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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Mar 14. 2021

라푼젤에서 시작된 대만 여행

#0. 타이베이를 향해

 나는 남들이 다 엘사를 외칠 때 라푼젤을 외치는 사람이었다. 함께 있는 사람에게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라푼젤이 좋았다. 라푼젤을 영화관에서 처음 본 뒤, 한동안 누군가가 이상형에 대해 물어보면 '디즈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렇게 라푼젤은 내 최애 디즈니 시리즈가 됐다. 하지만 내가 라푼젤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라푼젤이라는 인물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극 중에서 나오는 천등 축제 장면 때문이다.


 어릴 때 사라진 공주(라푼젤)를 찾기 위해, 코로나 왕국에서는 매년 공주의 생일 때마다 하늘로 천등을 날려 보낸다. 왕국의 전 국민이 날리는 수 백, 수 천 개의 천등이 밤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끓어오르던 순수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감정이 너무 강렬했다. 하늘을 수놓던 천등들의 아름다움은 그 이후로 내 마음속에 확실하게 각인됐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뒤, 2016년 12월. 페이스북에서 여행 관련 게시글들을 살펴보다가 한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었다. 밤하늘에 수 백개의 천등이 흔들리는 걸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카드 뉴스처럼 삽입되어있었다. 


2016년 겨울 꼭 가봐야 할 여행지 Top 10

#5 스펀 천등 축제


 사진 속에는 라푼젤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만약 그 상황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면 어떤 느낌일지 항상 궁금해했었다. 스펀에서 열린다는 천등 축제는 그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다. 몇 번의 검색 후에, 나는 그제야 천등 축제라는 게 원래 존재하는 행사라는 걸 알게 됐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꽤 유명한 축제 중에 하나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대만에 가고 싶어 졌다.


 사실 대만은 여행 좋아하는 내게 있어서 선택지에도 없던 나라다. 애초에 아시아 문화권은 여행지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첫 해외여행을 유럽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같은 아시아권 국가보다는 동유럽, 북유럽, 대양주 등의 서양권 나라들을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펀 천등 축제 때문에 대만을 조사하면서, 평소에 여행지에 대한 내 인식이 상당히 편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펀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근교 도시였기 때문에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조사했고, 그 결과 대만은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대만으로 이끈 천등 축제는 물론이고, 동양적이면서도 SF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는 101 타워, 2월에 벚꽃이 피는 양명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인 단수이 고등학교와 단수이 강, 등등. 사진으로만 봐도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장소들이 많았다. 특히 대만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종의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누가 봐도 서양적인 디즈니의 한 장면이 동양에서 동일하게 재현된다는 것,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가 의외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내 궁금증을 자극했다. 천등 축제가 있는 날에 맞춰서 비행기표를 찾아봤더니, 축제 전날 밤에 타이베이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있었다. 딱히 비수기였던 것 같지는 않은데, 환승 없이 밤 10시에 도착하는 일정이면 준수한 편이었다. 부모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빌려 비행기표와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했다. 2014년에 다녀온 유럽 여행은 일종의 전역 선물이었기 때문에 부모님 돈으로 갔다지만, 이후의 여행마저 지원받아 가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나는 한 달 동안 알바를 해서 부모님께 돈을 다 갚은 뒤, 2016년 2월 21일 밤 10시에 타이베이 시내에 도착했다.


 싫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이 여행은 훗날 내 여행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여행은 무조건 서양권으로 가야 된다는 내 일종의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박살 냈다. 이때부터 동남아와 동아시아 국가권이 내 관심 여행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말레이시아, 일본, 세부 등의 여행지에서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여행 경험이 디즈니 영화의 한 장면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걸 내 삶이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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