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쿠알라룸푸르 2018 (3)
오늘은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일부러 투어도 잡지 않고 일정을 넉넉하게 잡았다. 저녁 시간에 버스를 타고 남부에 있는 말라카라는 도시로 가기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 도시를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다. 솔직히 쿠알라룸푸르에서 주요 관광지는 한 번씩 둘러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거리를 거닐면서 현지인들의 향기를 느끼길 원했다.
느지막한 오전, 쿠알라룸푸르의 명동이라 불리는 부킷 빈탕 인근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여태까지 도시 안에서 본 것들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의 향기보다는 현대화된 도시의 산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지인들이 최대한 많은 곳에 가서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했다.
알록달록한 골목길, 흙냄새 나는 거리를 거닐며 그저 주변을 둘러봤다. 딱히 관광 포인트라고 할 만한 곳은 없었지만 이른 시간에 낯선 도시를 거니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인생 첫 해외 배낭여행에서 길을 잃고 이스탄불 거리를 헤매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었다. 그제야 속으로 머리를 탁 쳤다. 나한테나 있어서 이곳이 여행지일 뿐, 이 장소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평일 오전,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각자의 일터로 나가 있을 시간일 터다. 이곳에서 나는 백수였다. 얏호! 흥이 절로 났다. 모든 직장인들은 백수가 되고 싶은 법이다. 한국에서의 야근 지옥을 잠시 잊고, 한국에서 못하는 한량 생활을 오늘 이 도시에서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무작정 들어갔다. 약간 로망이기도 했다. 아무 걱정 없이, 끝내지 못한 일감들 걱정 없이, 내가 한 일이 오류 없이 잘 돌아갈지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거리를 거닐다가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여유를 즐기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한 꿈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그런 현실이었다. 돌아보니 참 슬픈 시기를 살고 있었다. 아무튼, 나는 들어가서 더치커피 한 잔을 시키고는 일부러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동남아 지역이라 그런 건지, 그냥 날이 좋은 건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 그 즐거움이란, 에어컨을 틀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쾌락과 비슷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항상 뭔가를 원한다. 그리고 보통 자기에게 없는 것을 원하고는 한다.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해 포기한 것들마저 다시 원하게 된다. 취준생일 때만 해도 일만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워라벨 그런 거 없어도 되니까, 삶의 여유 같은 거 없어도 되니까 일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이런 느긋한 여유를 가지길 원한다. 그렇다고 이런 여유를 얻기 위해 일을 포기할 거냐? 그건 절대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가지길 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깨닫는다. 모든 것을 얻기란 불가능한다는 걸 말이다.
지금의 내가 딱 그랬다.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레이시아에 올 수 있는 돈을 마련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만 하자니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 올 시간이 없을 것이다. 결국 균형 잡인 게 최고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보다. 분명 누군가가 여행 와서 나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일과 쉼에 대해 고찰하다가 만들어낸 단어일 것이다. 머리 아픈 생각은 그만두고, 다시 잡념을 비우고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오후에 있을 말라카행 버스를 타기 전, 바투 동굴에서 쿠알라룸푸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도시 근처에서 갈 수 있는 이색적인 곳을 찾다가 선정한 곳이었다. 사전 정보는 없었지만 무작정 택시를 타고 바투 동굴로 향했다. 여담이지만 말레이시아에 와서 한 가지 놀란 것이 있다. 그랩이라는 택시 서비스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어플로 택시를 잡는 그런 선진화된 문명은 IT 소비 강국인 한국의 전유물인 줄 알았다. 그런 내 편견은 이곳에 와서 산산조각 났다. 그랩으로 카카오톡 택시처럼 서비스를 신청하면 아무리 늦어도 5분 내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심지어 서울의 고질적인 문제인, 단거리 승차 거부라는 폐해도 전무했다. 그랬기에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랩 택시로 바투 동굴에 도착한 나는 당황스러움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답고 거대한 동굴의 입구보다는, 내가 올라가야 할 계단들이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바투 동굴 입구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눈에 아예 안 들어온 건 아니다. 그저 이 무더운 날씨에 저 정도 되는 계단을 오르면 얼마나 짜증이 솟구칠지 상상하니까 짜증이 났던 것뿐이다. 그런 자잘한 것들만 제외한다면 바투 동굴은 입구부터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단 확실한 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계단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족히 잡아도 수 백개는 될법한 계단들이 오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그 원색적인 색이 첨가되어서 그런지 더욱 향토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저 정도 되는 계단이라면 오를 법도 하겠다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로 말이다. 그 옆에 거대하게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금으로 된 신상은 신성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고행자들이나 오를 법한 높은 계단과 그 옆을 지키는 신상의 조합은, 어딘가 신성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뒤에 펼쳐진 기암괴석들 역시 한몫한다. 경건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 수 백개의 계단을 걸으며 잡념을 털어내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신성한 곳에 들어가라는 그런 의도였을까?
