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거나 꽉 눌러붙으며 내 길을 찾는 이야기
후라이의 꿈 by 악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고래도 사랑을 찾아 파도를 가를 거라고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 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Spread out
틀에 갇힌 듯한 똑같은 꿈 Spread out out 난 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 퍼지고 싶어 난 차라리 굴러갈래 끝은 안 보여 뒤에선 등 떠미는데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고민 하나 없이 퍼져 있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이 글은 노래 가사를 선정해 하나의 사사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작사가의 원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으니,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원곡을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가사는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첫 연)라는 문장으로 청자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벽에 가로막힌 거위가 결국 하늘을 난다는 이미지는 어쩌면 기적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곧 일어날 법한 일처럼 담백하게 표현됩니다. 뒤이어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첫 연)라는 구절이 이어지는데,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끌고 옵니다. 작은 생물이 광활한 바다 끝에 꿈을 두는 모습을 그리며, 가사는 ‘한계’를 뛰어넘는 강인한 이상을 암시합니다.
이 노래가 탄생한 사회적 맥락은, 개인이 자기 뜻을 펼치고자 해도 끊임없이 ‘높은 곳’이나 ‘정해진 틀’을 강권받는 현실과 연결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압박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사는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중간 부분)이라는 직설적 표현으로 강요받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거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완강하고 거친 반항보다도, 부드러운 저항에 가까운 방식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겠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은유적으로 전개되는 벽을 넘어 날아가는 거위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달팽이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현대인의 일탈하고 싶은 욕구를 대변합니다. 다만 가사는 억지스럽게 ‘투쟁’을 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속도로 “흘러가겠다”라고 이야기하며, 억압적인 틀에 지친 이들에게 조급하지 않은 도전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 노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티프는, 화자가 “난 차라리 흘러갈래”(후렴 부분)라고 말하는 동시에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후렴 부분)라고도 선언한다는 점입니다. 첫인상에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태도는 서로를 보완하는 이중적 선택으로 다가옵니다.
예컨데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후렴 부분)라는 부분은 흘러가기와는 정반대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라는 자유 선언일 수 있습니다. 압박에 순응해 빡빡하게 움직이는 대신, 부드럽게 퍼지듯 자기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way, way)”라는 구절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결처럼 유동적 태도를 강조합니다. 흘러감은 과감한 떠남과 변화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눌러붙기는 사회가 제시한 목표에서 비켜나 자기만의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표현으로도 해석됩니다. 결국 두 이미지 모두, 타인이 정해준 목표나 꿈을 맹목적으로 좇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가겠다는 자유의지의 변주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모티프는 서양 문학에 등장하는 갈림길의 은유와도 맞닿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에서 “덜 밟힌 길을 택했다(The Road Not Taken)”라는 대목이 있듯, 이 노래도 흘러가는 길과 눌러붙는 길을 동시에 보여주며,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자발적 결정의 의미를 짚어줍니다. 흥미롭게도 둘 중 어느 것을 택해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확고함이 느껴집니다.
가사의 매력 중 하나는 반복과 비유를 통한 운율감입니다. 특히 “Spread out, out / 난 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 퍼지고 싶어”(브리지 부분)라는 구절은, 퍼진다는 동작을 반복해서 노래하여 강한 청각적 효과를 일으킵니다.
“계란 fry, fry 같이”(후렴 후반부)라는 독특한 비유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계란후라이가 부드럽게 퍼지는 모습을 상상하면,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을 펼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흔히 시나 소설에서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은유가 성장을 상징한다면, 이 노래는 한 발 더 나아가 계란 노른자처럼 퍼져버리는 자유를 제시합니다.
동시에, “고래도 사랑을 찾아 파도를 가를 거라고”(2절 부분) 같은 문장은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고래의 이미지로 강렬한 움직임을 그려냅니다. 느리고 둔한 듯 보이지만 한 번 방향을 잡으면 누구도 쉽게 막을 수 없는 고래처럼, 화자는 자신만의 속도로 파도를 가를 결심을 노래합니다. 이러한 수사 기법은 단순히 “나는 자유롭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그림 같은 상징을 만들어냅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특별히 비극적인 상황이나 극적인 고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2절 후반)라는 대목에서 사회적 편견을 언급하긴 하지만, 그조차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2절 후반)라고 말합니다.
