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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May 09. 2021

여행에서 두고 온 것

#13. 쿠알라룸푸르를 떠나며

 말라카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여행사의 벤을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올라왔다. 가이드분은 친절하게도 내가 당일에 예약한 호텔까지 직접 데려다주셨다. 당일에 예약한 호텔 치고는 가격과 숙소의 질이 상당히 뛰어났다. 이곳에서 아쉬운 건 딱 한 가지. 도심과의 접근성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정오쯤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공항에 가기 수월한 곳으로 숙소를 잡는 게 현실적이었다. 이제는 다시 현실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서서히 버릴 때였다.


예상보다 훨씬 좋았던 숙소 내부 모습


 사실 마지막 밤을 부킷 빈탕에서 보내고 싶었지만, 내 계산 착오가 있었다. 쿠알라룸푸르로 올라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고, 호텔 체크인이다 뭐다 하다 보니 이미 시간이 11시가 된 것이다. 이 시간에 부킷 빈탕에 갔다가 돌아오면 일러도 새벽 1~2시는 될 것이 뻔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체력 관리에도 힘써야 했다. 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왜 꼭 여행 마지막 날에는 현실적인 생각만 하는 걸까. 그냥 모험을 해봐도 좋을 텐데.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근처 편의점에서 말레이시아에서만 파는 컵라면을 사서 호텔방에서 먹으며 해소했다. 그리고는 말레이시아에서 마지막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창문


 아침에 눈을 뜨니 예쁜 하늘이 나를 반겼다. 지금이 아침인지 석양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아름다운 주홍빛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내 눈에서 정체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겠다. 그 자리에서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정말 부끄럽지만, 육성으로 '회사 가기 싫어'를 연발하며 통곡했다.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하면 출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든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 슬펐다. 그 복합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통곡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웃겨 죽겠다. 아니, 얼마나 회사를 가기 싫었으면 여행지 호텔에서 혼자 '회사 가기 싫어'라며 울어댔을까. 물론 결과적으로 정확히 1년 뒤에 그 회사를 퇴사했지만,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만큼 내가 힘든 회사 생활을 영위 해내가고 있다는 뜻 이리라. 적어도 한 달에 세 번을 주말 출근시키는 회사는 다시는 다니지 않을 거다.


 한창 울고 나니까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수미상관이다 수미상관


 인피니티 풀이었다. 애초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 수영을 즐기려고 온 것 아니었나. 수미상관이라고, 마지막 아침 역시 쿠알라룸푸르 시내가 다 보이는 인피니티 풀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날씨 역시 감성적이라 그런지 마지막 날을 장식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물을 가르며 수영했던 걸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마지막 한 시간을 어떻게든 누려보겠다고 열심히, 그리고 격렬하게 수영장 안을 휘젓고 다녔다. (민폐 되지 않는 선에서...)


 이제 정말 끝이었다. 방으로 내려와 짐을 싸고, 그랩 택시를 불러서 공항으로 가고,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비행기를 탔다. 정말 단출한 마무리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여정 치고, 정말 단순한 마무리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여태 다녔던 여행지 중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곳은 이 말레이시아였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어지간한 감정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 오히려 명확해진다. 그래서 내가 전에 왜 그랬는지를 진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말레이시아는 물음표로 남아있다. 


공항에서 올드 타운 화이트 커피로 마무리한 점심 식사


 그때 흘린 눈물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글에서 쓴 대로 단순히 그리움과 회사 가기 싫은 서러움들 뿐이었을까? 분명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흘린 눈물들 속에 그 이유들이 섞여있을 것이다. 내가 말레이시아에 두고 온 눈물들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다. 내가 여행지에 두고 온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것들을 잊거나 찾아내지 못하는 이상, 나는 아마 평생 그 도시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언젠가 다시 한번 찾아갈 거라고 약속했다. 한 번 간 여행지는 다시 찾지 않지만, 이 도시만은 내가 한 번 찾아가겠다고 꼭 다짐했다. 정확히 1년 조금 넘은 뒤,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이렇게 아시아권을 향한 내 마지막 여행이 끝이 났다. 나의 해외여행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럽 여행, 아시아권 여행, 그리고 호주 여행이다. 유럽 여행과 호주 여행은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여행들이다. 하지만 유독 아시아권 여행만 여러 가지가 혼재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혼자 다닌 여행, 가족 여행, 그리고 당일치기 여행 등등. 작지만 뭉치면 강하다는 게 이걸 두고 말하는 것 같다. 떼어놓고 본다면 호주와 유럽 여행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문화권으로 뭉쳐놓고 보니 사랑으로 가득한 여행이 되어버렸다. 


 아마 이렇게 여행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내가 이 여행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나조차도 몰랐던 그 마음을 모르고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계속 여행 일기를 쓰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의 해외여행 업데이트가 없지만, 이제 마지막 남은 호주 여행 일기를 향해 또 달려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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