확실히 고생 끝에는 보상이 존재한다. 땡볕 아래에서 계단을 오르니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의지적인 마음, 그다음에는 짜증, 그리고 마지막에는 무념무상이 됐다. 경건해지는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잡생각을 없애는 데는 성공했다. 그저 이 계단이 얼른 끝나기만을 생각 없이 바랬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을 밟은 후 보이는 광경에 깊은 탄성을 내질렀다. 딱 봐도 공기가 시원해 보이는 공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저히 산 안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규모의 천연 냉장고가 공허한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더위로 인해 지쳐있던 것도 잠시, 얼른 저 냉기를 느끼고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공동 안으로 걸어갔다.
무엇보다 장관이었던 건 공동을 지나 저 멀리,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줄기가 보였다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산속을 비추는 햇살은 평소보다도 더욱 찬란했다. 쿠알라 셀랑고르 강에서 봤던 반딧불이 희미한 희망이었다면, 이 빛은 찬란한 은총처럼 느껴졌다.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열기가 가시고 시원함이 몰려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저 빛 아래로 내려가 두 팔을 뻗고 그 찬란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도 좋았다. 뭐가 그리 좋다고, 뻥 뚫린 천장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맑아지는 걸까? 그렇게 자연이 주는 신비에 매료되어 있는 사이, 나는 여행에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만났다.
왼손에 헐렁하게 쥐고 있던 오렌지 주스가 갑자기 손에서 휙 빠져나갔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더니, 원숭이 한 마리가 페트병을 낚아챈 채로 본인의 보금자리로 도망가고 있었다. 내 소중한 음료를 빼앗겼다는 사실보다도, 너무 귀엽고 황당한 마음에 재빨리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과연 저걸로 뭘 어쩌나 볼 심산이었다. 놀랍게도, 원숭이는 닫혀 있던 뚜껑을 직접 돌려서 깐 다음에 오렌지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사람도 아닌 동물이 저렇게 손쉽게 음료를 마시는 걸 보며 황당함에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소매치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덕분에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었기에 저 원숭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사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바투 동굴 관광이다. 하지만 계단 중턱에 빠져나온 다른 길로 가면, '진짜' 바투 동굴을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단순히 그냥 걷는 게 아니라, 머리에 광부들이 쓰는 헤드라이트 안전모와 안전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한다. 꽤 길게 산 내부로 뚫려 있는 종유석 동굴을 왕복하는 것이다. 안에 박쥐들도 있고, 빛이 없으면 완전한 암흑으로 뒤덮인 곳이기 때문에 꼭 안전 장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래는 전혀 할 생각이 없는 관광이었지만, 경고문을 보자마자 쓸데없는 모험심이 발동했다. 살면서 언제 종유석 동굴을 안전모 착용하고 탐험해보겠는가? 심지어 이 동굴 내부의 어둠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완전한 암흑을 자랑한다고 하니, 그것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인원이 스무 명 정도 차자 가이드 두 분이 우리를 인솔해서 동굴 탐험에 나섰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서웠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기도 했으며, 안전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만 뭐가 있는지 보이고 나머지 공간은 눈을 감은 것처럼 깜깜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실제로 겪어보니 공포 영화를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일행들의 잡담과 가이드분의 설명 때문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게 생각보다 엄청난 위안이 됐다.
동굴 가장 깊숙한 곳 직전까지 갔을 때쯤, 가이드분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이 동굴 안에서도 가장 어두운 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눈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밝기라고 했다. 이제부터 1분 정도 누구도 말을 하지 말고 불도 키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1분 동안 완전무결한 어둠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거라고 했다. 설렘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런 진귀한 경험을 쉽게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여행객들도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
가이드분의 카운트 다운과 함께 암흑이 찾아왔다.
"자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겁니다. 셋, 둘, 하나."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흔한, 미세한 바람소리마저도 우리와 함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게, 들리지 않는 게 이렇게 절망적이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그다음에 찾아온 생각은 내가 살면서 가장 깊으면서도 짧게 했던 고민이었다.
