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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Mar 25. 2021

타이베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

#2. 타이베이 2016 (2)


타이베이 몽타주


 내가 여행 마니아라는 걸 밝히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였어?"


 솔직히 다녀온 여행지들에 순위가 있는 건 맞지만, 너무 좋았던 곳이 많아서 하나를 굳이 뽑고 싶지는 않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명곡을 하나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를 소개해주고 싶은 심리와 비슷할까? 그래서 생각해낸 꼼수가 하나 있다. 각 대륙이나 지방마다 한 가지씩 얘기한다. 이렇게 하면 내가 사랑하는 여행지들 몇 개를 버리지 않고도 제일 좋았던 곳들을 소개할 수 있다. 타이베이는 아시아권에서 제일 좋았던 도시로 소개되고는 한다. 그럼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타이베이? 거기 뭐 좋나?"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이다. 타이베이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심지어 대만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지 타이베이가 흙으로 된 길에 시장통처럼 정돈되지 않은 도시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정말이지 단단히 착각들 하고 있어서 너무 아쉽다. 하지만 더 아쉬운 건, 위 질문에 내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좋은 것들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파리의 에펠탑, 인터라켄의 융프라우 등의 대표적인 명소가 애매했다. 천등이라고 하기에는 그건 스펀이었고, 101 타워나 다른 장소들은 어느 한 도시를 대표하는 여행지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굳이 타이베이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하자면, '동서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라는 것밖에 해줄 말이 없다. 


 시간이 조금 더 허락된다면, 부연 설명을 붙이고는 한다. 타이베이는 한 번 쭉 돌아보면 그 전체적인 분위기가 즐거운 곳이라고.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몽타주'가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타이베이에서의 둘째 날에 이런 감상을 받았던 것 같다.


 원래 천등 하나만을 보고 온 여행이라 나머지 일정을 뭘로 채울지 막연했었다. 그래도 첫째 날의 여운이 너무 컸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짤 수 있었다. 그중 오늘 할 일은 샹산에서 타이베이 야경 바라보기였다. 이전 내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어떤 도시에 가면 무조건 노을이나 야경 명소 하나쯤은 필수 일정으로 잡아놓는다. 샹산에서 보는 타이베이 시내가 그렇게 예쁘다길래 그 일정을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잡았다. 그렇다면 할 일은 명확했다. 그전까지 도시를 맛집이나 유명한 곳 위주로 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여행의 기술 중 하나다. 어딘가에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전에 그 도시를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녀 볼 것.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중정기념당 근처에 있는 맛집 소룡포에 딤섬을 먹으러 갔다. 난 사실 만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막상 먹으면 맛있게 먹지만, 굳이 만두라는 메뉴를 골라서 사지 않는다. 다만 딤섬은 조금 다르다. 만두와는 다른 그 특유의 식감이 계속 손이 가게 만든다. 그리고 딤섬으로 유명한 대만에서 딤섬 맛집은 꼭 가봐야 하는 필수 코스였다. 


새우 딤섬, 고기 딤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깃국


 예상대로 맛있었던 딤섬과,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맛있었던 고깃국을 싹 비운 뒤 중정기념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장개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인데, 그는 워낙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평판을 가진 사람이라 그 사람보다는 건물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기념당에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정해진 시각마다 근위병들이 와서 교대식을 한다
기념당 지하에서부터 근엄하게 걸어서 기념당까지 올라간다

  

 근위병들의 교대식을 감상하고 난 뒤, 다음으로는 국부 기념관으로 향했다. 사실 이곳도 기념관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곳이다. 하지만 대만이라는 나라의 중요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아니, 사실 내가 방문하는 곳의 역사를 조금도 모른다면 그건 제대로 여행을 한 게 아니라는 이상한 신념이 있어서 그랬다.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국부 기념관 앞에는 아름다원 공원이 펼쳐져 있었기에 산책하기도 좋은 곳이었다. 


잠시 머리를 비워내며 걷기 좋은 공원


 무엇보다 국부기념관 앞에서는 타이베이 시의 대표적인 기념비 중 하나인 101 타워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워낙 고층 빌딩들을 많이 봐왔지만, 101 타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천루다. 서구식 건축물이지만 대놓고 동양적 곡선과 디자인이 들어갔기에 내가 추구하는 특색 있는 건물에 속하는 것이다. 101 타워를 보며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오후였다. 날씨는 비가 올 듯 말 듯 수시로 맑아졌다 흐려졌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타이베이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걸로 기억한다. 


101 타워가 보이는 깔끔한 공원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위압감이 있다


 타워 외벽에 걸린 게임 광고가 부러움을 자아냈다. '아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타워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나만 몰랐던 사진 스팟


 대만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나 빼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냥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촌스러운 거였다. 그래도 용케 저 구조물의 사진 자체는 찍을 생각은 했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 섞여서 타워 주변을 서성이다가 살짝 피로가 몰려왔다. 잠시 근처 공원에 앉아서 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정리해두고 싶던 것도 있었다. 


