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무에 얽힌 추억

by 조이스랑

마당에 심은 꽃과 나무에는 추억이 한아름 담겨 있다. 봄에 사과나무 꽃을 보는 게 좋았다. 비록 한 그루밖에 없지만 사과나무 꽃을 보면 20대의 내가 살아났다. 해외 오지에서 자원봉사하며 까르르 웃던 내가. 과수원을 가득 채웠던 시골 깡촌 마을의 사과나무 꽃그늘 아래 해맑은 아이들과 웃던 모습이다. 몇 번을 떠올려도 기분 좋은 시절이다. 그렇다. 사과나무를 보며 한창 꽃피었던 나의 젊음을, 뜨거웠던 열정을 내 가슴에 다시 불어들이고 싶은 것이다.

올해는 꽃이 피지 않았다. 지난해 겨울 그루터기만 남긴 채 싹둑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사과나무 꽃이 좋았지만, 너무 못 생기지 않았냐는 이웃의 한 마디에 마음을 고쳐 먹고 전지를 했다. 아예 밑동까지 잘라 없애버릴까 했지만, 이쁘게 새로운 가지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가지마다 꽃 대신 잎만 무성하다. 못 생긴 가지가 어째 작년보다 더 많이 올라온 듯하다. 손길이 가지 않은 나무는 처량하다. 내년에는 예쁜 꽃이 피도록 올 가을 제대로 다듬어 줘야 할지, 사과나무 꽃을 보지 않아도 내 젊음을 추억하는 방법은 많을 테니 이쯤에서 포기하고 그루터기도 남기지 말아야 할지. 생각이 왔다 갔다 여러 번 바뀐다.


보리수 대신 앵두나무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곡 보리수도 보리수지만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에도 자그마치 낮은 언덕에 보리수 한 그루가 심겨 있었다. 남의 집 담장 안에 있었지만 허락을 받지 않고 따 먹어도 괜찮았다. 그 때는 남의 집 마당에 맘대로 들어가 놀아도 괜찮을만큼 온 동네가 한마음 공동체였다. 환갑 잔치 뿐만 아니라 생일밥도 서로 나눠 먹던 시절이었다. 보리수 따 먹었다고 뭐라 야단치는 어른은 없었다.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린 시절이 아니었다. 과자 대신 쌀을 몇 줌 깡통에 담아 모닥불에 튀겨 먹던 때였다. 동네 아이들은 남의 집 뒷마당 과실나무 열매를 철따라 참 많이 따 먹었다. 작고 빨간 앵두같은 보리수를 따 먹으며 이게 그 노래 속의 보리수란 말이지? 친구랑 조잘댔다. 보리수 특유의 향과 맛이 있었다.

막 마당있는 집에 이사와 모묙 시장에 갔고, 거기서 추억의 보리수 대신 앵두나무를 샀다.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앵두나무나 보리수나 소꿉친구 추억은 비슷하니까. 마당의 앵두나무는 참 잘 자랐다. 너무 잘 자라 뒷마당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해마다 가지를 잘라내어도 금세 가지가 또 올라왔다. 이웃집 데크까지 가릴 만큼 크게 자란 앵두나무. 괜한 민폐다 싶어 지난해 가지를 확 잘라냈더니, 올봄 잔가지가 올라와도 너무 올라왔다. 너무 잘 자라고 과일나무라 벌레도 좋아한다. 벌레만 없었어도 어찌어찌 참을 수 있었을 텐데.... 약을 치지 않으니 꽃이 지고 빨간 앵두가 열릴 때쯤이면 잎사귀에 벌레가 그렇게 꼬일 수 없다. 잘 익은 앵두가 참 좋았지만 앵두나무 벌레에 쏘이는 건 싫으니 어쩔 수 없다. 이제 그만 보리수 대용 앵두와도 굿바이다.


