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진짜 빨라!"
"내가 잡았는데 도망갔어!"
"나 어제는 하나도 못잡았는데, 오늘은 일곱 마리나 잡았어!"
이게 무슨 난리인고 하니, 두 아이가 샬럿타운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초파리를 잡는 소동중이다. 지난번 글에서 예고했듯이 오늘은 초파리 퇴치기를 이야기하려 한다. 한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지 않는 망고 씨를 일반 쓰레기통에 넣는 바람에 초파리 왕국이 탄생했다. 캐나다 PEI 샬럿타운의 음식물 쓰레기, 아니 퇴비(compost) 구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탓이다.
초파리 왕국의 첫 서식지는 주방에 있던 큰 쓰레기통이었다. 나는 잘못을 깨닫고 철저하게 퇴비와 쓰레기를 관리했다. 음식물이 조금이라도 묻은 종이는 냉장고의 퇴비통에 넣었고, 비닐에 묻은 양념은 아주 깨끗하게 씻어서 재활용 봉투에 넣었다. 이러한 노력덕분에 더이상 초파리들이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줄어들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방에서 물기가 있는 욕실로 서식지를 넓히고 있었다. 초파리와의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며칠동안 초파리 퇴치를 위해 노력하며 무적의 3인방으로 거듭난 나와 두 아이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스카두쉬! skadoosh!
초파리 무리가 족히 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어떻게 퇴치할지 궁리를 하다가 주방 싱크대 아랫쪽에 놓여있떤 파리채를 발견했다. 한국의 그것보다 크기는 작은데 구멍의 크기는 컸다. 초파리를 향해 휘둘렀지만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 약이 오를 뿐이었다.
아, 어쩌지. 호스트 헤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날 숙소로 비치 물품을 전달하러 온 헤더는, 오는 길에 슈퍼마켓 두 곳을 들렀지만 초파리 트랩을 구하지 못했단다. 진공청소기를 이용하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주었다. 헤더가 돌아간 뒤 진공청소기를 꺼냈다. 목부분을 분리해 손잡이와 막대 중간부분만 남겨야 공중에 날아다니는 초파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공청소기 안에 어떤 먼지들이 있을지 염려되어 분리하지 않았다. 진공청소기 도전을 실패.
주방에서 키친타올을 뜯어, 반으로 접은 후 벽에 붙은 초파리를 내리 눌렀다. 휙, 휙~ 이것은 내가 내는 소리가 아니다, 초파리들이 잽싸게 나의 동작을 피해 달아나는 소리이다. 초파리는 바늘 끝으로 점을 찍은 것처럼 매우 작은 크기부터 한국에서 흔히 보던 크기의 것까지 다양하게 날아다녔다. 한국에서는 고층(과 별반 관계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인지 초파리를 거의 보지 못했다. 만약 초파리가 생기더라도 에프킬러같은 약을 뿌려주면 되었다. 초파리를 굳이 맨손으로 잡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초파리는 무척이나 빠르게 공격을 피했다. 크기가 작을 수록 재빠르게 움직여서 잡기가 더 힘들었다. 쾅, 쾅! 벽에 헛탕을 치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눌러서 잡는데 성공한 줄 알고 키친타올을 뒤집으면 그때 호로록하고 달아났다. 심지어 초파리들은 자신을 뒤덮은 키친타올에 거꾸로 매달려 유유히 걷고 있기까지 했다. 하... 걷고 있는 아주 작은 초파리를 보았을때의 기분이란. 도저히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고, 음식물이 묻은 모든 쓰레기를 냉장고 퇴비통에 넣었다. 그래도 여전히 초파리들의 주서식지는 주방이었다. 주방 창문이나, 물기가 있는 씽크대쪽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집안에서 초파리떼를 잡기에 가장 신경써야하는 장소 역시 주방이다. 식기 위로 초파리가 떨어질 수 있으니, 모든 식기는 치워두고 초파리 소탕을 시도했다.
쾅,쾅! 여전히 헛손질 횟수가 많았지만, 조금씩 요령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맨손 초파리 퇴치를 위한 방법을 몇 가지 기록한다. 먼저 손바닥만한 키친타올을 준비하는데 물기를 살짝 묻히면 초파리가 도망가지 못하는데 도움이 된다. 초파리는 벽이나 선반의 모퉁이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때는 벽의 평평한 부분으로 유도해서 잡으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초파리는 매우 작다. 그래서 쾅 내리친 키친타올 아래의 미세한 틈새에서도 살아남는다. 그래서 눌렀다가 바로 떼는 것은 금지! 초파리가 갖힌 키친타올 위를 공기를 빼듯이 전체적으로 꾹꾹 눌러주어야 한다. 빠르게 쾅 내리치는 동작도 효과적이지 않다. 초파리는 나의 손동작이 만들어내는 바람결에 밀려 날아가는 듯이 사라진다. 바람이 일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초파리를 향해 다가가면 1-2센치 정도 거리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속도를 내는 구간은 초파리에게 근접한 바로 그 지점부터이다.
