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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유아왓유잇] 에스컬레이터는 우리의 사랑을 싣고

첫 손잡기, 그리고 우리의 상상 속 미래

by Brayden Feb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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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귀고 2번의 데이트 동안 손을 잡지 못했다. 그녀의 작고 예쁜 손을 볼 때마다 잡고 싶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망설였다. 손을 잡다가 거절당하면 어쩌지,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수많은 걱정이 내 마음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세웠다.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손이 닿는 그런 클리셰를 연출하려 했다. 하지만 운명은 내 작은 작전 따위에 비웃기라도 하듯, 더 로맨틱한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영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우리는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 2층을 구경하다가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녀가 넘어질까 늘 그녀의 앞에 에스컬레이터에 섰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어 뒤돌아보는 순간, 손잡이를 잡으려던 내 손이 그녀의 손과 포개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순간 깜짝 놀라 손을 떼었지만, 이 우연이 우리의 첫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다시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5초 정도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힘을 주어 내 손을 마주 잡았다.


코엑스에 다시 갔을 때 재연했던 사진이다.코엑스에 다시 갔을 때 재연했던 사진이다.




1층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우리의 손은 계속 맞잡은 채였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매니큐어를 꺼내더니 내 손톱에 칠해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우리는 인테리어 잡지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북유럽 스타일의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좋아했고, 그녀는 따뜻한 원목 가구들로 채워진 공간을 선호했다. "우리 신혼집은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연애 5일 차에 벌써 같이 살 집 이야기를 하는 게 우스웠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식사를 하며 연세대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에서 읽은 구절을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그녀는 웃으며 "그럼 우리는 지금 엄청 행복한 거네?"라고 말했다. 맞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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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 손에 발라준 매니큐어. 그 날 샤워를 하다가 다 벗겨져 버렸다.




 우리는 코엑스에서 '유아왓유잇(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식당에 갔다. 짜장면을 좋아하는 그녀는 트러플 자장 파스타를 시켰고, 나는 오일 파스타를 좋아해서 알리오 올리오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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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자장 파스타와 알리오 올리오, 정말 맛있었다.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면서도 손을 잡은 채였다. 영화 속 '불안이'처럼 우리도 미래에 대한 작은 걱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은 채로 있으면 그런 걱정들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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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우리는 생일도 하루 차이고, 이름도 한 글자 차이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의 손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맞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우연들을 두고 운명이라고 하지 않을까.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부끄럽지만, 나는 확신한다. 우리의 손이 처음 마주 잡은 그 순간부터, 앞으로도 계속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그날 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다 보니 매니큐어가 전부 벗겨져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다음에 만날 때 그녀가 또 예쁜 색으로 발라주겠지. 우리에겐 아직 수많은 '다음'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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