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 차/ 무라카미 하루키의 부인이 되고 싶다

by 집녀

나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걷기 운동 갔다가 돌아와 씻는다. 점심을 먹고 드라마를 본다. 낮잠을 잔다. 멍 때리거나 쓸데없이 인터넷을 들락날락거리다 오후 운동을 간다. 갔다 오면 씻고 저녁을 먹고 또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잠이 든다.


운동 말고는 건설적인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런 내가 걷기 운동을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줄도 못 적었다.

글을 적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뭘 쓸지는 전혀 몰랐다.

소설을 쓰고 싶은 건지 에세이를 쓰고 싶은 건지도 감이 안 왔다.

글은 쓰고 싶은데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본인도 모르는 상황이다.


걷기 운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글 쓰는 양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몸에 근육이 붙듯이 글 쓰는 근육도 서서히 붙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뭘 쓰고 싶은 건지 몰랐다.

소설도 썼다 에세이도 썼다 시나리오도 썼다 혼자 별 짓을 다했다.

단, 하나라도 2장을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하얀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 바로 인터넷 세계에 빠져서 쇼핑 혹은 연예 소식을 보거나 유튜브에서 재미난 동영상을 보는 게 다였다.


글 쓰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기자로 일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학창 시절에 조금 있던 글쓰기 능력은 일하기 시작하면서 금방 다 소진해 버렸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을 벌겠다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내 능력을 알아 버렸다.

글로서 성공할 일은 없겠다는 사실을 말이다.

회사생활도 기대와 달리 망한 것처럼 작가로서의 꿈도 거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롤 모델이었다.

글 자체 보다도 그의 삶이 롤 모델이었다.

글 쓰며 운동하며 여행하며, 가끔 고국에는 인세 정산하러 들어가고. 그의 에세이를 보면 전 세계를, 원하는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는 매 여름마다 더위를 피해 글 쓰러 가고, 마라톤을 좋아해 전 세계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고, 여행 에세이 출간을 목적으로 여행도 돌아다니고... 바로 내가 원하는 그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롤 모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치명적으로 글 쓰는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부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부인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 모른다.

하루키 부인이라는 그늘에 묻혀 정작 자신의 능력은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로서는 창작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능력이 안 돼 상처가 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포기하고 싶다.

그냥 하루키의 부인이 되어 하루키가 누리는 삶을 같이 누리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게는 결혼할 남자가 없다.

그래서 ‘신속하게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를 롤 모델로 삼기로 한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