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는 잼만 좋아해 / 러셀 호번, 릴리언 호번 / 비룡소>
오래전 네 살짜리 사촌동생이 집에서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일단 아이를 식탁의자에 앉히는 것부터가 힘이 듭니다. 아이는 식탁에 앉은 후에도 이리저리 딴짓을 하더니 일부러 음식물을 바닥에 흘립니다. 마주 앉은 엄마 아빠 더러 다른 자리로 옮겨 앉으라고 명령하고, 이내 반찬 투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밥을 조금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마음뿐인 이모와 이모부는, 네 살짜리 아이가 억지를 부리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그저 참아줄 뿐이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벌어지던 전쟁 같은 상황은 제게 꽤 충격적이었고, 정확한 해법을 알지는 못 하면서도 뭔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 <프란시스는 잼만 좋아해>는 편식하던 아이가 어떻게 골고루 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한 편의 훌륭한 사례이자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엄마, 아빠, 동생 글로리아, 친구 앨버트 중 누구도 강압적으로 훈육하거나 훈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거나 프란시스의 눈치를 보지도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잼을 좋아하는 취향에 공감해 줍니다. 그러면서 프란시스 스스로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닫게 합니다.
처음에 주인공 프란시스의 모습은 네 살짜리 사촌 여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맛난 음식은 먹을 생각도 없고요. 잼 바른 식빵만 맛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말도 안 되는 노랫말을 지어 흥얼거리면서요. 엄마와 아빠는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식구들이 맛난 새로운 요리를 먹을 때, 프란시스에게는 잼 바른 식빵이 주어집니다. 점심 도시락 메뉴도 잼 바른 식빵으로 바뀝니다. 그제야 프란시스는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게 되고, 친구 앨버트처럼 상을 풍성하게 차려서 골고루 맛있게 먹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알게 됩니다.
러셀 호번(1925-2011)과 릴리언 호번(1925-1998)은 필라델피아 미술관 예술학교에서 만나 결혼했으며, 30년의 결혼 생활 동안 네 아이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훌륭한 그림책들을 펴냈습니다. 그중 하나인 <프란시스는 잼만 좋아해>는 막내 줄리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합니다. 프란시스에게 조용히 관심을 기울이며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도록 돕는 주인공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부모로서의 러셀 호번과 릴리언 호번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1964년에 나온 <프란시스는 잼만 좋아해>가 아직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의 일상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제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통하여 해결해 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란시스 시리즈는 총 여섯 권으로 각 권별로 잠잘 시간, 새로 태어난 동생, 친구 관계 등 어린아이의 일상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계속해서 출간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안타깝게도 두 사람이 이혼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 러셀 호번은 영국에서 서점 경영자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더 두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릴리언 호번은 네 자녀와 미국에서 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침팬지 아서> 시리즈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두 훌륭한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그림책이 더 출간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각자 자기 세계를 갖춘 작가로서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진작 이 그림책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편식하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던 이모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미운 네 살 사촌동생은 어느덧 훌쩍 커서 아가씨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혹시 사촌동생이 아이의 식습관 때문에 고민하는 일이 생긴다면, 옛날이야기를 해 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꼭 <프란시스는 잼만 좋아해>를 권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