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서를 다시 쓰란다. 해마다 1월이 되면 전년도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한다. 연간 계획을 세우고 어떤 것을 얼마나 달성했는지, 부실했다면 앞으로의 대책은 뭔지 담당별로 평가서를 작성한다. 이것을 토대로 운영위원회에서 평가를 하고 정리가 되면 내부감사가 진행되고 대의원 총회 자료집에 실리게 된다. 이번에 항목 하나를 대충 써서 냈더니 다시 쓰라고 돌아왔다. 감사님이 정식으로 감사하기 전에 먼저 살펴보고 대책이 부족한 것은 보충을 해달라 한 거다. 문장 몇 개를 쓰면 되는 건데 생각이 부족했던 게 보여 수정 제출했다.
안성의료협동조합의 감사는 세 분이다. 이분들의 조합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대단하다. 감사보고서가 평균 10쪽 내외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감사는 김사욱 감사님인데 이 분은 요즘 말로 ‘모태 감사‘라 할 수 있다. 2006년에 의료협동조합에 감사로 초빙이 되면서 조합활동을 시작하여 중간에 이사 3년 하고 다시 감사를 하여 2021년인 지금까지 15년째 하고 있다. 보통 ’ 감사‘라 하면 뒷짐 지고 뭐 잘못했나 캐내는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분은 그렇지가 않다.
3년 전에는 사무국 직원들한테 1주에 한 번씩 10주 동안 강의를 해가며 사업계획서 작성과 평가서 작성에 대해 교육을 하였다. 사무국 친구들은 하는 일 외에 매주 2-3시간씩 따로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들어야 했고 과제도 해야 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따로 강의비를 받는 것도 아니면서 한 번의 강의를 위해 며칠 밤을 잠도 못 자며 준비를 하여 열정적으로 하는 강의에 열심히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조합에서 하는 일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직장의 연구소에서 제품 설계, 생산설비 설계와 품질관리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하다가 의료협동 조합이 하는 것을 보니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업 진행이 되지 않는 느낌이어서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고 싶었다 한다. 의료사협 연합회 감사 모임에서 ’ 감사방법‘에 대한 강의 요청도 있었으나 사양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감사란 지적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갈등 관계에 놓일 때도 많다. 한 번은 모 위원회의 활동에 개선의 여지가 제법 있어 몇 차례 개선 요청을 해도 시정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대의원 총회에서 공개적으로 개선 요청을 했다가 담당 이사가 많이 서운함을 느꼈는지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 적도 있다. 다행히 대의원들은 좋아하였다고 회상하였다. 우리 집에 오신 적도 있었는데 그 날은 평소 잘 안 하던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1년에 두 번 의료기관 청결상태 감사를 받던 습관이 있어 왠지 우리 집도 감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던 것이다.
협동조합을 하면 좋은 일 한답시고 절차상의 잘못 등을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몸 바쳐 지적질을 하는 분이 있어 시스템을 잘 갖추게 되곤 한다. 다시 고친 평가서를 보니 지적해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