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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24. 2020

유명한 화가의 그림보다 내 그림이 좋다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 이야기

<스케치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이억배-

“스케치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짧게는 5분 또는 30분 전후의 시간을 투자하여 스케치를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고 시간에 쫒기지 않고
시간을 즐기게 되고 무한 질주하던 시간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경험을 하게 된다.“

“ 인간은 누구나 예술적 소양을 갖고 태어났다.
직업예술가 만이 예술을 하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는데
시민이 예술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술을 창조하고
누리는 시대는 아직 더디기만 한 것 같아서 아쉽다.“

 이억배, 정유정. 안성에 사는 그림책 작가 부부가 있다. 그 분야에서 귀한 책들을 그리신 분들이다. 어느 날 일반인들과 함께 그림 모임을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 존경하던 분들이라 강력한 끌림이 있어 함께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상 한번 탄 적 없고 미술 시간에 억지로 그리는 그림 외에는 그림 한번 그려본 적 없었던 지라 연필이나 붓을 손에 잡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케치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라는 멋진 화두를 던지며 한 달에 한 번씩의 모임을 1년 동안 진행했다.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사물을 보는 시선, 그림을 그리는 마음을 주로 얘기하셨다. “선을 그릴 때 떨어도 돼요. 어차피 사람의 손은 떨려요. 틀려도 좋아요. 틀리면서 감정이 표현돼요. 잘못 그렸을 때 고치지 말고 인정하면 그 실패를 빛나게 하는 절묘한 그림이 되기도 해요. 못 그릴 수록 재미있어요.”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우리는 마음을 표현해갔다. 아무리 못 그려도 그 그림에 나타나는 마음들을 읽어주시며 칭찬을 하셨다.

 1년간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잘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프로도 아닌데 잘 그려야 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릴 때 즐거운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잘 그렸는지 못그렸는지는 미술 수업에서나 평가받는 것이고 무엇을 그리려고 했고 그것을 맘껏 표현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림은 나를 위해서 그리는 거다. 그래도 어떤 유명한 화가의 그림보다 내가 마음대로 그린 그림이 나는 더 소중하고 귀하다.

 또한 어떤 광경이나 인물에 깊은 감동을 받았을 때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다는 것 또한 참으로 중요한 소득이다. 이 책을 쓰면서 지역의 귀한 분들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쉽지 않았다. 그 분들의 까칠함, 뚝심, 푸근함, 깊은 눈빛 등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낑낑대다가 어느 순간 그 표정이 보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분의 마음에는 안 들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림이 어떻든 간에 사진을 놓고 씨름하는 이 시간들은 시간을 멈추고 한 분 한 분과 깊이 사귀는 시간이었다. 그 간의 감사함과 사랑을 듬뿍 담아 그릴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나에게  더없이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경험이 서울에 살았으면 가능했을 것 같지 않다. 안성에 그 분들이 사셨고 의료협동조합의 조합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서울에 살지 않으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지역 안에서 얼기설기 엮어지며 서로를 풍성하게 하는 문화가 진정한 생활 문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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