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의견 사이

by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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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 특히 회의할 때 자주 생각하는 것이 있다.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의 의견은 서로 다른 것이며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줄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ㅎㅎㅎ)


회의가 많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보고, 또 회의가 많은 일터에서 일하다가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되는 흔한 패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회의 자리에서 서로 대립하는 듯 보이는 의견을 낸 이들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희안한 것은 미국이나 유럽은 그렇지 않단다.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라는 것이 있다.

이 용어는 흥미롭게도 종교적인 제도에서 유래되었다. 이 용어의 공식 명칭은 라틴어로 '피데이 프로모토르(Promotor Fidei)', '신앙의 옹호자'였고, 가톨릭에서 성인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앙의 옹호자'는 16세기에 교황 식스토 5세가 성인(Saint)을 추대하는 과정에서 엄격함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직책이었다.

당시 '신앙의 옹호자'이자 '악마의 변호인'이 하는 역할은 성인 추대 검증 과정에서, 후보자의 성인 추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논리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하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후보자에게서 결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모두는 '진짜 성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악마의 변호인'은 '조직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의도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다.


2000년대에 한 광고에서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써서 대유행이 된 적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떤 모임이나 집단이 집단 최면에 빠져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을 줄여줄 수 있다. 또 반대자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아이디어나 의견이 더 정교해지고 현실적인 실행력을 갖출 수도 있게 된다.


'악마의 변호인' 제도가 훌륭한 핵심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대하는 사람의 임무를 공식화했다는 점!

특히 우리나라처럼 어떤 사람이 회의 중에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회의 문화라면, 악마의 변호인을 공식화함으로써 그의 공격은 '개인에 대한 미움'으로 받지 않고 '주어진 역할과 임무의 수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회의할 때 사람과 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내가 나와 다른 의견을 들을 때 그가 나를 부정하는 듯 느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타인과 다른 의견을 낼 때 타인을 부정하려고 의견을 낸 경우는 없었다. 그저 그와 좀 생각이 다르다 여기며 내 의견을 말했을 뿐이다. 얼굴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 생각도 각자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이 기분 나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니 반대도 마찬가지다. 타인이 나와 다른 의견을 낸다고 그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들을 때와 말할 때 서로 다르게 느낀다면 내가 문제다. ㅎㅎㅎ 오히려 같은 기준으로 듣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태도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의 기준을 세워 본다. 말 그대로 '다른 의견'으로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사람 자체'와 '사람이 가진 생각이나 의견'을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나니, 의견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회의 자리가 훨씬 더 편안해졌다.


이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다른 표현을 쓴다. 과업 갈등(task conflict)과 관계 갈등(relationship conflict)이라 명명하며 이 둘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필요한 것은 과업에 대한 토론과 의견이고 불필요하여 피해야 할 것은 관계 갈등이다.


극한까지 끌어올려 토론해야 할 것은 과업에 대한 토론이다. 그래야 집단 지성을 통해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러려면 사람의 성격, 지성, 태도 등을 비난하는 발언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계 갈등'으로 번진다.


토론이나 회의 문화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모두에게는 타인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낼 권리만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타인의 인격을 모독할 권리,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권리는 모두에게 주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의견'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그 아이디어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실현이 어렵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된다. "너는 항상 그렇게 비현실적인 소리만 하더라?" 하고 말하면 안 된다. 필요하다면 발언의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겠다. "그건 아니고" 같은 말은 아예 금지어로 해도 좋지 않을까? ㅎㅎㅎ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인정하는 것이다. "Agree to Disagree"라는 용어가 있다. "동의하지 않음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사실 의견이 서로 달라도 공존할 수 있는 모임, 단체, 조직이 더 건강한 조직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끝까지 각자의 의견을 굽히지 않아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지지 않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 때는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고 억지로 서로를 설득하려 하지 말고 차이를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괜찮다. 그 정도 일로 건강한 조직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소소한 일이라면 상급 결정권자의 결정대로 가게 될 될거고, 중요한 일이라면 최종 심급 회의의 결정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조직에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ㅎㅎㅎ



"지적인 성숙함이란 자신의 의견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내 의견이 틀렸다는 증거를 발견하는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나의 진보이다." — 칼 포퍼, 사상적 맥락 중에서.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박해하는 자는 괴물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게 하라. 우리는 서로의 오류(의견의 차이)를 용서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첫 번째 법칙이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걸겠다." — 에블린 비어트리스 홀 (볼테르의 전기 작가), 『볼테르의 친구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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