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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Oct 11. 2022

How much? 벌레 사탕을 위해 영어 말문을 트다

캐나다 샬럿타운 다운타운의 하이마트 식료품점



Excuse me, How much is this?


드디어 말문이 트였다! 우리는 샬럿타운 다운타운에 위치한 하이마트라는 식료품 상점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식재료를 찾으러 들어왔지만, 이곳에는 식재료보다 아이들이 좋아할 간식들이 많다. 알록달록하게 진열된 상품들 사이에서 두 아이가 각자 원하는 간식을 발견했다. 첫째 아이는 당근모양 튜브에 담긴 초컬릿을 갖고 싶다 했고, 둘째 아이는 벌레가 들어있는 사탕이 갖고 싶단다. 가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상품이 더러 있었는데, 사탕과 초컬릿에도 가격표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가게 점원에게 직접 가격을 물어보고 구매할 것!


한국에서도 부끄러움에 좀처럼 어른들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외국인 어른에게 말을 건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리라. 첫째 아이는 어렵지 않게 가격 물어보기 조건을 통과했다. 둘째 아이는 벌레 사탕을 손에 쥐고 누나를 바라보며 구원의 눈빛을 보낸다. 누나는 소근소근 속삭이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 영어 문장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쉬워, 재밌어라고 덧붙인다. 



식용개미와 귀뚜라미가 들어 있는 벌레 사탕



벌레 사탕은 직사각형 사탕에 손잡이용 흰 막대가 달려 있다. 사탕은 파랑, 주황, 보라, 노랑 색으로 물들여 있으면서도 투명하다. 여기까지는 여느 사탕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생김새다. 하지만 투명한 사탕 중앙에 벌레가 놓여져 있고, 그 형체가 뚜렷하게 잘 보인다. 형체가 큰 귀뚜라미는 한 마리씩 넣어져 있고, 작은 개미는 몇 마리가 모여 있다. 호기심 많은 남자 아이가 지나치기 힘든 아이템이다. 


귀뚜라미와 개미 중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신중하게 고민하던 아이는 노랑 개미 사탕을 선택했다. 그리고 귀뚜라미 사탕 두 개를 골라 엄마가 들고 있는 쇼핑 바스켓에 넣는다. 우리는 친척 형과 동갑내기에게 선물로 보낼 간식을 고르는 중이기도 했다. 아이는 개미 사탕 하나를 손에 쥐고 1미터 바로 앞에 있는 카운터를 흘깃 쳐다보며 갈등하고 있었다. 사탕을 고를 때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결심을 했는지 누나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을 하더니 계산대로 향했다. 드디어 둘째 아이도 직접 사탕의 가격을 묻고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캐나다에서 벌레 사탕 구매에 성공했다




캐나다로 출발하기 직전 관심있게 보았던 TV 영상이 있다.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가 출연하는 '개는 훌륭하다' 프로그램이다. 주인을 물거나 협박하는 개들이 이렇게 많다니, 게다가 공통적인 원인은 보호자의 지나친 사랑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나친 사랑은 독이 되는 법이다. 금지옥엽이 지나쳐서 버릇없는 응석받이가 되는 이야기가 사람 세상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초등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오은영 박사의 육아 솔루션보다 강형욱 훈련사의 솔루션에서 육아 영감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금쪽이가 아니라 개훌륭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일이다. 개훌륭에는 항상 문제견만 등장하지 않는다. 지극히 정상적인 애견을 보호자가 문제견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개훌륭에서 영감을 받는 나의 육아법에 대해 웃음을 참지 못했던 남편이 함께 공감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보호자는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거주한다. 애견을 위해 마당 쪽에 넓은 집을 지었다. 그런데 개는 계속 울어댄다. 왜 그러는 걸까, 강형욱 훈련사의 진단은 이러했다. 하루종일 집을 비우는 두 부부가 그리워서 내는 울음소리라고 설명했다. 애견이 먹을 것에 대해 욕심이 심하다는 것도 보호자의 고민이었다. 손에 먹이를 들고 있으면, 와서 손까지 덥썩 문다는 것이다. 강 훈련사는 먹이통에 넣어서 주면 될 것을 굳이 왜 손으로 먹이를 주느냐고 물었다. 보호자는 그런 방식으로 먹이를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보호자의 또 다른 고민은 외모를 깨끗이 다듬어 주려는데 개가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강 훈련사의 의견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개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호자가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지만, 그만큼 기대치도 높은 게 문자라고 판단했다. "원하는 거 다 해줄게, 그런데 의대는 갈꺼지?" 라고 하는 학부모같다고 표현했다. 자식을 무척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식에게 바라는 것도 많은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은 부모의 욕심이 문제다. 이렇게 또 한번 육아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나와 남편은 두 아이에게 '의대에 갈꺼지?' 식의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진로를 직접 선택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부모의 바람을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밥을 먹을 때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먼저 먹는다. 그 다음, 그 다음순으로 순서대로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골고루 한번씩 먹어야 한다며 강요할 때가 있다.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던데 미안해진다. 


우리집 영어 공부의 목표는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영어로 쓰인 책을 읽고, 영어로 말하는 영화를 보며, 영어로 검색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재밌고 유용하게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이다. 암기식으로 단어를 외거나 문법을 파고드는 공부는 하지 않는다. 소위 '엄마표 영어 홈스쿨'을 했었다. 영어 교과 성적을 올리는 공부가 목표가 아니라, 영어를 수단으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게 목표다. 아이들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선택한 꿈을 이루는데 언어가 방해요소가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캐나다 샬럿타운 월마트에서 구매한 로버트먼치 작가의 책



한국에서 영어 홈스쿨은 주로 영어책을 활용했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하는 활동을 놀이라고 생각한다. 말하는 펜의 완벽한 영어 발음보다 엄마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영어책을 읽어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겁게 집중했다. 일 년이 넘게 아이들과 영어책을 읽으며 바랐던 건 딱 하나였다. 영어책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되기를. 두 아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한글 독서를 좋아한다. 첫째 아이는 스토리를 사랑하고, 둘째 아이는 과학 지식을 사랑한다. 학습만화는 두 아이 모두를 점령하는 장르이다. 우리는 그림책부터 리더스까지 쉽고, 웃기고, 신나는 영어책을 함께 읽었다. 


