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 차/ 아파본 사람이 열심히 한다

by 집녀

한 달 넘게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운동을 하다 보니 익숙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나처럼 끈기를 가지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거의 빠짐없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심을 가졌다.

나야 뭐 고작 한 달 남짓한 운동이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연륜이 느껴졌다.


계속 마주치던 사람들 가운데서는 어느 순간인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끈기를 가지고 운동을 하나 싶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운동을 포기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다른 운동을 할 리는 없다.

외출 자제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란 산책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헬스장이 문을 열었다면야 거기서 운동을 하나 싶겠지만 문을 다 닫았다.

외부에 공개된 운동장소로는 공원뿐이다.

산책 말고는 할 것이 없기에 공원에 나오냐 안 나오냐를 운동을 하냐 안 하냐로 단정 지을 수 있다.


운동을 하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많다.

멋있게 차려입고 운동을 마음먹었지만 금세 지겨워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운동을 결코 빼먹지 않고 하는 부류는 따로 있다.


운동의 효과를 느껴본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어느 정도 운동을 해 본 부류에 속한다.

운동으로 살이 빠졌거나, 몸이 좋아졌거나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정도의 효과를 봤다는 것은 꾸준히 일정기간 운동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운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 효과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 다른 부류는 아픈 경험이 있거나 아픈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안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들에게 운동은 생존이다.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밥을 먹듯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둘 어디에도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행히 여태껏 크게 아픈 경험도 없다. 운동의 소중함을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꾸준히 요가는 했지만 드라마틱한 몸의 변화는 없었다.


대신 나는 마음이 아팠다. 회사 다니면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었다.

그 상황을 피하려 미국까지 왔는데 손발이 묶이니 우울함과 좌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런데 걸으니 아픈 마음이 치료가 됐다.

몸이 힘드니 정신이 맑아졌다.

육체노동이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걷기 운동을 하니 몸은 피곤했지만 잡념은 사라졌다.

운동하는 그 3시간은 물론이고 밤에는 더 큰 효력을 발휘했다.

온갖 상념으로 잠들지 못했던 날들이 이제는 눕기 무섭게 골아떨어지고 있다.

밤의 우울함이 더 이상 없어졌다.


방해요인도 없다.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먹고 살기 빠듯해서, 귀찮아서 등의 방해요인 말이다.

이런 핑계를 댈 수가 없다. 일도 없고, 시간은 많고, 1년 살기로 작정하고 쓸 돈은 있고, 귀찮음보다 갑갑함이 더 싫다.


이래저래 걷기를 할 운명이었나 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