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의 아름다움’이라는 활동이 있다.
교실이라면 책상과 의자는 모두 치워야 한다.
스무 명의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며 동그랗게 선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서로 짝을 짓는다.
오늘 나의 ‘운명의 짝꿍’은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
커다란 원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은
원의 지름만큼 떨어져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다.
서로 말은 하지 않는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끼리 잠시 서로 눈을 맞춘다.
잠시 모두 눈을 감는다.
진행자는 이제 이 공간에 ‘시간의 마법’을 건다.
이 공간은 이제부터 20배 느리게 시간이 흘러간다.
20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세상에 오직 둘만 존재하는 듯.
진행자가 주문한다.
"모두 눈을 뜨세요.
내 운명의 짝꿍과 눈을 맞추고
눈에 떼지 않고 다가갑니다.
이제 20배 느려진 세상의 속도로
운명의 짝꿍에게로 다가갑니다."
우리는 달라진 시간 속에서 우리의 몸을 평소보다 20배 천천히 움직인다.
20배 느린 시간의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모두에게 너무나도 낯선 시간이다.
영화에서 보았던 ‘슬로우 비디오’처럼 몸을 움직여 본다.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낯선 몸짓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렇게 작은 우여곡절들을 거치며 우리는 짝꿍에게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간다.
어느새 우리에게는 마주 서 있는 단 한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처럼, 나 그리고 나의 짝꿍만이 주인공이 되고,
옆의 모든 이들은 배경이 된다.
아주아주 느린 시간 속에서 나는 운명의 짝꿍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아주아주 느린 시간 속에서 운명의 짝꿍이 나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마주 보는 사람과 눈을 떼지 않는 것이 너무나 낯설고 어렵다.
눈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끝까지 짝꿍과 눈을 떼지 않으려 애쓴다.
느린 시간을 흘러 흘러 드디어 서로의 눈 앞까지 다가와 마주 선다.
사람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 처음 감각해 보는 것만 같다.
서로 눈을 오래 마주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처음 느껴보는 듯하다.
그렇게 느리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에서
서로에게 다가간 우리는 서로를 뜨겁게 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이 활동에 참여자로 참여했을 때
저는 짝꿍과 서로를 꽉 껴안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힘든 일이 있었다거나 위로가 되었다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처음 만난 분이었습니다.
어떤 분인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서로의 존재가 귀하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날에서야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아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요.)
삶은 늘 만남과 만남의 연속입니다.
관계를 맺으려면 일단 만남이 먼저 이루어집니다.
수십 억 명의 사람들 중
하필 그 사람을, 그 순간에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란,
나와는 다른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일입니다.
위대한 우주와 마주하는 일입니다.
나를 버려야 그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위대한 우주입니다.
그는 하나의 세상입니다.
그의 생각이 나와 같을 때 소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성격이 나와 맞을 때 소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 자체로 소중합니다.
존재만으로도 소중합니다.
그것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주1)
주1> 정현종, 『섬』, 2009,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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