 게임 기획자 지망생이었던 나는 이 도시에 온 순간부터 영감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하나로 묶어서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한적한 공연장 같은 곳에 앉아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수첩에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마음에 드는 초안이 나왔고, 성취감 때문인지 피로도 이미 싹 가셨다. (이때 만든 초안은 5년이 흐른 지금도 무사히 생존하여 더욱 완성된 상태로 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외 공연장


 한참 머리를 쓰고 나니 배가 고팠다. 정식으로 밥을 먹기에는 모자라고, 간식만 먹기에는 부족한 그런 배고픔이었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이 시장함을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망고 빙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빙수는 생각보다 많은 포만감을 주기도 하고, 대만의 망고 빙수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딱 알맞은 음식이라 생각한 것이다. 


 사실 망고 빙수 맛집으로 유명한 곳도 이미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거리가 조금 있는 융캉제 쪽이었고,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샹산으로 돌아오는 건 동선이 매우 지저분했다. 맛집은 맛집이고, 그래도 대만인데 적당히 깔끔해 보이고 사람 있는 곳 가면 어디서 먹어도 맛있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길거리에 보이는 빙수 집에 들어갔다. 이런 내 안일한 생각은 결국... 좋은 결과를 냈다. 한국에서 먹었던 망고 빙수랑 정말 다르냐. 그건 아니었지만 현지 특유의 짙은 풍미가 묻어났다. 냉동, 혹은 냉장 보관한 빙수용 망고가 아니라 진짜 망고를 그대로 들이부은 신선함도 느껴졌다. 듬뿍 넣어준 연유도 너무 달아서 오히려 좋았다. 달달함 마니아인 나에게 안성맞춤인 망고 빙수였던 것이다. 


혼자서 다 먹고 나니 온몸이 얼음으로 변한 것 같은 기분...


  시원하고 달달한 빙수로 허기짐을 달래며 아까 공원에서 끄적거린 아이디어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이후의 일정에는 샹산에서 야경 보기밖에 없었기에 여유를 부려도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도시가 익숙한 장소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한국에 있을 때도 카페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는 하는데, 타지에서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하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익숙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익숙함은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여행지에서는 얼른 숙소로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거기까지 미치기 전에 다시 새로운 자극을 줘야만 했다.


 시간을 벌써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예보에 따르면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때였다. 나는 빙수 집을 나가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샹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이베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


 샹산에 가기 위해서는 샹산 역에 내려서 산을 올라야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분명 샹'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도시 안에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전혀 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즉, 평소 산에 오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준비도 안 했던 것이다. 그나마 신발은 여행 다닐 때 신는 운동화라는 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됐다.


 샹산 역에서 내려 조금만 걷다 보면 샹산으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생각보다 찾는 게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 산에 오를 때처럼 대놓고 이곳이 입구다라고 안내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를 뒤져서 샹산에 오르는 입구가 되는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발견했다.


누가 이걸 보고 산 입구라고 생각할까,,,


샹산 입구, 이름답게 코끼리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계단을 어느 정도 오르던 나는 이 산이 진짜 산이라는 걸 인지했다. 낯선 타지에서 비 오는 날에 산을 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꽉 끼는 청바지에 두꺼운 맨투맨을 입어서 그런지, 땀이 흘러내리며 비랑 섞이고 찝찝함과 답답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아까 너무 편한 곳에서 안락하게 쉬어서 그랬던 걸까. 나태함과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비를 몰고 온 구름은 하늘을 가렸고, 이런 날씨에 야경이 이쁘게 보일 리 만무했다. 막상 산에 올라간다 해도 원하던 모습을 못 볼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런데 왜일까. 이상한 오기가 나를 계속 산 전망대 쪽으로 이끌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면 평생 후회할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만약 오늘이 첫날이었다면 정말 중도하차했을지도 모른다. 왜 이때 하필 어제 본 천등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이 산을 다 올라가면, 저 멀리 보이는 하늘에서 수 백개의 천등이 날아오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설렐 정도로 아름다운 아련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흐려도 너무 흐린 타이베이의 하늘


 전망대에 가까워질수록 땀과 숨이 차올랐지만,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하게 맑아지고 있었다. 얼핏 바라본 하늘은 흐릴 대로 흐렸지만, 당시에는 그 하늘이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 산에 오르기 전에 구상했던 나의 이야기에 존재하는 가상의 도시. 흐린 하늘을 둔 타이베이는 그 도시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난 타이베이가 아니라 '타이안'이라는 미래 도시에 있었다. 그 미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코끼리 산'이라는 곳을 오르고 있었다. 이곳을 올라가면 항상 흐린 하늘을 가지고 있는 타이안의 차가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후들거리던 다리가 갑자기 단단해지며 가빠오던 숨마저 가벼워졌다. 9와 3/4 플랫폼을 지나는 해리 포터처럼, 나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 환상 속의 공간으로 나아갔다.

