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는 사무실에는 최근까지 30대부터 60대(갓 60이긴 했지만)까지가 함께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직위와 연령에 관계 없이 별명을 부르며 생활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말이 많고 회의는 지나치게(?) 자유로워 늘 삼천포를 수십 번 다녀오기 때문에 지나치게 길다(디스 아니고 자유로운 분위기라는 뜻이다).
서로의 차이를 느낄 때가 있지만 그것이 불편함과 문제점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대체로 나는 동료들을(사실 다른 타인도 마찬가지지만)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볼 때가 많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떤지 궁금할 때가 많다. 그 다름이 대체로는 흥미로우며 나와는 다르게 사안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이들은 대체로 좋은 참조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세대 차이를 느끼는 일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 나는 연령을 고-저 두 그룹으로 나눈다면 고연령 그룹에 속하고 저-중-고 세 그룹으로 나눈다면 중간 그룹 쪽에 속하니 다른 세대에 속하는 다른 분들은 세대로서의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ㅎㅎㅎ
협동조합의 조직 구조와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있는 회원 조직들 사이에서는 세대 차이가 곧잘 갈등의 요소로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전에는 공동육아에 대해 기꺼이 의무를 다하는 분위기였다면 최근에는 의무보다는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거나, 전에는 함께 해 나가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개인화된 분위기가 높아져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세대 차이? 진짜일까?
몇 년 전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고 'MZ 세대'라는 용어는 일상에서도 많이 쓰인다.
MZ 세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시기는 2018년 경이라고 한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에서 최초로 사용하고 2019년 트렌드를 전망하는 보고서에서 1980년대 초~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쳐서 부르기 시작한 말이다.
근데 'MZ세대', 뜯어 보면 되게 이상하다.
1980년대 초반생은 현재 40대 중반쯤 되고 2000년 초반 출생자는 대략 20대 중반이다. 보통의 회사라면 40대 부장님은 'M세대'이고 20대 신입사원은 'Z세대'인데 이렇게 몽땅 같은 세대로 분류한 것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 의문이 든다. 사실 일반 사회의 조직 사회라면 갈등하는 두 세대가 오히려 M세대와 Z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MZ세대'라는 용어는 당시 마케팅 업계에서 새로운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젊은 층을 정의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Digital Native),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며,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민감하다는 공통점을 묶어 '하나의 거대한 소비 집단'으로 브랜딩하게 된 것이다. 또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유권자 층을 공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대 개념을 차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MZ 세대라는 용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세대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성 세대가 '요즘 세대'들을 이해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주 인위적인 분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들고 때로는 불편한 마음이 된다.
사회학적으로 세대 구분이 학문적으로 필요하다고 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에서나 마케팅에서 세대를 나누는 방식은 너무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같은 세대여도 얘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과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나이로 어떤 특성을 뭉뚱그려버린다는 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것이다.
특정 세대에게 특정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규정할 때, 그 안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삶의 서사들이 지워지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세대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개인의 삶은 설명되기보다는 단순화된다.
그러다 보니 '세대'라는 선은 정확히 연령과 일치하는 의미로 보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점도 많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대는 실재하는 장벽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수고를 생략하기 위해 만든 결과물 같은 것은 아닐까.
세대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불편해 하고 때로는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같은 시대적 고통과 같은 시대의 과제를 공유하는 공동 운명체는 아닐까.
우리는 각기 다른 해에 태어났을 뿐,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거친 파도를 함께 넘고 있는 ‘동시대인(Contemporary)’이 아닐까.
나의 일터인 비영리단체에는 20대의 사회 초년생 교사들부터 60대 교사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교사 그룹이 함께 하고 있으며 30대부터 50대까지의 양육자 그룹이 함께 하고 있다. 활동가 그룹에는 더 윗 세대도 함께 하고 있다. 가끔 회의를 하다 보면 사람마다 미묘한 의견의 차이나 정서의 차이를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모두가 비슷하여 차이들은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30대 교사나 양육자가 제안하는 '업무 방식'들은 적은 인원으로 일하는 조직에서 일의 효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50대 교사나 양육자, 활동가가 강조하는 '관계'는 조직이 흔들리지 않고 지탱하는 뿌리가 되어 줄 수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같은 시대적 열망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각기 다른 해에 태어났지만, 지금 이 순간 '공동육아'라는 한 배를 타고 함께 아이를 기르며,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실천을 함께 하는 '동지'이자 동료'들은 아닐까.
세대는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선이라기보다는, 시대라는 거대한 강물을 함께 건너는 서로 다른 모양의 뗏목들은 아닐까. 옆을 돌아 보면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물결 위에 떠 있는 동료들이 아닐까.
나는 내가 몸 담고 있는 '공동육아'라는 조직을 돌아본다. 나는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려고 아이와 함께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나이와 직함을 떼고 별명을 부르며 존재와 존재로 서로 만났다. 30-40대 부모와 아이를 돌보는 50대 교사가 한 자리에 모여 아이의 성장을 기뻐하며 함께 성장했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는 생물학적인 나이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내며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무엇이라도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은 때로는 세대 차이처럼 느껴지는 서로의 차이를 녹여줄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서로 비슷한 불안, 비슷한 희망이 있다. 이 시대를 무사히 건너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있다.
정치인들이, 마케터들이, 언론이 우리를 '세대'로 분류하며 나눌 때에도 '삶'은 우리를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묶어준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누군가 그어놓은 인위적인 경계선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이 아닐까.
이제 세대의 차이를 밝히는 설명보다는 시대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질문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느 세대입니까?”라는 질문 대신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이 시대를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 우리는 그렇게 시대를 함께 완성해가는 단 하나의 세대, 즉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이니까.
세대가 다르다는 말은 너무 쉽게 쓰인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는 세대를 나누며 서로를 타자화하지만, 사실 모든 세대는 같은 경제적 모순과 시대적 과제를 공유하는 공동 운명체다."
-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왔을지 모르나, 지금은 같은 배에 타고 있다."
- 마틴 루터 킹, <가난한 이들의 캠페인> 연설 중에서.
"세대론은 힘이 없다. 진짜 힘은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공통의 질문에서 나온다. 우리는 세대라는 이름의 섬이 아니라 시대라는 이름의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다."
- 이철승, 《쌀, 재난, 국가》
표지 이미지> Image by NoName_13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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