즉, 화자는 세상의 시선이나 강요에 개의치 않고, “나 죄지은 거 아니다”라는 의연함을 유지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갈등-고난-극복-해결로 이어지는 흐름과는 조금 다릅니다. 대신 화자는 “난 차라리 흘러갈래”(후렴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극복보다는 흐름에 집중하는 독특한 시점을 보여줍니다.
가사가 제시하는 자유롭게 퍼지는 이미지는 동서양의 여러 예술작품과 대화할 만한 여지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의 “O Captain! My Captain!” 장면은 청소년들이 기성의 권위와 규율을 벗어나려는 상징적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 자신들만의 시선을 얻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틀에 갇힌 듯한 똑같은 꿈”(브리지 부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노래 가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I Have a Dream(I Have a Dream, 1963) 연설에서, 그는 “자유가 울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 인종차별을 넘어선 해방을 외쳤습니다. 이 노래에서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라는 구절은 물론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지만, 근본적으로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공통된 열망을 공유합니다. 다만 이 곡은 거창한 운동이나 투쟁을 말하지 않고, 차라리 계란처럼 눌러붙겠다는 소박한 자유 방식으로 이를 그려낸다는 점이 색다릅니다.
문학에서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데미안』(Demian, 1919)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구절이 등장해 기존 세계의 틀을 깨야 새로운 자아가 탄생한다고 말합니다. 이 노래 가사에 “난 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와 퍼지고 싶어”(브리지 부분)라는 장면이 직결되며, 더없이 명확한 상호텍스트성이 형성됩니다. 즉, 달걀(계란)에서 나오고 싶은 갈망은 세계 문학에서 흔히 묘사되는 ‘성장’의 상징이며, 이 곡 역시 그 기원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가 주는 핵심 메시지는 “인생을 너무 어렵게만 보지 않아도 된다”는 철학적 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특히 경쟁과 성취, 속도의 가치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 가사에서는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2절 후반)라고 반문하며, 하고 싶은 게 없는 것도 죄가 아니고, 뚜렷한 목표 없이 흘러가거나 눌러붙는 것도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스스로에게 “너는 어떠한 구체적 목표를 갖고 있느냐”라고 꾸준히 물어야 하는 현대인에게, 단호하게 ‘나는 그냥 흐르고 싶다’고 선언하는 용기가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개인이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회에서 ‘쉼’과 ‘느림’을 선택하는 것은 크나큰 결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가사는 그런 결단을 결코 엄숙하게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후렴 부분)라는 표현으로 가볍고 코믹하게 풀어냅니다.
또한, 자칫 게으름이나 무책임으로 보일 수 있는 태도조차, 본인이 진정 원하는 삶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는 함의를 내비칩니다. “흘러갈래”와 “눌러붙을래”라는 어법 자체가 결심을 표명하는 어조이기 때문에, 이 게으름은 무기력이 아닌 적극적인 자기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적으로도, 기존의 규범이나 성공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적 행복을 중시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 곡은 그런 전환의 시대정신을 감각적으로 포착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가사 전체를 조망해보면, <후라이의 꿈>은 분명히 문학적·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귀에 꽂히는 멜로디나 히트 요소를 넘어, 한국어 특유의 구어적 리듬감과 상징적 이미지를 결합함으로써 자유와 비순응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소박한 일상 소재인 계란후라이가 어떻게 삶의 태도를 함축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신선합니다.
청자는 이 노래를 들으며, “꼭 높은 곳을 우러러봐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화자와 함께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라고 중얼거리며, 그 느긋하고 유연한 선택에 작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 음악사와 대중문화의 맥락에서도, 흘러감과 눌러붙음을 동시에 채택하는 가사는 획일화된 성공 서사를 거부하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아이돌 음악, 힙합, 록 등 장르를 막론하고, 이제는 단순한 야망이나 청춘의 열정만을 노래하기보다 다양한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곡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그중에서도 확연히 개성적인 목소리를 내며, 청자에게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허락하는 메시지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후라이의 꿈, 악뮤 (싱글, 2023)]의 가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더 다양한 시각을 원하신다면 아티스트 인터뷰나 다른 리뷰도 참고해보세요. 음악의 매력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