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기적 #2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로 졸업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중학교를 지망했다. 고등학교도 그랬다. 무조건 집과 가까워야 했다. 우리 집 형편에서 버스비로 매일 일이천 원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다행히도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사실 걸어 다닐만한 거리여서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있는 집 자식이었더라면 빽빽한 승차권 두 장씩 뜯어서 버스 타고 다닐 거리였다. 그래도 터벅터벅 멍하니 걷다 보면 어느새 학교고 어느새 집이었다.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를 말하라면 그나마 진학이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수시로 적어 내야 하는 장래희망은 곤욕이었다. 한 번은 ‘없음’이라고 했다가 없는 꿈도 만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남들처럼 멋진 꿈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대통령, 과학자, 발명가, 선생님, 농구선수. 처음엔 꾸며낸 장래희망이지만 내 바람이 없지 않아 있었나 보다. 그 꿈을 적을 때면 그렇게 되어 있는 나를 상상했었는데 꽤 근사했다. 그런데 내 환경은 꿈을 갖는 건 사치라며 매일같이 차가운 비수를 꽂았다. 그러다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 ‘회사원‘이었다.
남들처럼만 살았으면, 보통만큼만 살았으면 했다. 어린 시절 내 보통의 기준은 회사원이었다. 회색 양복에 가죽으로 된 서류가방 한 손에 들고, 고개 반듯이 들고 회사를 향해 가는 사람 말이다. 어떤 회사의 어떤 부서 같은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 쉬면서 남들만큼 돈을 벌어 보통만 되었으면 하는 커다란 꿈이었다. 장래희망란에 ‘회사원’이라는 단어를 적을 때마다 대통령을 써낸 그 누구보다도 더 간절했다. 내 꿈은 꿈같은 일이었다. 이 꿈은 쉽게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