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연습과 함께 시작한 브런치
‘엄마의 유산’과 지담님을 비롯한 ‘위대한 유산’팀을 만나면서 박사논문 써야 하는 시기에 느닷없이 다시 시작하게 된 브런치 글쓰기. 이제 막 1개월이 되었다.
브런치를 다시 열면서 브런치의 지나간 기록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너무 부끄러웠다.
3년 전 시작했던 브런치를 살펴보니 달랑 30개의 글, 달랑 3개월 만에 중단.
그저 재미를 따라가는 나는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다가 바빠져서 중단했다.
이번에도 처음엔 급발진해 하루를 초과해 거르지는 않으리라 써 보려다가 5일 만에 정신을 차렸다. 아, 이렇게 해서는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일과 논문과 글쓰기의 균형을 잡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지금 너무 글쓰기와 읽기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다. 논문 준비하기로 한 새벽 시간은 지담님 책을 읽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저녁에도 논문 써야 되는데,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어쩔;;;
지담 작가님의 매일 쓰라는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했다. 그냥 매일 쓰면 어딘가에 가 있을 거라는 그 메시지. ‘용기, 의지, 인내, 성실 그런 것들을 출동시키지 않고 그냥 하기로 했으니 한 것 뿐’(주1)이라는 메시지. ‘그냥 하라’는 메시지.
그냥 하긴 해야겠어서 매일 쓰는 중이다. 다만, 브런치 글 매일 발행은 현재의 나에겐 무리다. 글쓰기는 할 수 있지만 브런치 발행을 매일 하는 건 욕심이라는 걸 금방 알았다. 내 속도로 가기로 했다. 주 3일을 쓰기로 했고 한 달을 지켰다. 아주 작은 성취이지만 일단 만족한다. 이번에는 짧고 굵게 쓰고 장렬하게 전사하지는 않으련다. 어떻게든 길게 가 보련다. 그게 중요하다.
또 하나 의미 있는 건 아침 독서이다.
1월 6일부터 출근 전에 1시간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중이다.
처음에는 이제 아이가 몇 개월 떠나 있을 예정이니, 나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박사과정 선배 중 매일 2시간 일찍 출근해 2년 만에 논문을 쓰셨다는 분이 계셔서 일하면서 논문 쓰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논문 쓰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논문은 저녁에 읽고(흙 그러나 저녁엔 글쓰고 있는 나 자신 어쩔;;;) 맑은 정신으로 인문학과 철학책을 조금씩이라도 읽어보려고 한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시간을 살아왔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인문학, 사회과학, 철학책들을 읽던 20대. 금강경을 필사하고, 성경과 코란을 함께 읽었던 30대. 지금의 일터에서 만난 분들과의 니체 세미나. 여성학을 공부하고 시작하게 되었던 브런치 글쓰기의 부끄러운 경험... 그것들이 지금 다시 읽는 인문학과 철학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과 사유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까, 기대하게 된다. 나의 처지나 생각의 깊이에 따라 책도 다르게 다가올 텐데, 지금 읽으면 어떤 낯선 세계로 나를 초대할까, 기대하게 된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읽고 공부해 온 것들도 언젠가는 연결되어 가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엄마의 유산》을 책으로 다시 읽는 중이다. 그리고 멀리 있는 아이에게 몇 구절씩 전해 주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에 책 읽는 1-2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
이번 시도의 가장 큰 의미는 읽기와 쓰기를 습관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생활하게 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자리에 들고... 꽤나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왔다. 7시면 온 가족이 함께 일어나 아침 먹는 것을 중요한 일과로 여겼다. 몸의 건강, 일상의 루틴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책 읽고 글 쓰는 것은 ‘매일’의 비중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주말이면 아이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기도 하고 과제를 하려고 종일 도서관에 앉아 논문도 읽고 글도 썼지만 결코 ‘매일’의 비중은 아니었다. 삶의 철학이 아니라 그저 ‘교양’의 영역으로 버려두었던 건 아닌가 비판해 본다.
매일은 ‘습관’이다. 습관은 힘이 세다. ‘습관은 모든 사물 가운데 가장 힘센 주인이다’.(플리니우스,주2)
그렇게 습관으로 매일 해내는 분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그들의 에너지를 매일 받는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즐거운 기대가 생겼다.
눈이 반짝 떠지고 졸리지도 않다. 매일 일어나 책을 읽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P. S: 기상 시간을 조금 앞당겨 보았다. (아직 졸리다. ㅎㅎㅎ)
※ 주1: 김주원 글, 정근아 그림, 《엄마의 유산》, 건율원, 2024.
※ 주2: 몽테뉴, 《수상록》
25년 2월 21일: 글 49개(새로 쓴 글 18개). 읽어주시는 분들 19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