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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Nov 13. 2020

우리는 이 길을 '상자로'라 칭하였다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비 오는 날이다. 출근하면서 우리는 “이거 안 깔았으면 어쩔 뻔했어.”하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마을을 준비하던 기간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공부도 하고 마을 생활을 어떻게 할지 여러 가지 것들을 회의해서 결정했다. 그중 마을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날이었다. 땅 모양이 길쭉해서 10가구가 양쪽에 배치되고 그 사이를 따라 길쭉하게 마을길이 생기게 되는데 이 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할 것인지 시골길답게 흙으로 놔둘 것인지가 문제였다. 포장을 하기에는 큰돈이 들기도 했지만 자연 그대로 유지를 하는 게 좋겠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자연이 좋고 생태적인 삶을 살기 원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때 ‘그래도 디딤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제안을 한 사람은 우리 중 유일하게 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시골에 살아보지도 않은 우리는 흙을 밟고 다니는 게 좋지 하면서도 까짓 거 깔아주자 했다. ‘우리야 단화 신고 다니지만 구두 신고 다니려면 흙길은 문제겠지. 선심 쓰지 뭐.’하며. 그것도 시골 생활 처음 하는 처지에 직접 까느라 조금 고생을 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겨울에 눈이 오고 땅이 얼었다가 녹으면 보통 질퍽거리는 것이 아니고 조금만 비가 와도 흙길로 걷기 어렵다. 그 후 우리는 디딤돌 안 깔았으면 발 디딜 곳이 없었겠다며 비 오는 날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안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 길의 이름을 '상자로' 라 칭하기로 하였다. 살아보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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