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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Oct 06. 2023

작아지는 마음

연휴에 친정 식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 가자고 말이 나왔었는데 이번 명절 연휴가 길어 다들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예약이 늦은 감이 있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관광지 주변은 연락하는 데마다 만실이었다. 붐비는 중심지에서 30분 거리에 한옥 숙소를 예약했다.


도착해서 보니 외곽이라 그런지 장소가 넉넉해 모닥불을 피울 수도 있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름에 물놀이장으로 썼던 넓은 터가 있어 아이들은 일정이 피곤했을 텐데도 둥근달과 별 아래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그날밤의 하늘

위로 쏘면 날개를 돌리며 내려오는 장난감이 기와지붕 위에 떨어질까 봐 아이들은 불 피우는 어른들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고개를 쳐들고 돌아다녔다. 한참 불멍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둘째가 부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남편이 달려갔다.


처음엔 숨이 안 쉬어진다는 말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달래며 울음 사이로 띄엄띄엄하는 말을 들으니 넓은 평상 위에서 하늘만 보며 달리다 평상과 평상 사이의 틈으로 떨어지며 배를 모서리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남편 품에서 진정시킨 아이를 받아 안아 재우려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히며 배를 찬찬히 살폈다. 만져보고 다시 물어보니 놀라서 그렇지 어디가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날밤의 모닥불

아이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숨소리를 살피느라 잠을 설쳤다. 다음날 둘째는 컨디션이 좋았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병원에 들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도 받았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상념에 젖어 있는데 딸의 첫 응급실행이 떠올랐다. 다행히 아이 둘 다 크게 다친 적은 없어도 응급실은 몇 번 이용했다.




딸은 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염으로 응급실에 가게 됐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수액을 맞는데 혈관을 잡기 어려워 발등에 주삿바늘을 꽂는 것을 차마 보지 못했다. 열이 39도일 때까지도 잘 놀던 아기가 누워서 늘어진 모습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두 번째 응급실 방문은 네 살 무렵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딸을 내린 후 아이 손을 보지 못하고 문을 닫아 손가락이 문에 끼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우는데 아무 생각이 나자 않아 남편에게 전화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로부터 손을 꿰매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뒷걸음질 쳤다. 아빠에게 안겨 처치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일룽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니 딸이 눈물을 멈추고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편의 퇴근이 늦었던 저녁, 멀쩡하게 놀던 둘째가 갑자기 사지를 떨며 컹컹 기침을 해대고 숨을 잘 못 쉬었다. 급성 후두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해 해열제를 먹이고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부모가 된 뒤로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곤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  내 모습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위급한 상황에서 침착한 판단과 현명한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재차 깨닫는다.


아이가 많이 아프다 느끼는 순간 나는 구겨진 채 한없이 쪼그라든다. 두려움에 잠식당해 뒤로 물러서서 세상에서 가장 소심한 인간으로 변한다.

고작 아이에게 괜찮아, 정도밖에 묻지 못하는 무능력한 엄마가 되고 만다. 그러면서 머리로는 숨 가쁘게 시간의 되감기를 한다.


그 음식을 먹이지 말 걸

차 문을 닫기 전에 확인할 걸

굳이 외출을 안 해도 되었는데

놀기 전에 미리 장소를 확인했어야 했어




차창 밖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보는데 옅은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아이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오는 파도를 얼마나 막아줄 수 있을까 하는 무기력감이 들었다.


시간을 되돌려도 어쩐지 같은 결정을 할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오며 가장 겁 없이 저지른 일은 부모가 됐다는 것이다.




제목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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