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이베이2016 (1)
천등 축제 하나를 보려 대만까지 왔다지만, 수도 타이베이는 여전히 내 편견 속에 사로잡힌 도시였다. 사실 대만이나 동남아시아 근처의 국가들을 한 번도 삶에서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내 상상 속 대만의 모습은 수많은 선입견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지저분한 거리, 정돈되지 않은 교통, 정갈하지 못한 거리 사람들의 복장 등등. 지금 생각하면 21세기에 그런 선입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될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미지들이었다. 하지만 2021년에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뒤, 우리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구나를 느끼고는 한다.
예상과는 다르게, 타이베이의 거리는 서울과 다를 것 없었다. 도심화된 부분은 서울 못지않게 도심화되어 있었으며, 아닌 부분 역시 지방 광역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영화 같은 곳에서나 보던 그런 풍경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타이베이의 거리는 유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다수의 건물들이 최신식 서구 양식을 따라가고 있었지만, 전통적인 구조물들 역시 도시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괴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럽에서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혼합된 곳이 이스탄불이었다면, 타이베이 역시 아시아에서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내가 이 도시를 더욱 사랑하나 보다.
천등 축제는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에 시작된다고 했다. 미리 스펀 역에 가서 대기하다가 축제를 즐기려면 타이베이 시에서 3시쯤에는 출발해야 했다. 중간에 루이팡이라는 곳에서 환승도 해야 했고, 처음 가는 곳이라 시간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타이베이 시에서 맛집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무작정 길거리를 걷다가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음식점을 발견했다. 앉아서 먹는 곳은 없었기에 '식당'이라고 부르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아무튼 오전 시간대인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이었다. 단번에 느낌이 왔다. 이곳이 맛집이구나.
신기하게 간판 네 글자 모두 내가 아는 한자였다. 스마트폰으로 '아종면선'을 검색했더니 타이베이에서 유명한 곱창 국숫집이라고 한다. 사설이지만 난 이때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혼자 갔던 여행인 2014년의 유럽 여행 때, 35일간 스마트폰 없이 아날로그로 길 찾고 돌아다닌 기억이 난 것이다. 아, 스마트폰이 있으니 여행이 얼마나 쾌적한지. 새삼 벅찬 감동을 느껴서인지 몰라도, 미칠 듯이 저 국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이야 곱창을 좋아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도 곱창은 쳐다보지도 않던 나였다. 그런 내가 곱창이 들어간 국수를 낯선 타지에서 먹으려고 한다는 건 도전 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여행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두 눈 질끈 감고 곱창 국수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내 주변 현지인들 모두 그러고 있었기에 나도 마음 편히 국수를 즐겼다. 생각보다, 아니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다. 국수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면발과 함께 씹히는 곱창 맛이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했다. 사람들이 이 맛에 곱창을 먹는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곱창을 지금보다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저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곱창 국수였다. 한국에 와서도 곱창 국수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었기에 쉽사리 누군가를 데려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심지어 파는 곳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만에서 한국에 들여온 음식들이 정말 많다. 대왕 연어 초밥과 카스테라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 정도로 인지도가 대단했다. 언젠가는 곱창 국수 역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국물까지 시원하게 마무리한 뒤, 생각보다 가득 찬 배를 꺼지게 하기 위해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투어를 잡지 않다 보니 시간 제약에서 매우 자유로운 편인 일정이었다. 그리고 첫 유럽 여행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없어서 길을 헤맨 걸 미화한 거긴 하지만, 그 도시의 거리를 느긋하게 걸으며 감상하는 것이 생각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마친 뒤 처음으로 다시 온 해외여행에서도 비슷한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극적인 장소를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거리를 걸으면 걸을수록, 타이베이를 향한 내 편견 속에 익숙함이라는 감정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생긴 것만 조금 다르지, 하는 행동은 여느 나라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원 옆에는 벤치가 있었고, 문화재 근처에는 가족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정처 없이 방황하는 사이, 타이베이의 거리는 익숙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닌, 그 거리를 함께 걷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다. 항상 그랬다. 그들과 동행하는 순간 편견은 깨지고 같은 사람이라는 익숙함과 반가움이 자리 잡는다. 유럽에서도 그랬고, 타이베이에서도 그랬고, 그 후에 있었던 모든 여행에서도 그랬다. 그렇게 대만의 수도는 하루도 안 돼서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 됐다. 손목에 찬 시계가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기차를 타고 스펀으로 갈 시간이었다.
