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차/ 사랑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속편 하다

by 집녀

산책남은 요즘 안 나온다.


매일 만나는 우연을 운명으로 이어가려 했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자주 얼굴을 들이대야 관심을 가질 텐데 얼굴을 볼 수도 보여줄 수도 없다.


산책남이 계속 안 나오자 마음에는 태풍이 휘몰아쳤다.


첫 번째는 자책 단계.

‘왜 말을 걸지 않았을까! 어차피 안 될 거라도 말이라도 걸어볼 걸’

하며 용기부족의 자신을 책망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슬픔 단계.

‘난 왜 안 되는 것인가’

라며 사랑이 이뤄지지 않음에 슬퍼했다.


세 번째는 분노 단계.

‘왜 나에게는 그런 기회를 안주는 거냐고! 이렇게나 노력했잖아! '


네 번째는 포기 단계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사랑, 연애. 상처 받지 않고 그냥 편하게 살자’

라며 사랑의 극단적인 감정보다 일상의 평온함을 선택한다.


다섯 번째는 희망 단계

‘그래도 나타나지 않을까? 인생은 모르는 거잖아!’

산책남이 나타나 주길 손꼽아 기다린다.


사실 이제 이 산책남과의 사랑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렸다.

어차피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짙어졌다. 나이도 많이 어려 보였다.

나는 조만간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

어차피 만나도 시한부 연애, 잘 되더라도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책남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한 달 가까이 매일 3-4번 마주쳤으면 한 번은 쳐다봐 줄만도 한데 아니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웃음을 지어 보인적도 있었다.

어색한 웃음이었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웃음일 수 있지만 그래도 웃음은 웃음이었다.

그런 웃음을 받은 남자가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인가?

이유는 딱 하나다.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가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은 감정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띄엄띄엄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책남을 보려고 악착같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나와는 대조적이지 않은가.

바로 마음의 자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주는 사랑이 속편하다. 바라지 말자.’


사랑의 감정을, 설레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자.

그로 인해 한 달 넘게 행복하게 걷지 않았는가.

걷는 것이 힘들지 않았고, 걷기 운동 나오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좋았던가.

받지 않아도 좋다. 주는 사랑도 사랑이다.


짝사랑도 사랑이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