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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란다.

졸업과 새로운 길을 가는 너에게

by 아라 Feb 05. 2025

아이야.

어느 새 이렇게 자라 스무 살이 되었네. 내일은 너의 졸업식이고.

2024년 12월 31일, 네가 친구들과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는 기꺼이 다녀오라고 했지. 낯선 마음도 있었지만 무언가 벅찬 마음도 들었어. 품 안에 있던 아이가 서서히 한 발 한 발 세상으로 발을 떼더니 이제 성인이 되었구나. 이제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겠구나. 더불어 엄마의 생애 주기에서도 소중하고 거대했던 하나의 순환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시기가 왔구나, 하고.      


엄마는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시를 열어 보았어. 이 시를 네가 본 적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네가 4살 때 우리는 함께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어(아이만 다니는 곳인 줄 알았는데 부모도 조합원이 되어 함께 활동하는 곳이었지). 신입 조합원이던 그 무렵, 한 분이 모임에서 시를 읽어 주었는데, 이 시가 엄마에게 닿았을 때 엄마는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어. 그날 그 순간, 엄마 나이 4살이었던 어린 엄마는 네가 어떤 존재인지, 엄마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불현듯 깨닫게 된 거야. 바로 타이핑을 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았지. 그게 벌써 15년 전이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 박노해 시, 〈부모로서 해 줄 단 세 가지〉 중에서 



         

엄마는 이 시를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 너는 미래에서 온 존재라는 걸.

공동육아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지. 너는 한 존재만으로도 온 우주라는 걸.     


그리고 엄마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깨달았지.

먼저 엄마부터 자기답게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엄마의 뜻을 휘둘러 너에게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는 것을,

네 옆의 좋은 벗, 네가 닮고 싶은 존재가 되려면 오히려 너에게서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때로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이 시는 엄마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작은 불빛이었어.     


그러니 아이야. 너는 네 존재만으로도 온 우주란다.

네가 어린 시절 다녔던 공동육아어린이집에서는 늘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서 작물을 키웠어. 아마 너는 작은 씨앗이었던 식물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는지 본 적이 있을 거야.      


너희들은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올리고 어떻게 생겼나, 자세히 들여다보았어. 곧 텃밭으로 나가 일정한 간격으로 흙에 구멍을 내고 작은 씨앗을 심었지. 물을 주고 곧 새싹이 나오길 설레면서 기다렸을 거야. 때로는 하늘이 비를 내려 주기도 했을 거고. 너희들은 매일 씨앗을 들여다보면서 옹기종기 모여 씨앗이 오늘은 나오려나, 내일은 나오려나, 하면서 기다렸어. 그러던 어느 날 싹이 나왔을 때, 너희들은 너무 기뻐했어. 어느 날, 엄마가 데리러 가니 환한 얼굴로 “엄마, 오늘 싹이 나왔어!” 세상을 다 얻은 표정으로 소식을 전해 주었어.  

   

아이야.

그런데 어떻게 씨앗이 싹이 되었을까? 식물이 자라려면 물과 양분, 햇빛과 바람이 필요하다고 하지. 작아도 너무 작은 씨앗이지만 그 작은 씨앗은 있는 힘껏 온 힘을 다해 물을 빨아들였을 거야. 물을 빨아들이면서 물에 녹아 있던 양분도 함께 흡수했겠지. 땅속에 있는 씨앗에겐 햇빛과 바람은 닿지 않아. 햇빛도 없이 바람도 없이 그저 물과 양분으로 싹이 나온다는 것이 믿어지니? 대체 어떻게 싹이 나왔을까. 너무 신기하지 않니?     


결국 그 힘은 씨앗에 내재된 생명력일 거야. 물과 양분이 주어지면서 씨앗 속에 내재되어 있던 생명력이 깨어나게 된 걸 거야. 서서히 임계점에 다다르면 스위치에 찰칵 불이 켜지고 씨앗 안의 작은 발전소가 위잉 돌아가기 시작해. 그건 씨앗이 스스로 가동하여 돌리는 거야. 스스로의 매커니즘으로 돌아가는 거야. 씨앗 안에 내재된 힘인 거야. 너무 작은 씨앗이지만,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그 무엇이 이미 들어있는 거란다. 그래서 작은 씨앗은 이미 완성된 우주이기도 해.

      

너도 마찬가지야. 너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온 우주를 품고 있어. 아니, 네가 이미 온 우주인 거야. 그렇게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란다. 네 안에 내재된 정신, 너의 마음, 너의 힘, 너의 생명력. 그런 것들을 네 스스로 믿기를 바란다. 엄마는 그것을 너무도 강력하게 믿고 있거든. 어떻게 믿냐고? 그걸 이미 너를 통해 다 보았기 때문이야. 네가 어린 시절, 작은 새싹이 땅속을 뚫고 나온 것을 보고 경탄했던 바로 그 순간처럼, 엄마는 너의 탄생과 너의 위대한 하루하루의 성장을 경탄하며 지켜 봤거든. 그러니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엄마는 네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믿는다.


아이야.

너의 졸업, 너의 새로운 선택.

그 속에서 하루하루 걸어갈 너의 새로운 길, 너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사랑해.


2025년 2월 5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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