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타이베이로 떠나야 할 때

by 김샤갈

남편이 대만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다. 2주란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편 혼자만 신나는 건 반칙이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도 함께 대만에 가겠다고 했다.


매일 고민했다. 남편과 같이 갔다가 내가 먼저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남편이 먼저 대만에 들어가고 난 후에 내가 그를 따라가서 남편과 함께 귀국하는 거니 나을지를. 고민하다 말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출장 일정과 똑같은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회사에 어찌 말해할지 무서웠지만, 무서운 만큼 여행에 대한 기대로 설레었다.


비행기표를 예약한 건 대만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남편의 대만 출장 이야기가 나온 것이 여름 무렵이었으니 일정 고민에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소비한 거다. 결론적으로 그 고민은 엄청난 낭비였지만 말이다. 허허허


내게 2주 일정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한다는 건, 2주를 내 업무에서 멀어지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다. 아주 당연한 나의 권리이기도 한, 남은 나의 모든 연차를 진짜로 소비하겠다는. 내 안의 그 어떤 충성심 비슷한 것으로 가짜 휴가를 쓰고 그 시간을 회사를 위한 업무로 보낸다고 한들 나의 하찮은 충성심 따위를 인정해 줄 사람 같은 건 존재치 않으니까, 휴가라도 제대로 쓰고 내 권리를 지켜보자는 처절한 발악에 가까운 선언, 혹은 반항.


2주 동안의 여행을 위한 짐을 챙겼다. 향에 취약한 아이를 위해 햇반을 준비했고, 햇반과 함께 먹을 김자반, 조미김, 참치 등도 가방에 넣었다. 라면과 미역국 등의 컵반도 함께 챙겨가려 잔뜩 구매했는데, 대만 입국 시 육류 가공품은 금지 대상이라고 해서 포기했다.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날 알게 된 정보였다. 컵반 구매에 돈을 많이 썼다는 남편의 입이 대빨 튀어나왔고, 튀어나온 입만큼이나 그의 짜증도 폭발했다.


결혼 7년 차, 남편은 원래 성격이 불같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만도 하지만, 그의 뭐 같은 성격이 기승을 부를 때마다 잠자는 사자(=나)는 잠에서 깨어나 그의 뭐 같은 성격에 걸맞은 뭐 같은 포효로 대응한다.


“장난하나. 여행 준비는 나 혼자 해야 하는 거라는 법이라도 있나! 장보기 전에 좀 알아봤으면, 괜한 돈 안 쓰고 좋았지.. 어처구니가 없네 진짜.”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사실 이는 내가 한 말보다 아주 많이 순화됨 말이긴 하다)


남편의 짜증에 사자의 포효를 얻은 짜증으로 대응하며 여행을 위한 짐 싸기를 마쳤다. 나름 성공적으로. 내가 이토록 멀티플레이에 강한 사람일 줄이야. 내 재능을 너무 늦게 깨우친 느낌이었다.


출발 전날의 불꽃 전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당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고, 적당한 시간에 수하물을 보냈고, 그 덕에 적당한 시간에 공항 라운지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 5분만 늦었어도 라운지 이용에 작지 않은 불편(예를 들자면 라운지 이용을 위한 웨이팅 같은..)이 있었을 뻔했다. 나의 엄청난 행운에 어깨춤이 덩실거렸다. 기쁨에 겨워 절로 움직이는 내 어깨를 보며, 얼마의 시간만 지나면 진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안간힘으로 버텨온” 6개월이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나는 시퍼렇고 날카로운 공격을 온몸으로 막으며 지냈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15년의 직장 생활 중 이토록 몸과 정신이 피폐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난 최악 중 최악의 시기를 보내온 참이었던 거다.


날카로운 공격을 버티며 내 모든 것은 너덜너덜해졌다. 더는 못하겠다, 싶을 때 그간의 공격보다 더한 공격이 쉼 없이 들어왔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결정한 것이 2주의 휴가였고, 바로 이 여행이었다. 여행.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행.


비행기표를 예약하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대출 가능한 대만 여행과 관련된 책을 모두 빌렸다. 소파 구석에 구겨 앉아 책을 읽었다. 전생의 기억처럼 흐릿했던 과거의 대만 여행 기억이 살아나기도 했고, 알지 못했던 여러 정보들이 아름다운 음악처럼 귀에 감겼다. 새롭게 관심이 가는 곳들도 있었고, 또다시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여행 책의 도움을 받아, 내 취향의 끌림에 따라, 나만의 타이베이 2주 여행 계획을 세웠다.


타이베이 지도를 펼쳐두고, 가고 싶은 곳에 핀을 꽂았다. 그리고 동선을 고려해가며 비슷한 위치에 있는 명소들을 하나씩 묶었다. 그렇게 13개의 묶음, 13일 여행 계획이 완성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과하게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어리기만 한 딸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지쳐 있던 나를 고려해 나는 일부러 일정에 더, 더, 더 많은 여유를 넣었다.


내 입맛에 쏙 맞는 여행 일정을 품으니 저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자신감, 그 비슷한 감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꿈틀거림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 위를 날고 있는 탓이었을까? 회사에서 느끼던 몹쓸 압박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끈끈이처럼 끈적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죽일 놈의 압박과 스트레스가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남편의 잔소리 같은 건 귀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하늘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독 행복했다. 인터넷 연결 따위에서 자유로운 덕일 수도 있고, 회사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덕일 수도 있고, 어쩌면 과하게 편안한 좌석과 서비스 덕일 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이 상태로 쉬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할 즈음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아이는 안전벨트 사인을 한 번 보고 또 나를 한 번 보며 “엄마 이제 내려?”라고 말했다. 나와는 달리 아이에게 3시간 이상의 비행은 즐거움이나 휴식이 아닌 모양이다.


아이의 보챔과 함께 우리는 대만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던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참으로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대만 특유의 향도 느껴졌다. ‘반갑다! 대만아!’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입꼬리가 저절로 씰룩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누가 볼까 싶어 ‘나대지 마 입꼬리!’라고 혼쭐을 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짐을 찾고 환전을 하며 우리는 또 한 번 부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싸웠다는 뜻이다. 신데렐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데, 우리의 평화는 신기하리만큼 짧기만 하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의 대만 여행은 시작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