솔직히 옆에 있는 일행들 몇몇이 살짝 인기척을 내는 소리는 들렸다. 그 행동들은 다 서로를 꼭 붙잡는 행위였다. 아마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을 때, 나는 과연 누구의 혹은 무엇의 손을 붙잡을 것인가?'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어두운 순간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희미한 빛은 항상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빛이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고, 일단 바라볼 빛은 항상 어딘가에 있다. 바라보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라는 걸 여태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바라볼 곳조차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을 주는지 이 암흑으로 인해 알게 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찾아올 때, 무엇을 향해 나아갈지 누구의 손을 잡을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결국 그때부터는 내 선택이다. 누구도 먼저 와서 잡아주지 않고, 누가 와서 빛을 밝혀주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는 반딧불도 없고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내려오는 햇살도 없었다. 내가 어디로 향할지 내가 정하고 무언가를 붙잡고 직접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도 아마 똑같을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이 결국 나를 어딘가로 이끌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모든 것을 결정짓게 된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연 나한테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날 그 순간, 나는 답을 내렸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마음속에 각각 다른 빛을 품고 살아간다. 나에게는 그 빛이 어떤 건지 오히려 확고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 같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둠 속에 처함으로 인해 내 안에 빛을 발견하는 그 역설적인 상황이 감사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이지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때, 우연의 일치인지 가이드분이 헤드라이트를 켜며 어둠 체험이 끝남을 알렸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예의 그 하늘 구멍이었다. 여태까지의 고된 길을 잘 이겨낸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 같아 보였다. 여정 자체가 너무 교훈 같은 서사를 취하고 있어서 조금 웃겼지만, 한 순간도 버릴 것이 없는 모험이었다. 바투 동굴의 계단을 내려가며 자극됐던 내 모험심에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뒤, 우리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바투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고작 동굴 하나일 뿐인데 하루가 가득 찬 그런 느낌이었다. 찬 공간 안에서 있다가 나왔지만 쿠알라룸푸르의 열기는 금세 내 몸을 다시 뜨겁게 달궜다. 그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먹었던 망고 주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원했다. 이제 말라카로 갈 시간이었다.
말라카를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도시 말고 바다가 있는 곳에서 야자수를 벗 삼아 원두막 바캉스를 즐기고 싶었다. 가끔 영화 보면 그런 거 있지 않나. 요원들이 휴가를 얻어서 동남아 저 어딘가에서 나무로 된 집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 그럼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말라카가 목적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말라카 역시 생각보다 볼 게 많은 도시였다. 그리고 이곳이 오히려 옛 말레이시아 문화가 태동한 곳이라는 점 역시 상징적으로 다가왔다.
느지막한 오후,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라카행 버스를 탔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든 뒤 눈을 떠보니 하늘은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말라카 터미널에서 그랩 택시를 잡아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의 외형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바로 옆에 바다가 펼쳐져있고 야자수와 나무집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벌써부터 가슴 설레게 했다. 느지막한 아침에 일어나 씻지도 않은 채로 바로 오두막집을 나와, 바다에 몸을 담글 생각 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대충 둘러만 봐도 내가 원하던 모든 것들을 충족하는 곳이었다. 숙소 하나 잘 정했다는 생각이 짐을 간단히 풀고 바로 말라카 밤거리를 산책하러 나갔다.
동일 시간대 쿠알라룸푸르와 비교해서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물론 한국 역시 서울과 다른 도시를 비교하면 비슷하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보다는 환경에 더 집중하면서 걸을 수 있었다. 길 잃은 새끼 고양이를 만나 심정지가 한 번 오고, 향토적인 분위기가 나는 강가를 보며 환상에 젖기도 했다. 내일부터 말라카 투어가 시작되는데, 그때 또 어떤 감동과 아름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에 나래를 펼치며 말라카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슬슬 배가 고파졌다.
솔직히 맛집을 찾기에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보통 밤늦게까지 하는 쿠알라룸푸르와 달리, 말라카의 식당들은 이른 저녁부터 벌써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간은 벌써 밤 9시. 이때 운영하는 식당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괜히 맛있는 곳을 찾으러 검색하다가 시간이 다 가서, 최악의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냥 무작정 옆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많이 민망했다. 이곳은 식당이긴 했지만, 오히려 파티 하우스 분위기에 가까웠다. 대가족 구성원들이 단체로 전세 내서 올만한 넓이의 야외 정원이 있었고, 모든 식사는 야외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빔 프로젝터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축구를 보고 있었다. 물론 이 사람들이 모두 다 한 일행은 아니었지만, 수 십 명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5인용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특히나 외지인인 내게 있어서는 더더욱 말이다. 심지어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여행을 그렇게 오래 다녔어도 이건 꽤 고난도에 해당하는 혼밥이었다.
물론, 그 어떤 것도 배고픔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 지인들과 야외에서 축구를 감상하는데 굳이 나한테 신경을 쓸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편안하게 뇨나식 요리를 시켜서 기분 좋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소스까지 싹싹 긁어서 밥과 비벼먹었더니 금방 배가 불러왔다. 다시 숙소까지 걸어가면서 소화를 시키면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말레이시아의 세 번째 날이 지나갔다.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을'이라는 부분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발이 됐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인생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이 하루의 마무리를 글에서나마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나의 소소한 욕심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