맨손 퇴치 요령을 터득한 후, 성공률이 매우 높아졌다. 주방을 한 번씩 돌면 열 마리 정도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가 시도 끝에, 웅장했던 초파리 군단이 무척 조촐해진 걸 볼 수 있었다. 승리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방 전쟁에서 승리한 나는 위풍당당 기세로 미소를 지었다. 주방 식탁에서 식사를 마치고, 음식 찌꺼기나 음식이 묻은 티슈가 전혀 남지 않도록 말끔하게 정리했다. 칫솔질을 하러 욕실로 향했는데, 오 이런! 물기가 있던 세면대 주변에 초파리떼가 잔뜩 있었다. 주방에서 주둔지를 욕실로 옮긴 모양새다.
쿵푸 파이팅~ 딴다라 딴다라 딴~ 어디선가 쿵푸 파이팅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쿵푸 팬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팬더 '포'가 젓가락으로 만두를 잽싸게 잡아내듯이, 나는 손으로 초파리를 잡아챘다. 초파리가 손에 묻을까봐 페이퍼타올을 겹쳐 잡았던 시기는 지나갔다. 진짜 맨손으로 보이는 초파리를 향해 요령껏 손을 휘둘렀다. 초파리가 손바닥에 묻어 있으면 세면대에 손을 씻었다. 손에 물기가 있으니 초파리가 더 잘 붙는 것 같았다. 그런데 캐나다 샬럿타운의 숙소, 이곳의 욕실은 건식이 아니던가. 하,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어쩔까, 별수없이 초파리와의 전쟁 후에 밀대걸레로 쓱싹 닦았다.
욕실 세면대를 중심으로 거울, 양 옆의 액자, 뒤쪽의 캐비넷 사이, 세탁기 위쪽, 욕조 커튼과 샤워타올 위까지. 초파리의 움직임을 쫒았다. 양 손을 이리저리 휘두리며 발걸음을 옮기니, 무술 동작을 하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쿵푸 파이팅 노래까지 흘러나오니, 이소룡처럼 팔과 다리 동작을 하고 포즈를 취해본다. 갑자기 초파리와의 전쟁이 무림 고수와의 대결처럼 느껴져 숨을 잠시 고른다.
"특별하고 싶다면, 특별하다고 믿으면 된다" 쿵푸 팬더 애니메이션에서 '포'에게 사부는 이렇게 가르침을 전한다. 그래, 아무리 빠른 초파리라도 이 손으로 잡을 수 있어! 특별하다고 믿은 덕분일까, 며칠동안 맨손 수련을 한 덕분일까, 욕실로 옮긴 초파리 군단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었다. 주방과 욕실에서 모두 초파리떼가 사라지고 있었다.
주방에서 시작되어 욕실까지 옮겨간 초파리떼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동안 함께 한 전사들이 두 명 있다. 두 아이들은 식사 후와 샤워 전 등 틈틈이 초파리 잡기 놀이를 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거의 잡지 못하더니, 다음번부터는 점점 여러마리를 잡았다. 두 아이는 놀이 후 손을 씻으며 자신이 몇 마리를 잡았는지 서로 자랑했다.
"엄마, 저쪽에 자주 붙어있어."
"그렇게 하면 안되고, 이렇게 해야 되."
"어, 저쪽으로 간다!"
두 명의 전사들과 함께 초파리의 동태와 전술을 공유하니 힘이 났다. 역시 전쟁에는 함께 하는 전우가 있어야 든든하다. 욕실이든 주방이든 세 명이 함께 복닥거리기에 불편해서, 내가 선발대로 두 아이가 후발대로 나선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준비를 하기 전에 눈에 띄는 초파리 몇 마리를 잡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식사 후에 몇 마리를 잡는다. 이렇게 하루에 몇 차례씩 공격을 가하니 욕실과 주방의 초파리떼는 이제 초파리 몇 마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이곳 캐나다 PEI 샬럿타운 숙소에서 함께 초파리를 잡던 기억을 떠올리며, 서로 웃겨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날이 올 것 같다.
