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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인 너에게 엄마는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적절한 온도이고 싶었어

by 아라 Feb 12. 2025

아이야.

씨앗이 땅속에 묻히면 햇빛도 없이, 바람도 없이 오직 물과 양분에 의지해 씨앗이 스스로 싹을 틔운다고 했지? 땅속에 묻혀 싹을 틔울 수 있는 조건이 오길 조용히 기다리던 그 씨앗에게 너희가 물을 주어서 싹을 틔웠잖아. 그런데 물과 양분 말고 필요했던 조건이 하나 더 있어. 그게 뭘까?      


힌트가 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

엄마가 대부도에 집을 짓고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는데, 한 번은 한겨울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었어. (따뜻한 토마토 스튜를 먹은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주택은 추운 줄만 알았는데 너무 따뜻한 거야. 엄마는 추울 거라고 패딩조끼를 코트 안에 입고 갔었는데, 더워져서 조끼를 슬쩍 벗으면서 물었지.


- 주택은 추운 줄만 알았는데 한겨울에 어떻게 이렇게 따뜻해요? 신기할 정도로 따뜻해요.

- 그렇지? 지열 난방을 해서 그래요.

- 지열 난방이 뭐에요?

- 땅 속의 열로 난방을 하는 건데, 지하를 꽤 깊이 파야 되서 초기 비용은 많이 들지만 한 번 해 놓고 나면 가스나 기름보다 난방비도 훨씬 적게 들고 따뜻해.


그 날 엄마는 지열 난방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 땅속의 열로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있을 정도인지는 몰랐거든. 겨울이면 땅 위가 그렇게나 차가운데 깊은 땅속은 난방이 가능할 정도의 열을 품고 있더라고. 씨앗이 싹 틔우는 데 필요한 물과 양분 외에 또 하나의 조건. 이제 너도 알겠지?


그래. 맞아. 바로 땅의 ‘온도’라는 조건이야.     

씨앗이 발아하려면 온도가 맞아야 해. 씨앗은 내재된 생명을 품고 있다가 적절한 환경이 주어질 때 싹을 틔울 수 있는 거야. 씨앗이 묻혀 있는 땅이 가진 온도. 땅속은 햇빛과 바람이 닿지 않는 대신 땅 위보다 훨씬 따뜻하지.      


늘 텃밭에서 식물을 키웠던 경험이 있으니 너도 알 거야. 땅 위보단 따뜻하지만 그래도 겨울은 씨앗을 심기엔 너무 춥지. 한겨울에 너희들의 텃밭은 보통 비어 있지. 너무 추운 겨울엔 비워 두었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씨앗을 심는 거지. 그러면 씨앗은 내재된 생명을 품고 있다가 적절한 온도가 찾아오면 ‘어, 이제 나가 볼까?’ 하고 싹을 틔우게 되지. 물은 누군가가 줄 수 있지만 온도는 계절이 와야만 하지.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주어진 조건이야.    


너에게도 그럴 거야. 부모는 선택할 수가 없지. 그저 너에게 주어진 조건이야. 너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보면 엄마, 아빠는 사실 너를 둘러싼 환경에 불과하지. 그런데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환경일 거야. 중요한 조건인데 엄마, 아빠는 너에게 어떤 조건이 되어야 할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엄마, 아빠는 네가 싹을 잘 틔울 수 있는 적절한 온도이고 싶었어. 자연스럽게 섬세하게 조절하여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게 하게 하는 적절한 온도.

아가가 어릴 땐 손이 많이 필요하니 엄마도 장작불을 활활 땠을 거야, 아마. 네 옆에 딱 붙어서 울면 안아주고 배고프면 젖을 먹이고 졸리면 업고 안고 토닥이며 재워 주었지.

     

하지만 네가 조금씩 커가면서 엄마, 아빠는 점점 온도를 낮추어야만 했어. 안 그러면 네가 엄마, 아빠의 열기에 타 버릴 수도 있으니까.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업고 재울 필요는 없지. 이제 엄마가 옆에 있으면 혼자 잠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너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더라. 화장실도 혼자 가게 되었고 이도 스스로 닦을 수 있게 되었지. 혼자 학교에도 갔다 올 수 있게 되었고 어느새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것이 더 편안해질 만큼 크더라.


엄마가 먹여주어야 먹을 수 있었는데 네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게 되었지. 곧 숟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도 있게 되었고 어느새 젓가락질도 선수가 되었지. 엄마가 해 놓은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게 되더니 곧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도 했지.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알아서 밥도 해 먹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되더라. 요리도 언젠가부터 엄마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고, 엄마도 모르는 요리를 유튜브 보면서 곧잘 하더라. 얼마 전에 네가 해 먹었다던 요리 뭐였더라? 아부라소바? 엄마는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었어. 어느새 요리도 네가 엄마를 앞지르고 있더라. 앞으로 네게 가르쳐야 할 것은 점점 사라지고 배워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겠지.    


어떤 때는 안쓰러운 마음에, 넘어지면 혼자 일어서길 기다리기보다는 일으켜 주고 싶었어. 어떤 때는 엄마 속도에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해하며 그냥 업고 뛰고 싶을 때도 있었어. 그럴 때면 엄마가 네 나이였을 때 어땠는지를 기억하려고 했어. 엄마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아, 그 때의 엄마보다 낫구나.’ 싶을 때가 많았지. 그럼에도 네가 원치 않는 잔소리를 할 때가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건 엄마가 부족해서 그랬을 거야.      


어떤 온도가 너에게 적절한 온도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점점 온도를 낮추어 가려고 애썼어. 그래야 네가 엄마, 아빠의 불길에 타지 않고 적정거리에서 적절한 온기를 느끼며 조금씩 엄마, 아빠를 떠나서 살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엄마, 아빠가 너를 적절한 온도로 품어 주었을까? 어떤 땐 너무 차갑게 해서 힘들었을 수도 있고 어떤 땐 델 듯 뜨거워서 도망치고 싶었을 수도 있을 거야. 네가 싹을 잘 틔우고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온도이고 싶었는데 네게 적절한 온도였는지 물어보고 싶어지는구나. 

     

어느 새 스무 살이 된 아이야.

이제 너와 엄마는 친구처럼 나란히 걷게 될 거야. 

너는 너만의 씨앗에 싹을 틔워서 어느새 이만큼 자랐네.

너보다 먼저 싹을 틔웠지만 여전히 자라는 중인 엄마, 아빠는 지금쯤 조금은 키 큰 나무가 되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도 네 옆에서 잘 자라며 엄마는 엄마의 꽃을 피워 볼게. 너는 너만의 색으로 꽃을 피우기를.

 

그리고 잊지 마. 네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늘 마음으로 응원하는 든든한 엄마 나무가 옆에 있다는 걸. 사랑한다,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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