굴도 보지 못한 귀한 손주에게도 좋은 교육을 하신 셈이다.

아빠의 큰 그림은 대를 이어가며 완성 중이다.    

 

역시 우리 아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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