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과 화살 사이

by 정아라

일터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많은 업무를 만나게 된다.


특히 괴로운 순간은 스스로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공공기관과 일을 하다 보면 느닷없이 전화가 와서는 어떤 의원님의 요청이니 당장 어떤 자료를 달라고 부탁을 해올 때가 있다. 그러면 자조 섞인 목소리로 '10급 공무원 신세'를 한탄하고 불평불만을 터뜨리면서 마지 못해 그 일을 바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타인의 나에 대한 어떤 말이나 특정 행동에 상처를 받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방 알게 된다. 타인은 결코 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내가 낳은 아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타인이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ㅎㅎㅎ 그러니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아이 낳은 이후로는 결국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답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 보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게 되었다. 내가 살면서 틱낫한 스님의 '화' 같은 책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ㅎㅎㅎ 어딘가에 표현을 하지 않으면 안에서 곪아 터질 수 있으니 종이나 노트에 불평 불만을 쓰거나 해삼, 멍게, 말미잘... 맘껏 적은 후 찢어 버리기도 했다. 누군가가 미워지려고 하면 집에 와서 물구나무를 서거나 달리기를 하는 등 몸을 쓰면서 감정을 날려 버리려 애쓰기도 했다. 다 유치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유치한(?) 나에게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 방법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다. 상대방이 폭언을 하거나 욕을 한 것을 '쓰레기'에 비유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질문자에게 선물을 하나 줬어요. 고맙다며 덥석 받았는데 쓰레기만 가득 들었어요. 그러면 질문자는 어떻게 할래요?"


"버려야죠."


"그 사람이 말의 쓰레기를 질문자에게 던졌다면 쓰레기통에 바로 버려야죠. 왜 그걸 매일 끄집어내서 곱씹고 괴로워해요? 그게 올바르지 않은 말이라면 말의 쓰레기잖아요."


"우리는 흔히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첫 번째 화살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두고 계속 후회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주)


그렇다.

갑작스러운 업무적 요구, 내 의견에 대한 비판, 동료의 무심한 말투 같은 것들은 때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은 "첫 번째 화살"이다. 첫 번째 화살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사건이다. 회사의 업무, 예기치 못한 사건과 상황들, 타인의 감정 등은 우리가 어떻게 하든 상관 없이 살면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첫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수는 없다. 나만 그것을 피해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화살 맞은 부위가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는 커녕 스스로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한다.

"다른 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업무를 내리는 건 부당하잖아!", "저 사람은 나를 미워 하나 봐." 등등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기 시작한다.

"두 번째 화살"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쏘는 것이다. 첫 번째 화살이 객관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해 내가 부여하는 '해석'이며 '나의 감정'이다.


첫 번째 화살은 몸에 상처를 내지만, 두 번째 화살은 마음 깊숙한 곳에 독을 퍼뜨린다. 사실 우리를 정말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첫 번째 화살보다, 수만 번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스스로를 쏘아대는 두 번째 화살일 때가 훨씬 많다.


그것을 인식하고 나니 대처하는 방법도 조금씩 업그레이드 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법은 '사실'과 '해석'을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이것은 10여 년 전에 비폭력 대화에서 배웠다.

상사가 "이 보고서 데이터가 틀렸으니 수정해 오세요."라고 했다면 그것은 상사가 쏜 첫 번째 화살이다. "왜 트집을 잡지? 나를 미워하나? " 하는 것은 내가 내 손으로 쏜 두 번째 화살이다. 그러니 나의 판단과 해석은 덧붙이지 않는다. 그냥 "수정하라고 요청받았으니 수정하자. 끝" 여기서 끝내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표면적인 것 이상의 해석과 판단은 하지 않는다. 혹여 다른 의도가 있단 한들, 나에게 달라질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다.


두 번째 방법은 나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나에 대한 '친절한 관찰자'로서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에게서 빠져 나와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만화에 나오는 영혼이 빠져 나오는 장면들을 종종 상상한다. 마음 속에서 두 번째 화살을 쏘려는 찰나에 나 스스로에게서 빠져 나와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 내가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내가 지금 분노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많이 달라진다. 알아차리면 두 번째 화살의 속도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화살의 방향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돌릴 수 있다. 쏘려다가 툭 꺾일 수도 있다. 쏘지 않고 부러뜨려 버릴 수도 있다.


세 번째 방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그대로 놓아둔다. 사실 벌어진 상황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다. 남이 뱉은 말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다. 이미 날아온 화살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얼른 첫 번째 화살을 뽑고 해야 할 일이나 행위에 집중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다. 상처를 후벼 파면서 계속 괴로워할지, 화살을 얼른 뽑고 소독하고 약 바를지는 나의 선택이다.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를 바꾸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누구나 첫 번째 화살을 맞는다. 첫 번째 화살은 따끔하고 아플 수 있다. 때로는 피가 날 수도 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았을 때 할 일은 얼른 그 화살을 뽑아 버리는 것이다. 거기서 멈추는 것이다. 스스로를 해치는 두 번째 화살은 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화살을 뽑아 상처가 난 자리에는 약을 바르고 치료해 주면 된다.


나는 나를 치료할 수 있다. 내가 나를 보살필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다.


템플 스테이에 가져 챙겨 와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 주: 법륜, 《지금 이대로 좋다》(정토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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