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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Oct 19. 2023

소아과가 폐업한대요


큰애가 처음 감기에 걸렸을 때였다. 당시 엄마들 사이에 바이블처럼 여겨지던 '삐뽀삐뽀 119'를 친구에게 물려받아 정독하고 나서 소아과 방문을 벼르던 참이었다.

진료가 끝나갈 무렵 조심스레 주머니 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책에서 답을 찾지 못한 내 아이에 해당되는 질문들이 열 가지 정도 적혀 있었다. 대기실의 북적임이 신경 쓰였지만 꿋꿋하게 마지막 질문까지 건넸다. 차분하고 자상하게 답변을 마친 선생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첫 아이신 거죠?

그전에 이미 여러 소아과를 거쳤지만 거리가 멀고 대기가 많아도 엄마들이 선호하는 곳을 찾아온 보람이 있구나 느꼈다.


이제와 생각하면 바쁜 와중에 초보 엄마의 민폐 행동에 얼굴 한 번 안 찌푸린 선생님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의 신생아가 열두 살이 된 지금까지 선생님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인기가 많은 병원이지만 첫째가 여섯 살에 우리집이 이사를 한 후로 병원이 더 멀어졌다.




다니던 곳은 대기가 길고 오가는 데만 한 시간 이상 소요되니 집 근처의 병원이 아쉽던 중 소아과가 개원했다. 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던 때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 방문했는데 여러 개의 보호 장구를 착용한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펜싱 하듯 아이의 코와 목을 들여다봤다. 보호자는 문 앞에 서 있으라 말하고 내가 질문하려 몸을 기울이기라도 할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진료실을 나오는데 선생님이 창문을 열어젖히고 여기저기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진단은 가벼운 감기였다. 우리가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대기실에는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몇 년 후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이비인후과가 개원했다. 선생님은 아이들 눈을 마주치며 안부도 물어보고 보호자의 질문에 천천히 쉬운 말로 설명을 해 주시는 친절한 분이었다. 아이들은 주로 호흡기 질환이니 어지간해서는 여기로 다니면 되겠다 생각했다. 휑덩그레 넓은 공간의 병원에 금세 환자들이 차겠다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선생님이 세 분으로 늘고 대기가 기본 한 시간이 넘는 인기 병원이 되었다.


둘째가 넘어지며 다쳐 처음 다녔던 소아과를 찾았다. 문진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가 봐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대학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 중간 거리에 엄마들 사이에 평이 좋았던 소아과를 기억해 냈다.


중형 병원 내에 소아과가 있는데 초음파 검사까지 가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인사해도 웃으며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한 인상의 선생님을 만났다. 대충 묶은 머리만큼이나 다른 무엇도 상관없다는 듯 의사선생님이 우리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안과 염려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시는 동안 이미 절반의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대기시간도 적당하고 선생님도 마음에 들어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이곳으로 데려왔다. 첫째까지 감기가 옮아 몇 번 더 방문했던 며칠 전 이번달까지만 병원을 운영한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를 낳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하는 이유는 안 해 본 것들을 하고 안 가 본 곳에 가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중 소아과는 '누구 엄마'라는 호칭이 어색한 초보 엄마가 아이가 아프다는 절박한 상황에 부모보다도 의지하게 되는 곳이다. 지나고 보면 자잘한 병치레들이지만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병의 진행이나 당부사항을 놓칠까 온신경을 집중하고 나와서도 잊지 않기 위해 곱씹었다.


나는 그대로의 나인데 지켜야 하는 존재가 생기며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나에게 육아 기간은 살아온 중 가장 무지한 시기였다.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물어보는데 불안감을 보듬어 주는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기대고 싶었다. 그 대상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산후도우미,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 학교 선생님 등...


아이가 태어나며 만났던 인연들은 아이가 자라면서 헤어지게 마련이다. 맡기는 순간만큼은 내 아이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걱정해 주는 분들이라 누구보다 각별했다. 어떨때는 은인이고 구세주였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이 오면 의연하기가 힘들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지만 '감사합니다' 한 마디에 담을 수 없는 그렁그렁한 마음이 여운으로 남았다.


한 번의 진료가 더 남았다. 이번에 가면 감사 인사를 해야 하나 서운함을 전해야 하나 마음이 어렵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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