샬럿타운 다운타운에 있는 하이마트 식료품점에서 벌레 사탕을 사기 며칠 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월마트(Walmart)로 이동했다. 월마트는 한국의 이마트처럼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장바구니로 쓸 배낭을 각자 하나씩 매고 출발했는데, 깨끗하게 비워서 가져간 배낭 안에 잔뜩 물건을 넣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꽤 무거웠다. 이날 구매했던 영어책들도 무게에 큰 몫을 했다. 영어책 판매대 앞에서 아이들은 한참을 구경했다. 각자 책을 꺼내 들춰보기도 하고, 그러다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보기도 했다. 이날 아이들의 선택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 로버트 먼치의 책이었다. 재밌다고 깔깔대며 넘겨보고서는 사달라며 쇼핑카트에 넣었다. 이내 쇼핑카트에서 다시 꺼내서는 또 읽으며 깔깔댄다. 다른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쇼핑카트에 넣고나서야 영어책 판매대 앞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샬럿타운 월마트 영어책 판매대에서 책을 고르는 중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 홈스쿨을 진행해본 부모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으리라. 나의 영어 실력이 좀더 좋았더라면 아이들이 더 잘 배울 수 있었을텐데, 하고 말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생각일 것이다. 나는 영어 회화를 잘 하지 못한다. 이곳 캐나다에서 아슬아슬하게 의사소통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첫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영어 잘 하고 싶어." 비록 모양새 떨어지는 방식이지만, 영어 자극에 도움이 되었다고 좋게 생각하련다. 일상 생활에서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인풋으로 아이들의 아웃풋을 끌어내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본인이 좋아해야 지속할 수 있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었던가. 영어책과 영화 등 컨텐츠의 재미가 아이들을 영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들 스스로 필요성을 발견한다면 더이상 부모의 인풋이 필요없어질 것이다. 결국 부모에게 영어 실력보다 더욱 필요한 능력은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적절한 타이밍을 읽어내는 것이리라. 


한국에서 캐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욕심이 들었다. 아이들이 영어로 말하는 경험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캐나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영어로 대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떠하겠는가. 나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데 착수했다. 또래 아이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은 매일 일정 시간동안 학교에서 지내면서 친해지지 않던가. 샬럿타운에서 개최되는 여름 캠프를 찾아 구글링을 했다. 그러다가 브릭스 포 키즈라는 레고 캠프를 발견했다. 개강까지 아직 6개월 정도나 남았지만 많은 프로그램이 이미 마감이었다. 아이들에게 적합한 과정을 찾아내 등록을 했다.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에게 재미있는 영어 환경이 되어주리라 기대했다. 


샬럿타운에 와서는 벌레 사탕처럼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켜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영어 말하기 미션을 주고 있다. 핫초코, 과자, 샌드위치 등 아이들이 원하는 먹거리가 널렸으니 타이밍만 잘 겨누면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두 아이와 거리를 걸으면서도 재미있을 무언가를 찾는 게 나의 일과이다. 샬럿타운 거리에는 그곳의 역사를 기록한 안내문이 여기저기에 게시되어 있는데,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눈에 띄는 그림이 그려진 간판도 좋은 읽을 거리이다. 가게 안에서 발견하는 흥미로운 포장지도 재미있는 교구가 된다. 도서관에 가서도 아이들이 참여할 프로그램이 있는지 살펴본다. 가능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소소하지만 즐거운 경험들이 모여 영어가 재밌고 유용하게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월마트에서 시키지 않아도 영어책을 들추고 깔깔대던 모습에서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엄마, 벌레 사탕 또 먹고 싶어."

엄마가 글을 쓰는 노트북 화면에서 벌레 사탕 사진을 발견한 작은 아이가 말했다. 

"그래, 돈 줄테니 너가 사렴"

"근데 엄마, 앤트 예스 유캔 이거 먹어볼까?"


Ants yes you can이라고 쓰여진 작은 플라스틱 통에 잔뜩 들어있던 블랙 식용 개미가 떠올랐다. 벌레 사탕 맞은편 카운터 옆에 놓여 있던 것인데, 아이는 그것을 만지작 거리다가 놓고 왔다. 


"그래, 밥 먹을 때 뿌려서 먹어볼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의 속마음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플라스틱 통에는 블랙 개미가 조각난 모습으로 들어 있었다. 머리는 둥글고, 다리는 얇아서 아주 짧은 머리카락 같았다.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왠지 오늘 저녁 식사, 아이의 음식 위에 블랙 개미가 뿌려진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첫째보다 더욱 수줍음이 많은 둘째 아이지만, 식용 블랙 개미를 얻기 위해 기꺼이 How Much~? 를 말할 것이다. 


"엄마, 앤트 무슨 맛일까?"

"사탕 안에 있던 앤트는 무슨 맛이었어?"

"그냥 아무렇지 않았어, 무슨 껍질같은 거였어."


아, 껍질이라니, 혀에서 감촉이 느껴질 것 같아서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아이가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들어 줄 고마운 앤트, 라고 애써 생각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재미와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게 될 때까지, 그래서 외부 자극없이도 스스로 노력하게 될 때까지, 자연스러운 기회를 만들어줄 타이밍 읽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이가 구매한 식용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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