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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은 Feb 03. 2023

당연한 것이 없어서

우리는 당연하게 약속을 했었다. 스물다섯의 우리가 배낭을 메고 누볐던 노르웨이를 기억하면서. 다시 가자고. 다시 가게 된다면 한인 민박을 했었던 올레순 언니에게 들리자고.


숨 쉬는 공기가 차가워서 일찍 잠에서 깼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아 화면을 켰다. 아직은 파란빛이 물러나지 않은 시간. 휴대폰의 불빛이 날카롭다고 생각하면서 카톡을 확인했다. 누군가의 부고. 노르웨이 여행을 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올레순에서 만난 인연의 부고였다.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이 ‘나는 왜 당연하게 내가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였다.


노르웨이에서 먹었던 가장 따뜻한 식사, 따뜻한 저녁, 시원한 맥주, 열기가 가득한 대화. 나의 힘으로 선명하게 만드는 것에 한계가 생길 때, 그 무력함이란 도무지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언제나 처음과 같이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내가 추억의 전부가 되고 유일한 조각이 될 때. 나를 사무치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약속을 하지만 우리가 그린 시간에는 없었던 것이 종종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보란 듯이 내 앞에 당연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아직 준비되지 못한 내가 그 앞에 덩그러니 있고,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 가르침은 밀려올 뿐이다. 나를 끌어당겨 삼켰다가 덕지덕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을 묻혀내고 나서야 뱉어내면, 쓸쓸히 모래사장 위에 아주 덩그러니. 파도가 좋았다가도 그 모습이 삶과 닮아있어 미워지기도 하는. 바다 앞에, 부서지는 파도 앞에. 삶의 버거운 시간을 보태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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