초파리 패잔병들은 무척 노련하다. 주방에서도 욕실에서도 좀처럼 평평한 곳에 앉지 않는다. 두 벽이 만나는 곳이나, 캐비넷 양쪽 문이 서로 맞닿는 곳처럼 공격하기 힘든 곳에 주로 머문다. 액자와 창문은 초파리들이 즐겨 앉는 곳이며 공경하기 쉬운 장소이다. 하지만 패잔병들은 액자 테두리에 주로 앉는데, 테두리를 따라서 깊게 골이 파인 장식이 있다. 잡을라치면 그곳으로 쏙들어가서 다른 방향으로 도망친다. 창문에 앉을 때도 꼭 몰드부분에 앉아서 좀처럼 잡기가 힘들다. 우리 세 명 전사들의 공격을 잘도 피해간다. 며칠동안의 실전 경험으로 제법 노련해진 후였는데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패잔병들에게 아량을 베풀어보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 밖으로 탈출할 기회를 주는 것. 샬럿타운 에어비엔비 숙소의 창문은 좀처럼 열기가 힘든 구조였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낑낑대며 창문을 열었다. 그들의 탈출이 좀더 쉬울 수 있도록 방충망도 잠시 빼두었다. 이제 너희는 자유다! 자유를 원하는 초파리는 창문밖으로 나가도록!
그렇게 몇 시간동안 창문을 열어두었다. 몇 마리나 탈출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직도 집안을 돌아다니는 초파리가 몇 마리 눈에 띄었다. 며칠째 제대로 먹을 게 없었을 초파리들은, 배가 고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도망치는 속도가 느려졌다. 공중에 다니는 초파리를 향해 손을 휘둘러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초파리들은 주방을 버리고 욕실을 선택한 것 같다. 대부분이 욕실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닦으면서 손으로 휙휙 공중을 날아다니는 초파리들을 잡았다. 무림 고수에 등극한 것인가!
하지만 바늘끝으로 콕 찍은 것처럼 매우 작은 초파리들은 여전히 날쌨다. 어떻게 잡을지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모기퇴치 스프레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작은 초파리들을 향해 모기퇴치제를 뿌렸다. 반응은? 헤롱헤롱! 살충제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만큼 헤롱거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꾹 눌렀다. 모기퇴치제는 아이들 몸에 뿌리는 용도인데, 이렇게 강력한 약품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닿지 않게 옷에만 뿌려야겠다.
욕실에 남은 몇 마리의 초파리에게 모기퇴치제를 살포하기를 몇 차례, 한국에서 하나만 가져온 적은 용량이었기에 아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는 샬럿타운보다 더 시골인 캐번디쉬로 이동한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벌레퇴치제가 자주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맨손으로도 어렵지 않게 초파리를 잡을 수 있었기에 모기퇴치제는 다시 가방에 넣어두었다.
욕실과 주방에서 극소수의 초파리가 발견될 때 즈음, 그동안 안전지대였던 거실에서 초파리가 한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일인용치고는 꽤 넓은 소파가 있다. 첫째 아이와 내가 서로 차지하겠다며 경쟁하던 소파이다. 이제는 초파리가 그 위를 빙빙 날아다니며 합세했다. 방향이 잘못되었어,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 실외로 나갔어야 한다구! 초파리에게 말을 건네며 손으로 휘휘저어 바깥쪽으로 나가도록 유도했다.
외출 준비로 바쁜터라 초파리는 소파 자리를 포기하는 걸 보고 공격을 멈추었다. 오후에 숙소로 돌아가 다시 한번 마주친다면, 그때는 총 공격을 해야 할 것이다. 성충이 된 초파리는 한 번에 이백여개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아직도 집안에는 초파리 알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먹이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거나 집밖으로 탈출하거나, 아니면 무적의 3인방의 공격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skadoosh! 스카두쉬!
앞으로 이곳 숙소에서 우리가 머물 기간은 일주일 정도이다. 다음 방문객들에게 초파리 없는 공간을 건네주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망고 씨앗을 일반 쓰레기에 버려서 시작된 초파리와의 전쟁은 곧 막을 내릴 것이다. 그러고보니 월마트에서 생과일을 사오던 날 예쁘게 나무 그릇에 담아 주방에 진열해 두기도 했다. 여름철 생과일의 표면에는 초파리 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깨끗히 닦아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생과일을 담아두고 얼마 후에 초파리가 보여서 얼른 냉장고로 옮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쩌면 이 전쟁은 망고 씨앗 사건 이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