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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스랑 Feb 12. 2023

필사와 표절

  어떤 유명한 작가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다.  표절 때문에 그간 쌓아놓은 명성이 무너진 것은 물론 앞으로도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문단에서 절필하라고 했단다. 그가 예전에 쓴 책을 우연히 접하면서 이렇게 재밌는데, 얼마나 감동적인데, 이런 작가는 계속 써야 되지 않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표절이란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영작문을 가르친 C선생님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C선생님은 굉장히 엄격했다. 어떤 책에서 맘에 드는 단어나 문장을 베껴 쓸 때 반드시 작은따옴표를 붙여서 출처를 밝히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표절이다. 도둑질이다. 인용 표시 없이 누군가의 것을 그냥 가져오면 안 된다고 수업 때마다 질리도록 강조했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제시간에 나타난 모든 이의 시간을 훔치는 것과 같다면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선생님들은 대부분 미국 국적의 교수들이었다. 시험을 볼 때면 모두 공평하게, 1분도 더 쓰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만! 시간 됐습니다. 했는데 어떤 학생이 계속 썼다잖아. 그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찢어버렸대."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었다. 그분들 역시 출처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면 절대 안 된다고 표절을 매우 까다롭게 다루었다. 

한 번은 그룹별 숙제를 해야 할 때였다. 숙제의 미션은 우리만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거였다. 다른 팀과 아이디어를 상의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마치 베껴 쓴 듯 똑같은 스토리가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팀의 자료를 받아보고서, 그 팀이나 우리 팀이나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놀랐다. 누가 봐도 완전히 베꼈다고 믿을 만큼 이야기 전개 방식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보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게 고작 그 수준뿐인가,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길래 이토록 획일적으로 생각을 하나, 창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며 한탄했다. 억울한 표절이었다.   

  처음 쓴다는 걸 배우던 시절, 석장짜리 리포트를 쓸 때도 우리는 꼭 각주를 빼곡히 달아야 했다. 각주를 다는 방식도 어찌나 철저했는지 수없이 보고 또 본 후 제출했는데도 선생님의 눈에는 틀린 게 다 걸렸다. 

"미국에서는 책을 복사할 때도 약간의 규칙이 있어. 책의 일부분을 나눠서 복사하는 건 괜찮아. 돈이 없는 학생들을 이해하는 거지. 그러니까 한 번에 다 복사하면 불법이지만, 나눠서 조금씩 하는 건 괜찮아." 선생님은 우리에게 원서를 복사하고 싶거든 시간차를 두고 나눠서 복사하라고 했다. 

  1990년대 그 시절 강의실 밖의 세상은 달랐다. 코리안 타임 10분이 어디에서나 있었다. 10분만 지연되면 다행이었다. 30분 지연되는 모임도 허다했다. 그걸 시간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늦게 시작하니 끝나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일회성 강의인데, 마치는 시간을 훌쩍 초과했는데, 아직도 더 할게 남아, "나머지는 다음에 하죠."하고 마무리된다. 다음에 만날 기약이 없는데도 그렇게 다음에,라는 말로 모든 걸 퉁쳤다. 누군가의 것을 맘대로 가져가도 훔쳐 썼다는 죄책감, 무서움 같은 건 없었다. 음반 시디, 영화, 책, 특히 원서로 된 책은 당연한 듯 복사판이 난무했다. 논문 쓰기가 까다롭다고 하면 돌아오는 말은, "야, 그거 짜깁기 하면 되잖아." 그런 때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강의실의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남의 생각을 내 것인 양 가져오는 거, 그건 절대 안 되는 도둑질이라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쉽게 다른 이의 글을 베껴와 자기 책인 것처럼 쓴 사람들에 대해 혼란스러웠다. 어떤 사회에서는 절대 용인되지 않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우리 사회에 대해 이래서 우리는 후진국이가 싶어 화가 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25년이나 흘렀다. 우리 사회도 달라졌다. 남의 것을 허락 없이 쓰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MZ 세대인 딸은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이를 범죄자라고 대놓고 말한다. 리포트를 합법적으로 구매하더라도 그대로 제출하면 프로그램을 돌려 글자까지 하나하나 다 체크할 수 있는 시대라 낙제 점수를 피하기는 어렵다. 딱히 좋아하는 영화도 없고, 음악도 잘 듣지 않고,  글 같은 건 쓰지도 않던 중년의 나, 저작권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저작권 상관없이 맘대로 퍼가라는 이미지만 조심히 가져다 쓴 게 전부였다.  

 표절이라는 말이 내게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건 순전히 필사 때문이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탁월한 글을  필사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유명 작가들은 필사를 무척 많이 했단다. 필사를 하면서 써먹을 것도 아닌데 왜?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글 쓰는 사람들의 조언이니 받아들였다. 손글씨를 무척 싫어하는 내가, 한 번 해보지 뭐. 열심히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문장들을 베껴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트 한 권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느낌과 필사한 구절이 헷갈리 수 있겠다 싶었다. 노트에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때는 일기처럼 내 글을 쓸 때가 있어서였다. 그냥 필사 같은 건 하지 말까? 나중에 내 글인 줄 알고 남의 걸 모르고 써먹을 수도 있잖아. 글을 쓸 때는 아예 필사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표절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읽어가는 책이 늘어날수록,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 이건 누구 생각이랑 비슷한데? 하는 거다. 가령 레미제라블의  I dreamed a dream. 의 노래 가사는 [오래 전 우리가 사랑했을 때 인생]의 첫 장과 일맥 상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꿈꾸었던 삶이 아닌 데, 어느 날 낯선 인생을 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작가들이 묘기를 부려서 표현하는 것들이 어떨 때는 다 언젠가 한 번은 품었던 생각이었는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러는 거다.  누군가의 생각을 복사한 듯 거기 글로 써놓아 우리는 감동하는 데.... 그 공감 때문에 작가들의 책이 날개 달린 듯 팔리는 거 아닐까.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정말 우리가 누군가의 것을 베끼는 거 당연한 거 아닐까. 아, 문학의 표절, 예술의 표절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

 그러다 나는 무릎을 쳤다. 유명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고민하나. 남의 글과 내 소감이 헷갈리지 않도록, 책 제목과 페이지를 적고, 그 글을 적는 내 마음을 다른 색깔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게 C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내 방식의 주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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