스펀 역으로 가는 길은 살짝 따분했다. 루이팡이라는 곳에서 환승해서 스펀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과정이 특히 더 그랬다. 루이팡 역 근처를 돌아다녔으면 소소한 재미라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돌아다녔다. 내가 조사를 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루이팡 역 인근에는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역 주변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걸었다. 그러다 한 폐허를 발견했다.
게임 기획자 지망생의 상상력이 가동하는 순간이었다. 왜 멀쩡한 거리 한가운데에 저런 폐허가 있을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말도 안 되는 상상력에 빠져드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고, 스펀으로 향하는 기차가 온다는 방송이 역내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울려 퍼졌다.
몇십 분을 더 달려 도착한 스펀 역에 대한 내 첫인상은 '정감 가는 기차역'이었다. 감수성 돋아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기차역 딸린 소도시. 스펀은 그 감성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심지어 기차도 최신식 기차가 아니라 그런지 더욱 옛날 감성을 자극했던 것 같다. KTX가 도입되기 전에 무궁화호로 국내를 다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곳의 시간만 여전히 90년대에 머물러있었다.
물론 오늘이 천등 축제를 하는 날이라 그런지 어마어마한 수의 관광객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나 역시 그중에 한 명이었다. 시간은 아직 축제까지 여유가 있는 편이었기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길 곳곳마다 '천등 축제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기에 그 길만 피해서 곁다리를 구경했다. 그중에서 유독 사람들이 많이 향하는 장소가 있어서 조심스레 뒤따라갔다.
사람들이 간 곳에는 폭포가 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스펀 폭포라는 곳이었다. 솔직한 감상은 '그냥 폭포네'였다. 물론 나름대로 멋지고 신기하게 생긴 폭포였다. 단지 어렸을 때 캐나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봐서 그런지, 그 이하 규모의 폭포는 내 마음에 그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다. 물론 이건 내가 꼬인 부분이다. 대단한 관광지에 다녀왔다고 다른 관광지를 무시하다니, 꼭 고쳐먹어야 하는 관념이다. 그래도 이 폭포는 나에게 짠함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단순히 천등 축제에 왔다가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 폭포를 찾았을 것이다. 천등 축제라는 지역 명물이 없었다면 지금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았을 그런 장소. 알게 모르게 관광지들도 사람의 삶과 비슷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짠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이 내 발걸음을 더 오래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폭포에서 나와 다시 스펀 역 쪽으로 향하다가 가슴 설레는 광경을 목격했다. 빼곡히 들어선 주택가들 위로 등불 몇 개가 한두 개씩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풍선 같은, 어떻게 보면 연 같은 그 움직임들이 어린 시절의 동심을 자극했다. 내가 저걸 보러 여기 온 거지. 속으로 별의별 감탄사를 남발하면서 속으로 계속 외쳤다. '그래, 저거지. 저걸 보러 내가 여기까지 왔지. 다 이뤘다!'. 나는 신나서 등불들이 날아오르고 있는 지점을 향해 걸음을 보챘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적은 천등을 하늘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한 2초가량 '어, 설마 이게 천등 축제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뇌 정지가 왔다. 내가 상상한 라푼젤에 나오는 장면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이것이 스펀에서 상시 있는 행사라는 걸 알게 되고 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고 보니까 스펀이 어쩐지 '등불들의 고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성스레 만든 천등에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다. 천등을 만드는 사람은 천등이 하늘에 올라가면서도 튼튼함을 유지할 수 있게 정성스레 만들 것이다. 여기에 소원을 적어 날려 보내는 사람들 역시, 마음속에 있는 가장 간절한 소망을 정성스레 적을 것이다. 두 존재의 정성이 담겨야만 천등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뿐만일까. 날씨도 잘 따라줘야 한다. 아무리 잘 만든 천등이라 하더라도 비 오거나 번개 치는 날에는 잘 뜰 리가 만무하다. 쉽게 말해 하늘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하늘의 축복을 받은 천등은 그제야 하늘 위로 날아간다. 목적지는 모르지만 스펀 역이라는 좁은 땅에서 저 하늘로 멀어진다. 마치 요람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어린 생명의 모습 같다. 알에서 태어나 바다로 향하는 거북들처럼,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우렁찬 울음을 발산하는 아기처럼 말이다. 천등들은 그 과정들 속에서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이곳은 세상의 모든 천등이 태어나는 고향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까 나도 나만의 천등을 날리고 싶어 졌다.
