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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Aug 02. 2022

키즈 캠프, 양파, 그리고 노스페이스 슬리퍼의 그녀

오! 이런! 샌드위치를 몇 입 먹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양파를 동그랗게 잘라서 20분 넘게 찬물에 담가놓았는데도 맛이 맵고 아리다. 두 아이 모두 같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싸갔는데, 이를 어쩌나. 아이들이 알아서 양파를 빼고 먹기를 바랄 수 밖에. 


샬럿타운에 온 뒤로 가장 분주하고 긴장된 아침 시간을 보냈다. 여섯시 삼십분 즈음 두 아이는 일어나서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눈으로 소파에 잠시 누워있다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우유와 씨리얼, 스크램블과 옥수수스프가 오늘 아침 메뉴였다. 아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파를 썰어 찬물에 담그고, 계란을 적당히 익도록 후라이를 해서 살짝 토스트한 식빵과 함께 식혔다. 양상추를 씻어서 물기를 제거하고, 살라미햄과 치즈도 한 장씩 떼어내어 준비한다. 


샌드위치 랩핑은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어제 유투브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매직랩으로 하면 편하다고 하는데, 숙소에 준비된 도구는 비닐랩뿐이다. 비닐랩을 세겹으로 쌓는 방법을 찾아 열심히 외웠다. 양파를 찬물에 담그는 시간때문에 7시 20분이 지나서 겨우 샌드위치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 아이와 나의 것, 총 3개를 만들고 나니 7시 55분이다. 집에서 7시 50분에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늦어버렸다. 이미 두 아이는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각각 가방에 샌드위치를 넣어주고, 나도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5분 만에 준비를 끝내니 두 아이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별것 아닌 일로 두 아이의 귀여운 표정을 보는 운좋은 날이다. 


한국에서 뚠뚠이 샌드위치를 만들어본 적은 여러번 있지만, 랩핑을 해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오늘부터 5일동안 매일 샌드위치 랩핑을 해야한다. 랩핑의 달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에 양파를 미리 찬물에 담가 아린맛을 완전히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bricks 4 kidz in Holland college, Canada



이곳 샬럿타운의 대학기관으로는 홀랑 대학과 프린스 에드워드 대학교가 있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동안 아이들은 홀랑 대학에서 진행되는 캠프에 참가한다. 브릭스 포 키즈에서 운영하는 레고 수업이다. 다. 레고 블럭만들기와 야외활동이 주된 활동이라서 간단한 의사소통만으로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등록했다. 참고로 레고 캠프는 정원이 정해져있어서 몇 달 전에 등록을 해야 참가할 수 있다. 한국에서 구글로 검색하여 찾아낸 후 미리 등록을 해두었다. 


아이들의 수업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가야 한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홀랑 대학에 도착했다. 등록을 하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레고블럭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뒤 교실밖으로 나왔다. 9시 즈음이다. 이제부터 오후 4시쯤까지 나 혼자만의 자유시간이다. 


홀랑 대학 내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챙겨왔다.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를 발견해서 도서관 건물이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뭐라뭐라 설명해주시는데 몇 단어만 겨우 들렸다. 그분의 손짓과 나의 짐작을 추가하여 대략 이렇게 이해했다. 직진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다보면 지붕이 어떠어떠한 건물이 있어. 감사인사를 하고 길을 걸었는데 대학 한바퀴를 돌아도 도서관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건물마다 문이 모두 잠겨있었다. 


홀랑 대학은 네 개정도의 건물로 이루어진 작은 규모여서, 금새 한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를 또다시 만났다. 그분은 아까 만났던 위치에서 100미터정도 직진한 곳에서 여전히 쓰레기를 줍고 계셨다. 도서관을 못 찾았다고 이야기하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건물을 살짝 돌아 몇 발자국 걸어가니, 입구가 보였다. 아까 여기가 도서관인 것 같아서 문을 밀어보았지만 열리지 않던 그곳이었다. 


청소도구를 밖에 두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셨다.



문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통행카드를 인식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직원 카드를 접속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가서 물어볼테니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뒤 밖으로 나와서는 외부인이 이곳에 출입할 수 없고, 가까운 도서관이 퀸 스트리트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캠프에 참여하는 동안 홀랑 대학 내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이곳에는 외부인에게 허용되는 공간이 없었다. 


