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대화
아이와 몸에 대해 맨 처음 대화한 기억은 아이가 세 살 무렵이었다. 아이와 함께 목욕 중이었는데 엄마와 자기 몸을 번갈아 보더니 아이가 물었다. (음, 이런 대화 19금인가?)
- 엄마, 엄마는 왜 찌찌 커?
순간,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가슴이 크다고 해 준 사람은 내 평생 아이가 처음이었다. 성추행인 줄도 몰랐던 대화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20대 시절, 남자 사람 친구들이 종종 ‘너는 앞뒤 구별이 없냐’고 놀리곤 했던 몸이었다. 나는 웃으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 으응. 하늘이가 아가 때 엄마 찌찌를 먹었거든. 아가가 찌찌 먹을라믄(먹으려면) 찌찌가 커야 돼.
타이밍도 절묘하게 목욕 타올을 전해 주러 잠시 욕실 문을 열었던 남편이 말했다.
- 하늘아, 큰 거 아니거든!
나의 눈흘김을 받은 남편은 내 레이저를 피하며 작게 한 마디 덧붙인다.
- 미안해. 진실은 알려줘야지.
이때를 시작으로 아이와 몸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각 잡고 앉아서 ‘이게 성교육이다’ 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궁금해할 때가 대화의 좋은 기회였다. 자기가 어떻게 태어난 거냐고 물었던 6살 즈음, 《엄마가 알을 낳았대!》 같은 책도 비치해 두었다. 동화책이지만 엄마, 아빠가 힘을 합쳐(?) 아이를 낳는 과정을 구체적인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 주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아기를 어떻게 낳는지,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와 같은 생물학적 사실들은 아니었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몸이 소중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고 아이에게 말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나의 몸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이 기준에 의하면 내 몸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움츠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절한 선에서 몸을 움직여 보고 위험도 감수하면서 천천히 내 몸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몸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내 뜻에 맞지 않게 내 신체를 다루려 한다면 거부할 수 있는 힘도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내가 내 몸을 사랑하자. 사람 몸은 다 다르게 생겼지만 다 소중하다. 뭐 그런 이야기들.
둘째는 다른 친구의 몸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 친구들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접근 거리가 다 다르다. 그러니 상대방과 신체 접촉을 할 때에는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연애할 때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은 불편하니까 나에게 동의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었다.) 어떤 이유로도 다른 친구나 생명체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대체로) 폭력은 안 된다.
이런 대화를 꾸준히 나누었던 이유는 엄마인 내가 학창 시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본 게 전부였는데 이건 생물 교육이지 성교육이 아니었다. 성을 대하는 관점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배울 수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성교육이라 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성교육의 본질은 관계 교육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서 만난 선배들은 다양한 세미나 경험을 주었고 인문학, 철학, 경제학 등 학과와는 상관없는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친구들, 선후배들과 함께 《섹스북》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셀프 성교육도 했다. 책장을 보니 아직도 책을 갖고 있다. ㅎㅎㅎ
책을 읽어도 오랜 편견들을 뛰어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생리’에 대한 것이 그러했다. 엄마도 생리대를 깊숙한 곳에 보관했다 꺼내 주었고 동네 슈퍼에 생리대를 사러 가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주었다. 이건 뭔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감추어야 하고 남이 보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친구들끼리 ‘생리대 있어?’ 묻거나 답할 땐 늘 귓속말이었다. 코피가 나서 옷에 묻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닌데 바지에 생리혈이 묻는 건 철저하게 가려야 할 일이었다.
아이가 생리를 시작한 후 이런 엄마의 이야기를 아이와도 나누었다. 나와는 다른 의식을 가지려면 일단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인 나도 스스럼없이 생리에 대해 내 몸의 변화에 대해, 내 몸과 마음의 느낌에 대해 가능한 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 하늘아, 엄마는 있지, 생리할 때 제일 싫은 게 뭔지 알아? 뭐랄까, ‘굴 낳는 기분’ 같은 건데 너 그거 알아?
- 푸핫. 엄마도 그래? 나도 나도!
아이는 나의 ‘굴 낳는다’는 표현에 배를 잡고 웃었다. 적나라한 표현과 그에 대한 공감. 모두가 아이를 즐겁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남편, 나 어제 생리 시작했는데 오늘 배가 너무 아파. 둘째 날이 가장 아프거든. 약을 먹는 게 나으려나?
- (마트에 맥주사러 가는 남편에게) 생리대 OO 중형으로 2개만 사다 줘.
남편에게도 가능하면 생리에 대해 혹은 생리하는 몸에 대해 알려 주려고 애썼다. 밖으로 자주 말해 본 게 아니어서 어색한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은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인식을 내 말과 행동으로 깨는 과정이었다. 삼 형제로 자란 남편에게 여자의 몸, 사랑하는 배우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는 나와 달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남편과 공유했다. 우리 집에서만큼은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웠으면 한다고도 말했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편하게 얘기해도 된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족들에게 생리대에 다양한 크기가 있다는 것, 날개 달린 것과 없는 것이 있다는 것, 속옷에 붙이는 것도 있고 질 속에 삽입하는 것도 있다는 것, 생리대보다는 생리컵이 안전하다는 것 등도 알려 주었다. 피가 묻은 속옷이나 천 생리대를 사용한 후에 과탄산에 담갔다 빨래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남편도 자연스럽게 배워 가끔은 우리가 담가 놓은 것을 손빨래해 준 적도 있을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 아빠! 화장실에 생리대가 다 떨어졌거든. 나 생리대 중형으로 하나만 갖다줄 수 있어?
아이는 어느 날 화장실에서 아빠를 불렀다. 이 날의 일이 나에게는 기억에 남았다. 엄마인 나는 내 인식을 바꿔 보려고 꽤 노력했는데 다행히 아이는 조금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동시에 이 아이의 미래가 진짜 기대되었다. 이 아이가 결혼을 할 지 모르겠고 아이를 낳을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게 궁금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세상이 조금은 달라져 있으리라 상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