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엄마
이른 아침 가족들보다 먼저 일어나 커다란 보냉백을 꺼냈다. 냉장고에서 전날 사둔 유부초밥 키트와 샌드위치, 과일을 꺼내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음료수와 물은 넉넉하게 담았고 중간중간 간단히 먹을 빵과 과자, 특별히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소포장된 젤리 한 박스도 준비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담요 두 장과 도톰한 여벌 옷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웠다.
아들의 첫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일곱 살 둘째가 축구를 시작한지 일 년이 좀 지났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축구 교실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가 상담을 했다. 활동적인 누나에 비해 주로 집에서 레고나 블록을 가지고 정적으로 노는 것 말고도 마음이 여린 점도 신경이 쓰였다. 체험 수업을 받고 한 분기 수업료를 결제했다.
몇 년 전까지 걷는 것만도 기특했을 아이들은 노는지 배우는지 모르게 공을 뻥뻥 차며 신나 있었다.
한 명이 갑자기 아빠 얘기를 꺼내면 아빠가 보고 싶다, 너희 아빠는 언제 오냐며 각자 자기 할 말을 떠들어댔다.
그 아수라장을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없는데 선생님은 요령 좋게 꼬맹이들을 달래고 집중시키며 한 가지씩 규칙을 알려 주셨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예뻐하시기도 하지만 큰애 축구를 보내봐서 얼마나 수업을 잘하는 분인지 수업 때마다 감탄하고 있다.
아들은 공만 차고 노는 줄 알다가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는 운동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가까운 골대가 있는데 왜 저쪽까지 가서 공을 넣어야 하느냐며 자책골을 넣고, 다리가 아프다고 경기 중에 앉아 있기도 했다. 계속 달리는 게 힘들다며 골키퍼를 자처했는데, 골을 못 막고 친구의 핀잔에 수업 끝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올 때까지 엉엉 울었다.
누가 공을 빼앗아가도 옛다 넘겨주는데 괜히 시켰나 생각도 들었다. 공을 친근하게 느끼고 축구가 즐거운 게 중요하다는 선생님 말씀에 잘한다 응원만 하며 기다렸다.
지금은 컨디션이 안 좋아도 축구 수업을 빠지지 않으려 하고 수업이 있는 목요일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은 아들을 보면 짧은 기간의 변화가 신기하다. 꼬맹이는 이제 수업 한 시간 내내 쉼 없이 뛰어다닌다. 더 이상 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지도 않고 패스하라며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도 제법 시도한다. 축구에 소질이나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수업이 끝나고 땀을 뚝뚝 흘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오는 아이를 보면 쑥 커버린 느낌이 든다.
이번 축구 경기는 3번의 예선 경기에서 1승 2패로 아쉽게 예선 탈락이었다. 아들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첫 경기 참여라 긴장한 탓인지 모두 얼떨떨해서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학부모들과 선생님 모두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지만 반드시 아이들이 좋은 결과를 거둬야 한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처음 나가는 경기에서 즐거운 경험을 했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경기 시작 전 엄마, 떨려, 라며 잔뜩 얼어있던 아이도 마지막 경기에서는 수업 때의 열띤 모습을 보여줬다. 번쩍번쩍 빛나고 삼색 리본까지 달려있던 커다란 우승 트로피 옆에 참가상으로 주는 손바닥만 한 트로피가 테이블 가득 깔려 있었다. 그것을 품에 소중히 받아 안으며 기뻐하던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뭐든지 고민하지 않고 해 보겠다 달려들고 와락 빠져버리는 큰애에 비해 둘째는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뭔가를 시작하려면 예열이 필요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성질 급한 엄마는 재미있는 거야, 별 거 아냐, 라며 조바심 냈다. 부모로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주는 것이 늘 어려운 과제처럼 여겨졌다.
아들의 축구 일 년을 겪으며 아이도 나도 배운 점이 많다. 이제는 도통 끼어들거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저 경기장에서 뛰는 아이를, 벤치에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 이미지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