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던 짓하기 1
지난 주, 이번 주 지담 작가님의 인문학 강의에서 꽂히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안 하던 짓 하기’
네 머리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인식을 의심하고 새롭게 자극을 주는 영감에 너의 판단을 맡겨 봐. 이를 위해 일부러 '안 하던 짓'을 하면서 의식을 더 민감하게 키워내랸 말이지. 바로 '안하던 짓하기'가 영혼을 위한 접종인 것이야. (주1)
안 하던 짓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지담 작가님은 몇 년 전 안 하던 짓을 해 보려고 ‘빨간 구두’를 사 신고 나가 본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평소에 신던 게 아니라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반짝 용기 내어 신고 나갔더니 기분이 좋아졌다고. 내가 괜찮아 보였다고. 그걸 기억하고 오늘도 누군가가 물었다.
- 이번 주의 ‘빨간 구두’는 무엇이었나요?
- 이번 주에는 자전거를 타고 안 가 보았던 반대편 길로 가 보았어요.
3년 전쯤이었나? '안 하던 짓'으로 어려운 시간을 흘려 보낸 경험이 생각났다.
타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겨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나의 감정에 대한 것이었기에, 누구에게 말하는 게 부적절하다 생각했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체로 말도 많고 시끄러운 편이지만, 남 얘기, 남의 흉,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나를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내 잣대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여전히 제일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너무 어렵지만.) 남의 흉이나 보는 내 자신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은 했지만, 말 많은 사람이 말을 안 하고 있으려니 속이 답답했다.
사람들과 맺은 관계의 경험을 생각하면, 사실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것은 알고 보면 나 자신 때문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폭력을 쓴 경우, 고발을 한 경우 등 극단적인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이든, 행동이든,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나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튼 타인으로 인한 것이든 무엇이든, 특히 개인의 감정적 어려움에 대한 책임은 대체로 나에게 있다고 여긴다. 내가 부정적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내가 유독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욕하면서 감정을 해소하고 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대체로 그런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욕하고 해소했다 치지만 상대방은 무슨 죄인가. 그리고 그 말들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올 말이 되기 쉽다.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의 책임도 아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생겨난 나의 감정은 엄밀히 말하면 나의 몫이다. 나의 이성은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좋지 않은 감정이 단번에 해소되지는 않는다. 감정에 깊이 빠져 있는 편은 아닌데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잘 다스려 보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맨 처음 시도해 본 것은 감정이 아니라 몸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운동을 다니기가 어려워져, 주중에는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산에 올랐다. 근력 운동의 목표는 (별 맥락없이) ‘헤드 스탠드’로 정했다.
필라테스는 오래 했는데 요가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서 코어의 힘을 더 키워야 했다. 다행히 코로나로 인해 저녁 시간이 안정적이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필라테스하면서 배운 동작들로 스트레칭을 마치면 유튜브를 보면서 다양한 복근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돌려가며 했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 가면서 매일 플랭크를 했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벽 앞으로 갔다. 헤드 스탠드를 3번 시도하고 그날의 운동을 마무리했다. 씻고 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매일 운동을 하면서 좋지 않았던 타인에 대한 감정을 흘려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새 힘들었던 인연이 떠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힘들었던 시기는 어느덧 지나갔다.
코로나 이후,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떠나간 이후 집 안에서 하는 운동보다는 집 밖으로 나다니며 트래킹과 등산을 하게 되면서 홈트를 게을리 하게 되었다. ㅎㅎㅎ 지금도 벽이 없으면 헤드 스탠드를 혼자서 서지는 못한다. 그런데 헤드 스탠드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
타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남에게 얘기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감정에만 빠져 있지도 않았다. 내 몸에 집중하며 운동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운동하는 습관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종종 운동을 한다. 주 3-4회는 꼭 한다. 최근에는 사무실에 매트를 가져다 두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10-15분씩 근력 운동을 한다. 헤드 스탠드는 벽을 활용하여 여전히 하고 있다. 혼자 못 서면 좀 어떤가. 벽에 발을 대고 올라가지만 그렇게 헤드 스탠드를 해도 몸과 마음은 충분히 환기가 된다.
부수적으로는 가족과 함께 운동하는 시간도 늘었다. 운동하고 있으면 아이가 ‘오늘은 나도 몸이 찌뿌둥해.’ 하면서 함께 하는 날도 종종 생겼다. 남편과는 트래킹과 등산을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주말에 뒷산 오르기 전에는 남편과 함께 스쿼트를 100개 하고 산에 오른다. 작년엔가, 한겨울 태백산에도 함께 다녀왔다. 어느 새 북한산 둘레길 21개 코스를 모두 돌았다.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난 산 싫어해.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 했었는데 사람이 달라졌다.
감정을 흘려보내려고 운동을 했을 뿐인데 운동하는 습관을 얻었다. 운동을 하면서 버리고 싶은 부정적 감정을 조금 더 쉽게 떨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면 몸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 뿐인가. 과거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만족감도 덤으로 얻었다. 운동도 하고 산에도 다닐 수 있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최근에 얻은 것이 또 하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달 운동을 시작한 회사 동료가 보건소에서 인바디 체크를 하고 왔는데 기계가 최신식이라 몸 상태를 자세히 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우리집 앞에도 보건지소가 있는데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 보건지소에 방문했다. 아쉽게도 최신식 기계는 없었지만 인바디 체크는 해 주었다.
지방이 정상 수치에 있었고 내장지방도 거의 없으며 근육량은 많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보건지소의 상담사는 세밀한 기계는 아니니 이 근육량 수치를 그대로 믿지는 말라 하였다. 그러면서도 칭찬을 해 준다.
지금처럼만 운동하면 된다고 하더니, 한 마디 덧붙인다.
최신식 기계도 아니었고 상담사도 그대로 믿지는 말라 하니 올림픽 나갈 남자들만큼의 근육량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운동 좀 하는 회사 동료들에게 인바디 수치 해석을 물었더니, 기초대사량이 높은 모양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이유가 기초대사량이 높아서인 듯하다고.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얻은 또 하나는 (여자치고) ’많은 근육량'이다. ㅎㅎㅎ 마음껏 먹어도 덜 살찌는 몸이었다니.
게다가 이게 웬일인가. 내 신체 나이가 29세란다. 흐흐흐. 아이보다 9살 많은 신체라니, 아주 만족스럽다.
※ 주1: 김주원 글, 정근아 그림, 《엄마의 유산》, 2024, 건율원, 288쪽.
※ 표지 이미지: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