국화, 고향의 노래

데크 앞마당 한편에 자리 잡아 해마다 노랗게 피는 국화는 고향의 노래이다.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뜰아래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고향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단짝이랑 행복했던 중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부안과 정읍 사이 시골학교 합창반에서 만난 혜옥이는 지금도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어쩌다 생각나 연락을 해도 전혀 스스럼이 없다.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난봄 거의 4년 만에 만나 ‘건강 조심해라’ 하며 헤어질 때 우리도 늙어간다는 게 실감 났다.

별 비싸지도 않은 흔해빠진 국화지만 서리 내릴 때까지 져 버린 국화를 보는 게 좋았다. 올해는 단정하지도 않게 제 멋대로 우후죽순 자랐다. 국화가 뭐라고 오냐오냐 하듯 내내 두었더니 가관이다. ‘그래도 봄부터 지금까지 몇 달이나 참고 뒀는데 꽃이라도 보고 자를 테야.’ 결심하지만, 꽃도 보기 전에 자르고 싶은 마음이 막 솟아오른다. 언제 읽었는지 모를 책 위에 쌓여있는 뽀얀 먼지를 보는 기분이다. 털어내고 싶다. 맺혀있는 꽃봉오리를 보면서도 싹 잘라버리고 싶다. 이렇게 된 건 봄에 전지를 하지 않은 탓이다. 내 허리보다 더 높이 막 자란 국화가 그렇게 가치 없어 보일 수 없다. 몇 천 원만 주면 사는 걸 왜 그렇게 애지중지했나 싶다. 언제는 자연 그대로가 좋다더니 이제 나도 보는 눈이 생긴 건가. ‘그때가 좋았는데...’ 하면서 추억을 붙든 나머지, 지금의 시간을 자꾸 연민으로만 바라보는 건 아닐까. 이제 그만 과거의 추억은 저만치 놔줘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테니. 앞으로를 살겠노라. 달라진 마음을 깨닫고 혼자 흠칫 놀란다.


작약, 할머니의 추억

또 다른 고향의 노래가 있다. 땅콩집 마당에서 한 번도 꽃을 보지 못한 작약은 할머니의 추억이다. 모종을 두 번이나 사다 심었어도 올해도 꽃을 보는데 실패했다.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한다는데 아직도 충분하지 못했나 보다. 작약은 할머니를 추억하게 한다. 오월이 되면 시골집 뒷마당에는 화려한 작약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붉고 탐스러운 작약은 할머니의 성품, 좋았던 기억만을 화려하게 되살려낸다. 사랑만 주셨던 할머니, 깊은 밤 들려주셨던 옛이야기, 고사성어, 잠언, 옛시조, 춘향전...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다정다감하고 지혜롭고 멋진 분이다. 인생을 관조했다. 자식을 몇이나 앞세운 고통을 감내했다. 식민시절과 전쟁을 겪었고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고된 시집 살이었지만 누구한테 성 한 번 내지 않았다. 현재의 삶을 묵묵히 살아갔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내 작은 마당에 할머니를 추억하면서 심은 작약이 꼭 피기를. 작약을 방해하는 건 뭘까. 작약 옆에 자리 잡은 과실나무를 베어내면 그늘도 지지 않고, 양분도 뺏기지 않아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분을 뺏을 나무도 없고 바람과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겠다.


상상 속의 마당

꼭 심고 싶은 나무가 있다. 백일홍 분홍꽃을 여름 내내 보고 싶다. 홍사용 문학관 앞에 자리한 백일홍 나무처럼 그렇게 멋지게 심을 수는 없겠지만 다만 한 두 그루라도 좋다. 좁은 마당에 세 그루까지는 욕심이겠지만... 이 작은 땅콩집에서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지만, 베란다 창 앞으로 백일홍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여름 내내 그 꽃에 푹 빠져 무더위가 실감 나지 않을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잘 보였으면 좋겠다. 멀리서도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뻤으면 좋겠다. 바람 따라 향기가 솔솔 내 창 앞으로 건너왔으면 좋겠다. 내 마당을 그렇게 바꾸고 싶다. 내 상상 속에서 먼저 시작하는 봄, 벌써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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