나 자신의 2016년 소망,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천등의 네 개 면에 적어 날려 보냈다. 글을 쓰며 적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살펴본다. 여전히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제는 뭐하고 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몇 년만 젊었더라면 이 사실에 낙담하며 회한에 젖었겠지만 지금은 '삶이 원래 그렇지'라는 생각뿐이다. 모든 사람과 항상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냥 사람이라는 게 그럴 수 없는 존재 같다. 그래서 멀어진 자들을 놓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 역시 그렇다. 5일 뒤 천등에 적은 친구 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새삼 재밌게 다가온다.
천등을 날리고 나니 슬슬 축제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허기 역시 빠르게 다가왔다. 나름 검색을 통해서 이곳에서는 닭날개 볶음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간판마저 한글로 되어있어서 찾기 매우 쉬웠다.
적당한 불맛이 느껴지는 닭날개살과 그 안에 들어있는 따듯한 볶음밥이 환상적이었다. 길거리에 서서 먹었는데 다 먹는데 5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았다. 맛은 완벽했지만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에 하나 더 먹으려는 찰나,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스펀 역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인파가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천등 축제 시간에 딱 맞춰서 온 사람들로 보였다.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하다가는 인해에 쓸려 나갈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슬슬 축제가 진행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해가 빠르게 지기 시작했다. 아마 산동네라 그런가 보다. 스펀에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깔렸다. 동시에 내 설렘 역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라푼젤의 장면에서 깜깜한 밤하늘이라는 조건이 일단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밝은 등불들이 하늘 위로 올라가면 완성이었다. 저 멀리서 축제를 진행하는 사회자분의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국어라 뭐라 하시는지 하나도 들을 순 없었지만, 중간중간에 센스 있게 영어로도 통역해서 진행을 해주셨다.
그렇게 걷는 와중에 행사장에서 나오는 음악이 갑자기 감성적으로 바뀌더니, 사회자분이 'At this time, you can feel the happiness'와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내 옆에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을 돌아봤을 때, 내가 갈망하던 그 모습이 펼쳐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푼젤에서처럼 그런 극적인 연출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천등이 날아오르는 걸 초단위로 기다리며 본 게 아니라, 우연히 고개를 돌렸을 때 이 장면을 봐서 그런지 오히려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극중의 라푼젤처럼.
천등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동영상을 찍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화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제 눈으로 이 광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한 달 넘게 기다려온 광경이었다. 기다림이 커서 그런지 몰라도 천등들을 직접 눈에 담았을 때의 희열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냥 이상태로 한국에 돌아가도 후회 없을 정도였다. 겨우 저거 보려고 대만에 갔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유 없이 누군가가 그냥 좋은 것처럼, 나 역시 이유 없이 이 광경이 좋았다.
이런 감정을 마냥 나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내 주변을 둘러보니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국적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른 사람들이 고작 밤하늘에 천등 하나 본다고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너무 디즈니스러웠다. 어릴 때도, 나이가 들어도 디즈니가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사람들이 천등 축제를 찾는 이유 역시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삶에 찌들어가고 험한 세상을 견뎌 내다 보면, 나 자신 역시 찌들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예전의 순수함은 이미 다 사라진 것 같고, 계산적이고 합리성만 따지는 내 모습만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습에 씁쓸함을 삼키면서도 그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이 사진과 영상을 보곤 한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순수함을 붙들어주는 몇 안 되는 동아줄 중 하나. 그중에서도 단단하고 견고한 동아줄. 그게 스펀에서 바라본 천등이 내게 가지는 의미였다.
'At this time, you can feel the happiness...'
사회자분이 천등을 날리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건 단순한 진행용 멘트가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한마디였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