대학 주변인데도 커피숍이나 상점도 한 곳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건너편에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곱 시간정도를 보내기는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결국 퀸 스트리트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나와 아이들이 이미 가본 곳,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어 책을 대출했던 곳, 바로 샬럿타운 도서관이었다.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부지런히 걸어온 길을 이번에는 나혼자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20분을 천천히 걸어서 샬럿타운 도서관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빅토리아 로우 거리의 리시버 커피 컴퍼니에서 주문한 꼬르따도를 마시며, 샌드위치 반쪽을 꺼냈다. 그리고 몇 입 베어물었을 때, 양파의 매운 맛이 아려왔다. 오늘 점심을 조금 맵게 먹을 아이들에게, 엄마가 미안해


이 글은 마치 아이들 캠프 이야기인 듯하다. 하지만 아니다. 서론이 아주 길었다. 이 글은 도서관에 도착해서 보게 된 한 여자아이에 대한 글이다. 힙합바지와 배기바지 그 사이쯤 되는 청바지를 입고, 검은 외투를 입고, 회색 모자를 쓴 여자 아이. 어제 오후에 아이들과 이곳 도서관에 왔을 때 봤던 그 여자아이였다.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찌들어있는 모습으로 온몸을 대충 널어놓은 것처럼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라서 눈길이 갔었다. 오늘도 어제 옷차림 그대로다. 


샬럿타운에는 무척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오고간다. 특히 도서관에 있으면 어떨때는 나와 아이들을 포함해서 주변에 보이는 사람 모두가 외국인인 경우도 있다. 대만과 중국, 중동쪽 인듯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인인 우리까지. 각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위해 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인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도서관의 여자아이는 겉모습이 무척 한국인스럽다. 노스페이스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 한국에서 애용하는 브랜드가 아니던가. 중국에도 노스페이스 매장이 있다고 하니 어쩌면 중국인일 수도 있겠다. 


여자아이는 사각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데, 마치 할머니가 돋보기를 쓰듯이 안경이 콧등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내 옆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가방에서 공책과 책을 꺼낸다. 책은 당연히 영어로 쓰여져있다. 어학연수 온 대학생인가도 싶다. 음악을 흥얼거리더니, 삼십분쯤 자리에 앉아 있는다. 책장은 한 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연필을 바닥에 퉁명스럽게 떨어뜨리더니 책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걸 보니 안쪽으로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어쩌면 어제 그녀를 보았던 안쪽 소파에 앉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검은 윗옷 외투에는 음식물처럼 보이는 하얀 얼룩이 몇 개 묻어 있었다. 다소 두꺼운 외투를 입은 걸 봐서는 이곳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도서관은 무척 시원하다못해 한 시간 이상 있으면 춥다. 나도 이곳을 두번째 방문할 때부터는 꼭 바람막이를 챙겨온다. 


그녀는 무언가 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혼자서 이동하면서, 입술 한쪽이 삐쭉하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순간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던 걸까. 분명히 좋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도서관 소파 사이를 지나가는데 널부러지게 앉아서 무언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과 태도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있는데, 그녀가 다시 나의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하며 시간을 떼우고 있는 걸까. 역시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리에 앉더니 테이블 밑으로 다리 한쪽을 연신 흔든다. 턱이 살짝 앞으로 나온 불만스런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테이블 위에는 영어책이 놓여있지만 역시나 쳐다보지 않는다. 잠시 후에 영어책을 읽으며 노트에 필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무엇때문에 여기 도서관에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걸까. 샬럿타운에 거주하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인데 공부를 위해 이곳을 찾은 걸까. 아니면 어학연수나 유학을 온 학생일까. 관광지 특유의 생동감이 넘치는 이곳에서 혼자만 동떨어진 세계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 '피리부는 사나이'에서는 방구뽕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학원 버스를 훔쳐서 아이들을 산으로 데리고가 신나게 놀게 한다. 밤10시가 되어야 겨우 저녁을 먹고 하루 12시간 이상 공부를 하는 어린이를 해방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이다. 갑자기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도서관의 그녀를 보며 방구뽕의 주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하며, 건강하게 먹어야한다는 방구뽕의 주장이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그녀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겉모습을 보면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정도로 추측된다. 그녀도 해방될 필요가 있다. 지금하고 있는 힘들고 지루한 공부에서 말이다. 회색 기운을 혼자 뒤집어쓴 거처럼 종일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반짝이며 거리를 활보하는 청춘들처럼 신나야 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를 조심스레 바라보지만, 단 한번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다. 타인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자꾸 그녀에게 눈길이 가는건, 나의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보일까봐 걱정되서 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어학연수를 보내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지금은 레고 만들기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야외 수업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샌드위치에서 매운 양파는 잘 골라내고 먹었을까. 오후 4시에 만나면 양파 이야기를 먼저 할까, 아니면 외국인 친구들과 수업을 한 이야기를 먼저 할까. 영어를 배우는 일이 힘든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되기를 바라본다. 외국어라는 도구를 익히면서 그 과정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본다. 


노스페이스 슬리퍼를 신은 그녀는 십분째 테이블에 엎드려 있다. 도서관 직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Are you OK?" 그녀가 고개를 들며 "I'm O.K" 라고 대답한다. 이내 하품을 거하게 내뱉는다. 그녀가 염려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부디 그녀가 생기를 되찾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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