 

전망대에 도달했을 때 눈앞에 보이던 타이베이


 망상 같은 설렘을 안고 나아간 전망대에 후회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중도 포기했더라면 평생 기억에 남을 이 아름다운 광경을 놓쳤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습기 가득한 구름 이 낮게 깔려 있었지만, 그 밑에서 빛나는 타이베이는 넋이 나갈 정도로 황홀했다. 원래 도시의 야경을 보면서 황홀하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에펠탑이나 이스탄불 같은 고풍스러운 도시에서의 야경에만 붙이는 표현인데, 타이베이에는 이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이 풍경을 더 아련하고 매혹적이게 만들어줬다. 


 그런 공기가 있다. 들이쉬고 내쉬기만해도 가슴이 요동치는 그런 공기 말이다. 타이베이의 야경이 보이는 샹산에는 그런 공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멍 때리며 보냈다. 아예 작정하고 올라온 여행객 중에서는 삼각대를 챙겨 와 타임랩스를 찍는 분도 계셨다. 나도 잠깐이나마 내 첫 아이폰을 통해 타임랩스를 찍을까 했지만, 설렘과는 별개로 비 내리는 산 위는 너무 추웠다.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긴 타이베이


 사실 어딘가에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보면 알 수 없는 감상에 빠지고는 한다. 이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사람이 느낄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사람들이 산에 가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개운함을 느끼겠는가. 그런데 나는 내가 뭘 보는지도 모르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내 두 발로 직접 걷고, 두 눈으로 직접 담은 공간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아련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 그래야만 그 감정들이 진실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위에 언급했듯, 내 여행의 기술 중 하나가 그 도시를 두발로 직접 뛰어보는 것이다.


 도시의 야경을 많이 봐온 사람들이라면, 그 광경들이 사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잘 알 것이다.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들, 빛으로 가득 찬 고가도로,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들. 똑같은 재료를 조금씩 다르게 조합한 게 끝이다. 어쩌다 가끔씩 도시마다 있는 특징적인 고층빌딩이 약간의 차이를 줄 뿐이다. 결국 비슷비슷한 야경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샹산에 오르기 전, 타이베이를 최대한 피부로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샹산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때 진심으로 상념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념에 빠져드는 그 순간이 내게는 여행의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기에, 소중하게 맞이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의 처음 발을 들인 곳, 내 숙소, 중정기념당, 국부기념관, 101 타워, 망고 빙수 집, 소룡포, 스펀 가는 기차역. 타이베이에서 들렀던 모든 공간들이 저 아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몇 년은 보낸 것 같은 이 도시를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한눈에 담았다. 나에게 샹산에서 내려다본 타이베이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아름다울 모습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그제야 현실을 자각했다. 너무나도 춥고 배고팠다. 다행히 돈은 있었다. 이미 흘러 넘 칠 정도로 강렬한 감동이 채워졌기에 오히려 미련이 없었다. 오를 때보다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샹산에 내려와 끼니를 해결할 장소를 물색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101 타워 내부에 들어가고 싶어 졌다. 건물 안보다는 밖의 디자인으로 더 유명한 곳이지만, 야경을 봐서 그런지 내가 봤던 공간을 직접 들여다보고 싶었던 점도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 비해 안은 여전히 사람들도 붐비고 있었고, 각종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오히려 맛집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붐비는 푸드코트로 향했다. 오늘만큼은 나도 대만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푸드코트에서 먹는 평범한 음식을 맛보면서 이곳의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101 타워에서 먹은 볶음밥, 굴전, 그리고 완자탕


 중화의 향이 짙은 볶음밥, 완자탕, 그리고 생소한 굴전이라는 음식을 시켜 먹었다. 가장 맛있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굴전이었다. 굴을 한 번도 전으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소함을 제치고 나서도 맛 하나만으로 일품이었다. 이런 평범한 푸드 코트에서도 이렇게 맛있는데, 굴전을 잘하는 맛집에 가면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하며 먹으니 더 맛있어지는 것 같았다. 


 식사를 다 하고 타워 내부를 돌아다녔다. 역시나 내부에는 그렇게 특별한 게 많지는 않았다. 롯데월드 타워를 거니는 느낌이랄까. 다만 하나 특별한 게 있었다면, 루이비통이라는 명품과 게임 캐릭터를 콜라보 한 포스터가 대문짝만 하게 홍보되어 있다는 점? 101 타워 외부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광고가 크게 걸려있는 걸 감안하면, 대만은 게임 관련된 문화에 상당히 유연한 것 같았다. 다시금 이런 문화가 부러워지는 시간이었다.


파이널 판타지 13의 라이트닝과 루이비통


 타워 안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이제는 숙소에 갈 시간이었다. 초저녁에 비 오는 산을 등산한 피로감이 갑자기 확 몰려왔다. 이대로 들어가면 씻고 바로 잠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괜히 이것저것 검색한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샹산에서 바라본 '타이베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슴에 품고 잠들고 싶었다. 또다시 찾아올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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