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공원에는 지렁이가 유난히 많다.
실지렁이부터 시작해서 손바닥 길이 만한 지렁이까지 종류도 많다.
주의 깊게 걷지 않는다면 한 바퀴 돌 때마다 2마리 정도는 죽일 수 있다.
의도치 않은 살생을 피하기 위해서는 바닥을 잘 살펴야 한다.
흙 속에서 지내면 안전할 것을 굳이 대로변(그들 기준으로)까지 나와서 사고사를 당하는 운명이 안타까웠다.
매일 빨리 걸으며 지나치다 어느 날 시간을 내 지렁이를 관찰했다.
유난히 긴 놈을 발견했고 관찰했다.
지렁이는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 열심히 움직였다. 느림보이지 않았다.
힘겹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온몸을 꿈틀꿈틀 대며 그 반동으로 열심히 이동하고 있었다.
‘지렁이도 밞으면 꿈틀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눌려 지내는 미천한 사람이나, 순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너무 업신여기면 가만있지 아니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건 잘 못된 말이다.
나는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정의에 반하지 않는 이상, 법에 위반되지 않는 이상, 그른 것이 아닌 이상 좋은 말로 할 수 있으면 가능하면 좋은 말로 하길 원했다.
그런데 착하게 대하면, 좋게 대하면, 배려를 하면 쉬운 사람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은 더 하다. 순하고 착하게 굴면 호구로 여긴다.
싫다는 말을 못 하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 계속 일을 준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 감당하겠다는 것인데 아예 당연한 일로 치부하고 넘겨 버린다.
배려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꼴을 몇 번이나 당했다.
그렇게 직장에서 호구 역할을 계속했다.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싶었다.
굳이 얼굴 붉혀가며 일할 필요는,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쉬운 상대로 비쳤던 것이다.
맘대로 대해도 되는 사람.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