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새집을 짓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알뜰하게 살며 살림을 일구어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샀다. 집터로 사놓은 땅은 꽤 넓었다. 건축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그 땅은 한동안 대지가 아닌 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집을 짓기 전까지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 반찬으로 곡식으로 이용하였다. 경제적인 면에도 밝았던 아빠는 땅을 삼 등분하여 한 곳은 팔고 한 곳은 우리 집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건축업자에게 넘겼다. 철저한 아빠는 건축업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수시로 체크하며 우리 집을 지었다.
빨간 벽돌의 양옥은 엄마에겐 봄날의 시작이며 선물 같은 집이었다.
시골에 사는 아줌마들이 마당에 상추를 심고 고추를 심을 때, 엄마는 꽃을 심었다. 예쁜 꽃을 심고 돌을 주워다 마당 한가운데 돌길을 만들었다. 돌길을 가운데에 두고 그 옆에 삼각형 모양의 두 개의 꽃밭을 만들며 엄마는 참 좋아했었다.
큰 창문에는 하얀색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커튼을 열고 창 사이로 꽃밭을 내다보며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이 소녀 같았다. 알뜰함의 대가인 엄마가 푸성귀 대신 꽃을 심는다고 할 때, 엄마도 여자임을 깨달았다.
엄마의 봄날은 꽃내음으로 가득 찼다.
남동생이 의대를 졸업할 즈음, 엄마와 아빠는 대구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꽃밭이 있는 집은 우리가 시골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역시나 알뜰한 우리 엄마와 아빠는 작은 아파트를 손수 칠하고 꾸미며 예쁘게 만들었다.
인턴과정을 하는 아들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막내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시작하며 마음도 편해졌다.
둘째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아이들도 봐주고 떨어져 살던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 본격적으로 엄마와 아빠의 봄날이 펼쳐졌다. 결혼하여 서울에 살고 있던 나는 친정에 전화하고 나서 울 때도 있었다. 나는 독박 육아로 지치고 기댈 곳도 없는데 친정 식구들이 모여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정말 부러웠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하하 호호 행복하게 살았다. 봄날이 완성되어 간다.
남동생이 결혼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니, 하나밖에 없는 귀한 며느리이다.
남동생은 착하고 부모님의 고생을 알기에 경제적인 면에서 엄마 아빠를 편하게 해 드렸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잘했다. 아들과 며느리 덕에 호강도 하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 봄날이 완성되는 듯했다.
아빠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낮에 아들과 며느리가 놀러 와서 삼겹살도 구워 드시고 기분 좋게 주무시다 새벽에 쓰러지셔 5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렇게 엄마의 봄날은 짧았다.
잉꼬부부였고 아빠와 늘 함께 하는 일상이었기에 엄마는 참 힘들었다.
딸 셋은 다 결혼하였고 신혼의 남동생은 엄마의 거처 때문에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착한 남동생은 엄마를 혼자 두지 못해 주말부부를 하기도 했고 모시고 살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엄마는 혼자 살게 되었다. 처음엔 외롭고 힘들었어도 지금은 편하게 잘 살고 계신다. 괜히 아들을 힘들게 했다며 진즉에 혼자 살걸 하신다.
남동생은 엄마에게 참 잘한다.
세상에 그런 효자가 없다. 우리 셋 다 합해도 그렇게 엄마에게 하지 못한다. 소소한 군것질거리부터 엄마에 관한 모든 일은 모두 혼자 챙긴다. 당연하다고 여기며 생색도 내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고생한 보람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애먼 엄마와 남동생에게 화풀이해댔었다.
뭐 했냐고?
아빠가 쓰러질 때까지 왜 못 알아챘냐?
그래 놓고 니가 의사냐?
울며불며 대들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의 인생이 너무 가여워서,
그토록 이뻐하던 자식들과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가신 아빠가 가엾고 또 가여웠었다.
그때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너희는 아빠지만 나는 40년 가까이 함께 산 남편이었다.”
우리는 아빠를 잃은 슬픔만 생각했지 남편을 잃은 엄마는 생각지 못했었다. 엄마와 함께 울기만 했다. 죄송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이 있어도 엄마의 봄날은 반쪽일 뿐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봄날을 선물해주셨다.
그 옛날, 우리 사남매를 바르게 키우는 것으로 봄날을 준비하였다.
그동안 매서운 칼바람도 있었고 눈송이처럼 기쁨이 흩날리기도 했다.
꽃밭이 있는 빨간 벽돌의 양옥부터 사남매를 잘 키웠다는 자부심으로 봄날의 완성을 기다렸다.
함께 고생하고 이제 살만해졌는데 아빠가 안 계시니 엄마는 늘 허전하다.
아빠는 이젠 엄마도 온전한 봄날이시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꽃을 피우고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모두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바랄 것이다.
아빠는 안 계시지만 우리는 늘 아빠를 이야기하며 울고 웃는다.
그래서 아빠는 늘 우리와 함께 있다.
아빠를 추억하게 하여 엄마의 봄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신다.
우리는 언제나 봄날이다.
역시, 우리 아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