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늘 조금 웃기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자랐다.
작은 소도시 정류장에 서 있으면 한 대가 지나가고, 그다음 차가 언제 올지는 누구도 몰랐다.
배차시간 따위는 교과서 같은 존재일 뿐.
기다림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그게 생활의 속도였다.
지하철은 다른 세계의 물건이었다.
텔레비전 뉴스에 잡히던 서울의 아침 풍경.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밀지 않으면 내릴 수 없는 인파. 어린 눈엔 그것이 일상이 아니라 재난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믿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러시아쯤 도착해서 내려야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어쩌다 서울에 가도 늘 버스를 탔다.
예술의 전당을 가든, 서울대공원을 가든, 지도에서 버스 노선을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움직였다. 시간이 두세 배로 걸려도 상관없었다. 지하철은 내 영역 밖이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고,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대학동기와의 약속 장소가 문제였다.
“oo지하상가에서 보자.”
그 말은 곧, 지하철 숙제와 마주하라는 하늘의 계시쯤으로 들렸다.
나는 단단히 각오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공기는 차갑고 습기 섞인 냄새가 났다. 긴장된 발걸음으로 개찰구를 통과한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양쪽에서 동시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버스라면 반대 방향은 늘 길 건너편.
그런데 지하철은 같은 공간 안에서 반대편 열차가 나타났다. 땅속 깊은 데서 두 갈래 강이 나란히 흐르는 모습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느 쪽이 맞는 거지?’
순간, 세상이 내게 시험 문제를 낸 것 같았다.
결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몰랐는데, 지하철이 지하에서 이렇게 반대편이랑 이어져 있네?”
전화기 너머에서 폭소가 터졌다.
“세상에, 진짜 몰랐다고? 맨날 버스만 타더니 진짜 처음 타보는구나 지하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창피함과 해방감이 뒤섞여 묘한 성취감이 생겼다. 그날 나는 지하철이라는 문턱을 넘은 셈이었다.
그 뒤로는 버스만 고집하지 않았다. 교통 앱을 열어 최단 경로를 계산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자유롭게 조합했다. 이제는 나도 도시인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럼에도 지하철을 타면 어쩐지 긴장됐다.
지하철은 버스와 달랐다. 정확한 시간에, 일정한 속도로, 기계처럼 움직인다. 모든 게 너무 질서 정연했다.
그 안에서 나는 언제든 규칙을 모르는 이방인이 될 수 있었다. 한 칸만 잘못 타면 도시 끝까지 홀로 끌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나에게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도시라는 거대한 체계와 나 사이를 가르는 문턱이었고, 동시에 내가 그 문턱을 넘어섰다는 증거였다.
친구에게 “지하철이 지하에서 연결되는 줄 몰랐다”라고 고백하던 순간. 그 우스꽝스럽고도 서툰 장면이 결국 나를 어설픈 도시인으로 만들었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겐 용기와 모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린 나에게 이 도시의 지하철이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